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프랑스의 장 마크 코테와 빌마르가 2000년의 미래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기계들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상상하며 그린 그림인데, 현재 연주자들이 없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상상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답니다.
그러나 당시 전자공학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전기적으로 저장된 정보를 스피커의 진동으로 바뀌어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20일 고등과학원에서 제10회 초학제 심포지엄에서 부산대 물리교육학과의 김상욱 교수는 ‘상상력을 상상하며: 융합에서 소통으로’이란 주제 강연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우리가 가진 지식을 가지고 재조합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상상한 것도 그렇고 현재 우리도 50~100년 후의 미래 모습을 그릴 때도 비슷하다”는 것.
그러나 당시 시대적 지식으로는 현재가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미래를 전부 상상할 수도 없다. 김 교수는 자동차와 인터넷을 예로 들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서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기름을 먹으며 스스로 이동하는 가마라고 한다면 얼추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 당시 사람들의 배경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그 무엇이다. 그래서 그는 “상상력이라는 것이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30년 뒤, 50년 뒤의 모습을 자신 있게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과학적 상상력, 상상 이상의 상상이어야
그런데 과학사를 살펴보면 당시로는 말도 안 되는 이론들이 등장한다. 천동설이 지배적인 시대 코페르니쿠스는 별들의 운동을 일관성을 설명하려다 ‘혹시 지구가 도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한다.
갈릴레이는 한걸음 더 나아가 등속으로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등속으로 움직이지만 마찰력 때문에 정지해 있는 것으로 봤다고 할 수 있다. 지구가 움직이고 있어도 우리가 눈치를 못 채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갈릴레이는 생각했다.
패러데이는 빈 공간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역선이 있다고 봤다. 그 시대에는 헛소리라고 여겼지만 맥스웰은 이 말을 믿고 맥스웰 방정식을 만들었다. 이 엉뚱한 상상력이 없었다면 무선 통신의 발전도 지금보다 훨씬 더 더뎌졌을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면서 과학의 상상력은 ‘드디어 미쳤다’라는 소리마저 들었다. 두 개의 구멍에 전자를 보냈더니 우리의 상식으로는 두 개의 선이 생겨야 하지만 여러 개의 선이 생겨버린 것. 바로 양자역학이다.
과학자들은 “한 개의 전자가 2개의 구멍을 지나갔다”고 그 현상을 표현해 버렸다. 얼핏 더 비과학적인 말로 들린다. 하지만 전자가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는 “인간의 언어는 때로는 생각의 한계를 만들어 자연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면이 있다.”며 “양자역학 창시자는 보어 역시 양자역학에는 문제는 없고 언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과학적 상상력이란 것은 상상 이상의 상상인 경우가 많은 셈이다. 과거에 누군가 “왜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떨어지지 않냐?”라는 질문을 했을 수 있다. 뉴턴은 “달은 떨어지고 있다 다만 지구가 둥글어서 땅에 닿지 못할 뿐이다.”라고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그래도 과학자들은 뉴턴처럼 인간의 감각을 벗어난 상상력의 도약이 필요하다”며 “그래야만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예술과 과학적 상상력 사이에는 차이점 존재
그렇다면 상상력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성질을 보이는 것일까. 김 교수는 “서로 다르다”라는 답변을 내놓으면 미술사에 나타나는 그림들을 가지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고전주의 미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 했다. 상식과 소박한 경험에 둔 갈릴레이 이전 과학과 비슷하다. 그러나 빛을 표현하는 모네, 사물을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으로 이해한 세잔이 등장하면서 사물이 기존에 갖고 있는 모습이 아닌 근본적인 모습을 찾는 새로운 미술이 시작된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피카소처럼 하나의 시점이 아닌 여러 시점을 조합하거나 생각을 이미지화 하는 미술이 나타나는데, 이는 상식을 파괴하고 경험을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 미술 역시 상상 이상의 상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비슷해 보이지만 둘 다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과학은 분명 답이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반해 예술은 문제를 제기하는 상상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융합의 대세이다. 그럼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의 차이점을 가지고 융합한다면 서로의 분야를 보완하며 기폭제로 작용될 수 있지 않을까.
과학은 분명 예술적 상상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영속’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던 에즈는 말하고 있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SF라는 소설 장르를 만드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현대미술은 과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예술이 설명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SF 소설에서 ‘우리는 왜 존재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컴퓨터는 ‘42’라는 질문을 내놓는다. 이렇게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 수 없는 문제에 예술적 상상력은 도움이 된다.
