글로벌 특허분쟁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 IT기업들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스마트폰 시장 지배를 놓고 첨예한 대결 구도를 가졌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애플과 구글은 “모든 소송을 함께 취하한다”고 발표했고 애플과 삼성도“미국 내 소송을 제외한 모든 소송을 취하한다”고 밝혔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對 구글의 특허분쟁도 레노버의 모토롤라 모빌리티 인수가 최종 확정되면 법정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손상영 연구위원이 지난달 말에 공개한 ‘스마트폰 특허전쟁의 결말과 새로운 위험’이라는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손 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9년 10월 노키아에 의해 촉발된 스마트폰 특허전쟁은 안드로이드 진영의 구글/삼성 對 반안드로이드 진영의 애플/마이크로소프트의 대결로 굳어지는 가운데 대규모 특허전쟁이 예상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행선처럼 달렸던 이 글로벌 기업들의 특허정책이 올해 들어서 갑자기 바뀌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손 위원은 “특허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막대한 소송비용에 비해 경쟁 상대 제품의 시장경쟁력 약화를 도모했던 소송의 효과가 미흡했기 때문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르다는 것이 손 위원의 설명이다. 그는 특허관리전문회사(Non-Practicing Entity, NPE)들이 특허전쟁에서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함에 따라 이들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IT기업들이 기존의 소송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로열티만을 노리는 특허사냥꾼
공대를 졸업한 후, IT 관련 박사 학위를 받고 오로지 발명에만 매달려 뒤늦게 성공한 김영환(55, 가명) 사장은 오늘도 연구실이 아닌 사무실에서 특허관련 소송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멋진 제 2의 인생을 꿈꿨던 그에게 날벼락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몇 달 전 날아온 한 통의 편지때문이었다.
6개월 전에 완제품 양산 라인을 설계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왔다. 바쁜 핑계로 그는 관심 없이 그냥 편지함에 꽂아놓았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메일함에도 여러 개의 낯설은 메일들이 들어와 있었다. 이 역시 광고성 스팸 메일로 생각하고 모두 삭제해버렸다.
그로부터 일주일후, 등기우편이 그에게 도착했다. 그 속에는 경고장이 동봉된 내용증명서가 들어있었다. 그 경고장을 꼼꼼히 읽어본 그는 며칠 전 받은 편지와 메일함까지 뒤져보았다. 모두 A기업 대표가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보낸 완강한 경고의 내용들이었다.
그제야 김 사장은 자신이 발명 특허를 내기 훨씬 전에 A기업이 이미 특허를 내놓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고를 무시한 결과는 참담했다. 이후 벌어진 특허소송에서 법원은 A기업의 손을 들어줬고, 김 사장은 꼼짝없이 막대한 로열티(특허로 보호되는 기술료)를 물었다. 회사 경영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는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 법무 팀을 운영하는 글로벌 메이커들도 특허소송에서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NPE로 알려진 인터디지털의 경우, 2세대 GSM 기술 관련 특허소송을 통해 노키아에 2억 5300만 달러, 삼성전자에 670만 달러의 로열티 수익을 받아냈다.
특허 매집 등 적극 방어로 전환
곰의 몸뚱이, 코끼리의 코, 쇠톱 같은 이빨을 가진 괴물이 있다. 그건 바로 쇳덩어리만을 먹고 사는 불가사리다. 한국의 전통 설화에 나오는 불가사리는 전쟁을 싫어하는 우리 민족의 염원에서 탄생한 상상의 괴물일 뿐이다.
그런데 실제의 세계에서 쇳덩어리가 아닌 버려진 특허만을 먹고 사는 괴물이 있다. 그것이 바로 NPE(특허전문관리기업)라 불리는 특허괴물이다. 이들의 전략은 문 닫은 중소기업, 투자에 목마른 발명가 등에 접근해 이들이 갖고 있는 특허들이 삼성, 구글, 노키아 등 글로벌 IT기업의 제품과 관련이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한 후, 향후 가치가 인정되면 아주 싸게 구입하는 것이다.
특허를 사들인 이후, 그 기술이 성숙될 쯤, 적당한 시기에 경고장을 보낸다. 주 내용은 “귀사의 제품이 우리가 보유한 특허를 침해하고 있으니 그것에 상응하는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들이다.
물론 통보받은 기업들이 인정하지 않을 경우, 바로 내용증명을 보내고 특허소송에 들어간다. 이후 소송에서 이기면 거액의 로열티나 소송합의금을 챙긴다. NPE 가운데는 매복식 공격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메모리칩 기업 램버스도 있다. 이들은 특허를 공개하지 않은 채, 숨기고 있다가 상대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면 특허를 공개해 합의금 또는 로열티를 챙긴다.
특허괴물의 공격에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도 바뀌고 있다. 과거 소송 위주의 수동적 대처에서 특허기업이 특허를 사들이는 정보가 입수되면 즉시 특허를 되사들이는 것이다. 국내의 S전자나, L전자의 경우, 특허를 대량으로 매집하거나 특허펀드 운용사에 투자해 특허를 대량으로 매입해 방어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그동안 인터디지털, NPT 등 미국 내 본사를 두고 자국 기업들을 목표로 공격하던 특허괴물들이 점차로 수익성이 좋아진 한국기업들을 대상으로 노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장 공격적인 인터디지털의 경우, 국내 출원 건수가 무려 1092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들이 한국기업을 노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글로벌 IT기업의 영역을 넘어서 중소기업등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3@empal.com
- 저작권자 2014-10-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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