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미 연방항소법원이 교통안전청(TSA)에 명령을 내렸다. 지난해 공항보안대에 설치된 '전신투시 스캐너', 즉 '알몸 투시기'와 관련, 공청회를 열라고 판결했는데 아직도 공청회를 열지 않고 있어 그 이유를 설명하라는 것이었다.
'알몸 투시기'를 이용하면 금속탐지만으로는 힘들었던 플라스틱 폭발물질, 약품 등과 같은 테러용 도구들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3초 동안의 전신 스캔을 하게 되면 승객의 가슴 등 은밀한 신체부위는 물론 각종 시술 흔적들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교통안전청 측에서는 머리 부분은 촬영하지 않고 있으며 확인이 끝나면 모든 사진을 즉시 삭제한다고 밝혔지만, 스캐닝을 당하는 승객 입장에서는 그대로 넘어가기 힘든 부분이 있다. 이 문제를 공청회를 열어 해결하라는 법원 측 판결이다.
본인확인에도 불구, 불법게시물 성행
인터넷 역시 사생활침해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웹사이트를 관리하는 인터넷사업자 측에서 접속자들의 실명과 실명 확인에 따르는 성별·나이·전화·거주지 등의 사생활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지난 23일 헌법재판소의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린 후 개인정보관리에 대한 책임이 민간에게 이양되는 등 사이버 상에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고 있다. ⓒScienceTimes
'알몸 투시기'가 탄생한 것은 테러 위협 때문이었다. 반면 인터넷실명제가 탄생한 것은 '악플' 때문이었다.
악플이란, 한자 '악(惡)’과 영어의 ‘reply’가 합쳐진 말이다. ‘악의적인 댓글’, 즉 고의적인 악의가 드러나는 비방성 댓글을 의미한다. 일부 네티즌들이 익명으로 충분한 근거나 이유 없이 '~하더라'와 같은 무책임한 글을 남발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동안 '악플'로 인한 국내 많은 연예인들의 자살사례는 '악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있는지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분개한 사람들은 이 '악플'을 막기 위해 강력한 인터넷 실명제, 혹은 전담 사이버 수사대를 운영하는 등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3일 헌법재판소의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한 위헌 판결은 '악플' 반감을 갖고 있는 국민들에게 놀라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 판결문은 인터넷실명제가 안고 있었던 법적인 문제점들을 사정없이 드러냈다.
손모씨 등 3명과 미디어오늘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는 “인터넷 실명제가 사생활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날 결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사전제한하려면 공익의 효과가 명확해야 한다”며 “인터넷 실명제를 시행한 이후에도 불법 게시물은 의미 있게 감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용자들의 해외 웹사이트 도피와 국내외 사업자간 역차별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익을 달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외 언론들, 위헌 판결은 당연한 결과
헌재는 또 “인터넷 실명제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위축시키고 주민번호가 없는 외국인의 인터넷 게시판 이용을 어렵게 한다는 점, 게시판 정보의 외부 유출 가능성이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이익이 공익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5 1항 2호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게시판의 일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이면 실명을 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인터넷 게시판의 악성 댓글 등 부작용을 방지할 목적으로 2007년 7월에 처음 시행됐으며, 2009년 1월부터 일일 평균 이용자수가 30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조정돼 더욱 규제가 심해졌다.
한국의 헌재가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은 해외 언론들에게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월스트릿 저널은 "익명의 공격성 댓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서 고안해 낸 온라인 상의 실명제(Online Real-Name Rule)가 재판부에게 의해 녹다운 당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일부 인터넷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인터넷 실명제에 문제점이 많았다는 점을 설명했다.
BBC는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위헌 판결이 중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지난 6월 8일 증국판 트위터라고 불리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웨이보(微博) 사용자에 대해 전원 실명을 등록하도록 규정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부터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광저우(廣州), 선전(深천<土+川>) 등 5개 대도시에서만 실시하던 웨이보 실명제를 이번에 전국으로 확대한 것이다. 현재 많은 중국인들이 이 조치에 반발하고 있는데 그 귀추가 주목된다는 것.
결과적으로 이번 헌재의 위헌판결은 인터넷 상의 개인정보관리 권한을 일반 사업자에게 모두 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킹의 위협과 그에 따른 개인정보 노출, '악플' 등의 문제를 사업자 스스로 파악하고 대처해나가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사이버 세상에 신질서가 구축되고 있는 셈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