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과학자가 11일 동안 쉬지 않고 원자를 하나하나 옮기며 1분 30초짜리 영화 ‘소년과 원자(A boy and his atom)’를 만들었습니다. 유튜브 업로드 하루 만에 100만 뷰를 달성하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영화로 기네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과학과 상상력이 만나면 이렇게 예술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은 20일 국립중앙과학관 사이언스홀에서 열린 ‘제8회 세계과학문화포럼’에서 미국 IBM 재직 당시 제작했던 영화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90초짜리 짧은 영상에는 소년이 춤을 추고, 굴러온 공을 튀기며 놀다가 하늘로 공을 던지는 듯한 장면이 묘사됐다. 이 영상은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이라는 장비를 이용해 원자를 하나하나 옮겨 완성됐다. 영상에서 보이는 동그란 원은 원자를 약 1억 배 확대한 것이다. (관련 영상 보러 가기)
제8회 세계과학문화포럼은 ‘과학! 상상의 미래를 품다’를 주제로 각 분야 석학들의 강연이 펼쳐졌다. 세계과학문화포럼은 과학과 사회의 소통, 과학과 문화의 융합을 통하여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 지지 기반을 강화하고, 미래사회에 영향력이 큰 글로벌 과학 이슈를 논의하는 행사다. ‘과학! 상상의 미래를 품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세계·과학·우리가 그리는 미래, 미디어·예술·우리의 삶 속 미래 등 6개의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어려운 양자역학도 예술이 될 수 있다
하인리히 단장은 ‘모두를 위한 매력적인 양자역학’을 주제로 제8회 세계과학문화포럼의 포문을 열었다. 하인리히 단장은 최근 양자컴퓨팅의 기본 연산 단위인 큐비트(양자큐비)를 원자 하나에 구현한 성과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보고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관련 기사 보러 가기 - 국내 연구진이 만든 'K-양자컴퓨터' 나온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큐비트를 이용하여 병렬 계산이 가능한 연산장치다. 가령 f(x)라는 함수를 2비트로 계산한다면 컴퓨터는 00, 01, 10, 11의 수를 차례로 대입하며 계산을 순차적으로 실행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U(t)라는 함수를 풀 때 모든 수를 동시에 넣고 프로세스를 한 번만 실행해 답을 얻는다. 양자역학에서는 0과 1뿐만 아니라 0과 1이 중첩된 상태까지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인리히 단장이 이끄는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이러한 양자역학 기반 기술의 미래를 준비할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사터럴링현미경(STM)이라는 장비를 주로 사용한다. STM은 LP판의 작동 원리와 유사하다. 뾰족한 탐침으로 표면과 원자 속 전자의 스핀(자전)을 관찰하는 것이다. 관찰을 넘어 원자를 하나씩 붙들고 위치를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STM과 전자스핀공명(ESR)이라는 기술을 결합하여 2017년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메모리’를 구현했다. 원자 하나에 1비트의 디지털신호를 구현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상영된 모든 영화를 USB 메모리카드 한 개 크기의 칩에 충분히 담을 수 있다. 이어 지난 4일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큐비트’를 구현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양자역학 분야 연구로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은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단적으로는 연구성과가 나왔을 때 유명 유튜버와 협력해서 대중에게 쉽게 알릴 수 있게 노력을 펼친다. 대중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예술 공모전도 꾸준히 개최해오고 있다.
하인리히 단장은 “2019년에는 ‘양자의 세계’를 주제로, 2021년에는 ‘스핀아트’를 주제로 예술 공모전을 진행했으며 2024년에는 ‘큐비트’ 주제의 전시회를 열기 위해 현재 공모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 아트를 넘어 ‘하이브리드 아트’로
전시 큐레이터인 젠스 하우저 독일 카를스루에공대 교수는 ‘예술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하우저 교수는 독일 출신 전시 큐레이터이자 이론가로 프랑스와 덴마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예술과 기술의 초점을 맞춘 다수의 연구를 진행하고 전시를 선보여왔다.
일례로, 오스트라에서 열리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심사위원으로도 몸담고 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은 미디어아트 등 예술과 기술을 융합한 전시의 시초격이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리츠’하면 미디어아트를 떠올릴 정도로 도시의 이미지 변화에도 큰 역할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우저 교수는 1990년대부터 페스티벌에 참여해왔으며, 2007년부터는 심사위원으로 몸담았다.
하우저 교수는 “처음에는 편리한 도구라는 개념으로 기술을 예술에 도입했지만 기존 ‘미디어아트’의 명칭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야가 확장되어가고 있다”며 “예술은 생명공학, 화학, 기계, 나노공학 등 융합 분야가 점점 확장되며 ‘하이브리드 아트’의 성격을 띠게 됐다”고 말했다.
비디오가 새로운 예술 매체로 인정받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효소를 이용한 음악, 효모로 그린 그림, 데이터 음향화, 박테리아로 만든 조각 등 다양한 융합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우저 교수는 “예술가들의 작품은 과학자들의 연구만큼 체계적이며, 과학이 미래를 바라볼 때 예술은 전체의 삶을 그린다”며 “보통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술적으로 접근하고, 해결하려 하지만 예술처럼 전체적인 비전을 토대로 접근하는 사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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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10-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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