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에게 연구해야 할 대상, 접근 방법, 결과를 평가하는 기준 등을 제공함으로써 특정한 스타일의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22일 고등과학원의 초학제 연구프로그램 통합학술대회 ‘앎’이 개최됐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는 ‘과학사에 나타난 앎의 스타일, 방식, 양식들’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서 공유되어 과학 활동을 가능케 해주는 요소들의 집합이나 매트릭스를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스타일, 과학적 앎의 방식
스타일은 고딕양식과 바로크 양식 처럼 건축에서 더 분명하게 사용되던 개념이었다. 그런데 1920년대 독일 사회학자 만하임에 의해 사회학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만하임은 이를 ‘사고 스타일(thought style)’이라고 명명했다. ‘사고 스타일’은 서로 다른 세계관의 내적 통일성을 가진 집단으로 상이한 이론을 사용하는 집단인 ‘학파’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만하임의 사고 스타일 개념은 이후 자연과학에 대해서 최초의 사회학적 분석을 수행했던 선구자였던 러드빅 플렉이 도입했다. 그는 비슷한 지식을 공유하면서 과학을 수행하는 집단을 ‘사고 복합체(thought-collective)’라고 이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공유한 지식을 ‘사고 스타일’이라고 특징짓기도 했다.
“사고 스타일은 연구자들의 지각, 추론, 창의적 사고의 방향을 짓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 스타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나 불협화음은 점차 더 못 보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즉 사고 스타일은 연구를 가능케도 했지만, 이를 벗어나는 연구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플렉의 주장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과학사 수면에 아래에 있던 스타일 개념을 다시 과학과 연관지은 사람은 옥스퍼드의 과학사학자 알리스테어 크롬비였다. 1994년에 2천 페이지가 넘는 ‘유럽 전통에서 과학적 사고의 스타일’이란 제목의 3권짜리 책을 출판한 그는 여기에서 과학적 사고의 여섯 가지의 스타일을 찾아내서 분류했는데, ‘공리적(axiomatic)·실험적(experimental)·가설-유비적(hypothetical-analogical)· 분류적(taxnomic)· 확률적(probabilistic)·계보적(genealogical) 스타일’이 그것이다.
이안 해킹의 추론 스타일, 철학적으로 중요
이안 해킹도 자신의 생각을 ‘추론의 스타일(style of reasoning)’ 혹은 ‘과학적 추론의 스타일(style of scientific reasoning)’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물론 크롬비의 책을 접하고 나서 내놓은 정리이다. 특징이라면 크롬비의 6가지 스타일에 ‘실험실 스타일(laboratory style)’을 하나 더 첨가했다는 점이다.
사실 크롬비와 해킹의 스타일은 닮은 듯 하지만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크롬비는 “자신의 제시한 스타일 모두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됐고 이후 서양 과학 특히 유럽 과학을 특징지은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해킹은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이 맞지만, 확률적 그리고 실험실적 스타일은 17세기 유럽 과학혁명 시기에, 분류적 스타일은 18세기에 과학적으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홍 교수는 “해킹은 각각의 스타일이 새로운 연구대상과 새로운 종류의 명제 및 법칙, 그리고 새로운 설명방법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과 각각의 스타일이 타당성과 객관성에 대한 자체적인 기준을 세운다는 점 때문에 철학적으로 중요하다”며 “이로 인해 각각의 스타일은 어떤 식의 명제가 의미를 가진 진리인가 거짓인가 혹은 진리에 더 가까운가?’를 정의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흰 공 6개와 검은 공 4개가 들어 있는 주머니에서 공을 두 개 꺼냈을 때 모두 흰 공일 확률은 3분의 1이다’라는 명제를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분명한 과학적 명제이다. 하지만 확률적 스타일이 등장하기 이전 16세기에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의미 자체가 없었던 명제라고 할 수 있다.
스타일이란 개념을 패러다임으로 변환
토마스 쿤도 플렉의 책을 꺼낸 물리학자였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스타일이란 개념 대신에 패러다임을, 사고 집합체 대신에 과학자 공동체라는 개념을 채택했다. 그리고 패러다임이 채택된 이후에 과학자 공동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과학 활동을 정상과학이라고 불렀다.

“쿤은 과학의 발전을 정상과학, 변칙, 위기, 과학혁명, 또 다른 정상과학의 시기로 구분을 했는데, 이 과정이 과학의 전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정상과학 시기의 과학 활동이 패러다임을 명료화하고 확장하는 활동이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쿤은 과학혁명기에 공존하는 두 패러다임 사이의 선택이 논리와 실험과 같은 합리적 기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급진적인인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을 제창했다. 이는 과학이 누적적인 발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생명체의 진화처럼 그때 그때의 선택을 이루면서 발전한다고 보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홍 교수는 “중요한 점은 두 패러다임이 경쟁하는 과학혁명의 시기에 이 둘을 합리적 잣대로만으로는 비교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사실이 실제 역사에서 자주 등장했다”며 “특히 이런 공약불가능성은 과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경영분야가 대표적이다. 경영학자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저서 ‘혁신가의 딜레마’에서는 그 내용이 잘 나왔다. 이 책은 성공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이 새로운 와해성 기술의 등장에 놀라울 정도로 무력하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보통 혁신적인 기업은 새로운 기술 등장에도 능동적으로 잘 대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업의 혁신 역량과 관련해서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홍 교수는 “왜 혁신적이고 성공적인 기업이 와해성 기술의 가능성을 평가하는데 이렇게 서툰가에 답은 쿤의 해답과 거의 같은 것”이라며 “지금까지 잘 발전되었고 소비자들을 만족시켰으며 기업에 많은 이익을 남겨주었던 기존의 기술(시스템)과 새롭게 만들어졌지만 기존의 기술에 비해서 조야하고 소비자의 선호도 불확실한 신기술(시스템)을 합리성으로만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다”고 말했다.
- 김연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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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3-08-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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