김 교수는 “과학적 상상력은 보편적이고 재현 가능한 실험적 증거로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예술적 상상력은 정말 백지수표 상상력”이라면서 “이 둘은 이질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준비 없이 무작정 융합을 하기보다는 상상력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소통을 먼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전자공학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전기적으로 저장된 정보를 스피커의 진동으로 바뀌어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난 20일 고등과학원에서 제10회 초학제 심포지엄에서 부산대 물리교육학과의 김상욱 교수는 ‘상상력을 상상하며: 융합에서 소통으로’이란 주제 강연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우리가 가진 지식을 가지고 재조합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상상한 것도 그렇고 현재 우리도 50~100년 후의 미래 모습을 그릴 때도 비슷하다”는 것.
그러나 당시 시대적 지식으로는 현재가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미래를 전부 상상할 수도 없다. 김 교수는 자동차와 인터넷을 예로 들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서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기름을 먹으며 스스로 이동하는 가마라고 한다면 얼추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 당시 사람들의 배경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그 무엇이다. 그래서 그는 “상상력이라는 것이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30년 뒤, 50년 뒤의 모습을 자신 있게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과학적 상상력, 상상 이상의 상상이어야
그런데 과학사를 살펴보면 당시로는 말도 안 되는 이론들이 등장한다. 천동설이 지배적인 시대 코페르니쿠스는 별들의 운동을 일관성을 설명하려다 ‘혹시 지구가 도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한다.
갈릴레이는 한걸음 더 나아가 등속으로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등속으로 움직이지만 마찰력 때문에 정지해 있는 것으로 봤다고 할 수 있다. 지구가 움직이고 있어도 우리가 눈치를 못 채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갈릴레이는 생각했다.
패러데이는 빈 공간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역선이 있다고 봤다. 그 시대에는 헛소리라고 여겼지만 맥스웰은 이 말을 믿고 맥스웰 방정식을 만들었다. 이 엉뚱한 상상력이 없었다면 무선 통신의 발전도 지금보다 훨씬 더 더뎌졌을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면서 과학의 상상력은 ‘드디어 미쳤다’라는 소리마저 들었다. 두 개의 구멍에 전자를 보냈더니 우리의 상식으로는 두 개의 선이 생겨야 하지만 여러 개의 선이 생겨버린 것. 바로 양자역학이다.
과학자들은 “한 개의 전자가 2개의 구멍을 지나갔다”고 그 현상을 표현해 버렸다. 얼핏 더 비과학적인 말로 들린다. 하지만 전자가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는 “인간의 언어는 때로는 생각의 한계를 만들어 자연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면이 있다.”며 “양자역학 창시자는 보어 역시 양자역학에는 문제는 없고 언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과학적 상상력이란 것은 상상 이상의 상상인 경우가 많은 셈이다. 과거에 누군가 “왜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떨어지지 않냐?”라는 질문을 했을 수 있다. 뉴턴은 “달은 떨어지고 있다 다만 지구가 둥글어서 땅에 닿지 못할 뿐이다.”라고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그래도 과학자들은 뉴턴처럼 인간의 감각을 벗어난 상상력의 도약이 필요하다”며 “그래야만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예술과 과학적 상상력 사이에는 차이점 존재
그렇다면 상상력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성질을 보이는 것일까. 김 교수는 “서로 다르다”라는 답변을 내놓으면 미술사에 나타나는 그림들을 가지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고전주의 미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 했다. 상식과 소박한 경험에 둔 갈릴레이 이전 과학과 비슷하다. 그러나 빛을 표현하는 모네, 사물을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으로 이해한 세잔이 등장하면서 사물이 기존에 갖고 있는 모습이 아닌 근본적인 모습을 찾는 새로운 미술이 시작된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피카소처럼 하나의 시점이 아닌 여러 시점을 조합하거나 생각을 이미지화 하는 미술이 나타나는데, 이는 상식을 파괴하고 경험을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 미술 역시 상상 이상의 상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비슷해 보이지만 둘 다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과학은 분명 답이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반해 예술은 문제를 제기하는 상상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융합의 대세이다. 그럼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의 차이점을 가지고 융합한다면 서로의 분야를 보완하며 기폭제로 작용될 수 있지 않을까.
과학은 분명 예술적 상상력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영속’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던 에즈는 말하고 있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SF라는 소설 장르를 만드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현대미술은 과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예술이 설명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SF 소설에서 ‘우리는 왜 존재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컴퓨터는 ‘42’라는 질문을 내놓는다. 이렇게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 수 없는 문제에 예술적 상상력은 도움이 된다.
김 교수는 “과학적 상상력은 보편적이고 재현 가능한 실험적 증거로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예술적 상상력은 정말 백지수표 상상력”이라면서 “이 둘은 이질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준비 없이 무작정 융합을 하기보다는 상상력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소통을 먼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김연희 객원기자
- iini0318@hanmail.net
- 저작권자 2014-02-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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