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물론 전 세계를 방사선 노출에 대한 공포로 몰아넣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큰 고비를 넘기고 진화과정에 있다. 지난 22일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를 제외한 모든 원자로에 외부전원을 연결해 냉각 시스템을 정상 가동시키는데 성공했으며 3호기도 방사능 유출을 피하면서 전력케이블을 복구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 때 2·3호기에서 흰 연기가 발생하면서 “다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단순한 증기로 밝혀졌으며 큰 문제없이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전력은 “1·2호기는 23일, 3·4호기는 24일까지 전력 시스템이 복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아직 100% 안정화된 것이 아니며 여진으로 인한 피해도 생각해야 하지만 이번 사고로 일어날 수 있었던 최악의 상황을 넘겼다고 볼 수 있다.
사상 최악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후쿠시마 원전사고는 1호기의 수소폭발 당시부터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계속해서 비교돼 왔다.
사실 피해 규모만으로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정부의 공식 통계로만 4천365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 발표는 정부가 피해 규모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신빙성이 떨어지며 비공식적으론 약 1만5천여 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체르노빌 사고의 진정한 위험성은 사고가 발생한 지 25년이나 흐른 현재에도 피해 상황과 그 규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엔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최소 900만명이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체르노빌 방사능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보다 더 심각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난 후, 인도 델리의 핵안보 전문가 V.K. 두갈이 이에 대해 “다른 원자로도 폭발 가능”, “방사성 물질 노출인구와 오염 지역 범위차원에서 체르노빌 사고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 후쿠시마 제1원전은 원자로 자체의 폭발은 아니지만 1호기에 이어 연쇄적인 수소폭발이 일어났으며 4호기에선 화재가 발생해 매우 심각한 상황까지 치닫게 됐었다. 프랑스 원자력 안전위원회는 지난 16일 후쿠시마원전 사고의 사고 단계가 6등급에 해당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원전 사고 단계는 총 7등급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7등급에 해당한다.
지진과 쓰나미가 해당 지역 전체를 강타하면서 벌어진 사고인 만큼 제1원전의 모든 원자로가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예상이 나온 것. 실제로 핵연료봉 전체가 공기 중에 노출되고 격납용기에 파손 발생이 염려되는 등의 상황이 체르노빌 사고를 연상케 할 만큼 커지는 듯 싶었다.
게다가 후쿠시마 1원전 3호기의 경우 다른 원자로와는 다르게 핵연료로 플루토늄과 우라늄의 혼합연료를 사용하고 있어 더 큰 피해가 우려되기도 했다. 이 경우 우라늄만을 사용한 연료에 비해 방출되는 방사선량이 더 많기 때문이다.
원전 구조 상 체르노빌 급 사고는 지나친 염려물론 최악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체르노빌 사고를 능가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원자로의 구조와 사고의 진행 등을 종합해 보면 체르노빌 사고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이 더 많았다.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사고 후 “두 원전은 설계와 구조가 다르다”며 “후쿠시마 원전이 제2의 체르노빌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격납용기 존재 여부에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핵연료봉은 두께 1m이상의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격납용기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지만 체르노빌 원전은 그렇지 못했다. 격납용기는 설사 핵연료봉의 온도가 상승해 녹아내리는 노심용해의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을 가둬 외부로의 유출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사고 진행의 양상도 다르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전력공급 중단과 함께 냉각수의 부재로 인해 온도 상승으로 피복제가 산화되면서 다량의 수소기체가 발생했다. 이를 원자로 내부의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격납용기 밖으로 수소를 방출했다. 하지만 시설 내에서도 수소기체의 압력은 증가했고 이것이 산소와 결합해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즉, 원자로 자체는 폭발로 인한 큰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은 원자로의 무리한 조작이 노심의 폭주를 불러왔다고 예상된다. 이로 인해 원자로의 온도가 상승해 피복제의 산화로 수소기체가 발생했고 압력증가로 폭발이 일어났다. 체르노빌 원전은 격납용기는 없고 시설 외벽만이 원자로를 보호하고 있었다. 이에 시설 외벽이 파괴되고 핵연료봉은 공기 중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는 이어서 감속재인 흑연 때문에 더욱 심각해졌다. 감속재는 원자로 안에서 연쇄반응을 지속시키기 위해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한다. 흑연은 성능이 좋고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사용하게 됐다. 하지만 흑연은 잘 알려진 발화물질인 만큼 화재사고에 특별히 취약하다.
원전 사고에 있어서의 화재는 대재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는 핵연료봉이 공기 중에 노출된 채 격렬한 화재가 지속된 사고다. 게다가 흑연을 연료로 한 화재는 방사성 물질들이 더욱 멀리까지 퍼져나가게 하는 동력원이 됐다. 후쿠시마 1원전 4호기에서 발생한 화재가 이번 사고에 있어 최악의 상황으로 꼽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는 감속재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행히 상황은 체르노빌 원전처럼 악화되지는 않았다.
이처럼 원전의 구조와 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체르노빌 급의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바로가 비상사태부 장관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약 5%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를 작성한다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극적인 예측들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사고 자체 외에 원전의 사후처리 방식에 대해서도 체르노빌 사고와 비교되고 있다. 아직 확정된 바는 아니지만 후쿠시마 제1원전은 기술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재가동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에 후쿠시마 제1원전의 완전 폐기가 예상되는 가운데 그 방식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의 경우는 가로·세로 100m, 높이 165m의 콘크리트와 납을 사용해 매장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은 매우 극단적인 조치로 추가적인 방사성 물질이 유출의 위협이 있어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는 원전 사고의 수습단계에 있는 만큼 안정된 상태의 상황을 파악한 후 적합한 폐쇄방법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 조재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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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3-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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