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C) 소재는 연필심인 흑연, 다이아몬드, 그래핀 등 원자 배열에 따라 다채로운 물리적 특성을 갖는다. 새로운 탄소 구조의 발견은 학술적‧산업적 가치가 높다. 노벨상과도 인연이 깊다. 1996년 노벨 화학상은 탄소 원자 60개가 공 구조를 이룬 ‘풀러렌(C60)’ 개발 공로로, 2010년 노벨 화학상은 탄소 원자 6개가 육각형 평면 구조를 가진 ‘그래핀’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수여됐다.
지금까지 개발된 탄소 소재는 모두 그래핀처럼 평평하거나 풀러렌처럼 볼록한 구조였다. 과학자들은 말발굽처럼 오목한 탄소 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최근, 그 실현 가능성을 확인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탄소 슈왈차이트’ 합성 가능성 확인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연구팀은 중국 과학기술대와 공동으로 새로운 탄소 소재를 합성하고, 탄소 원자의 배열이 대면적에 걸쳐 규칙적인 다공성 소재라는 점에서 ‘LOPC(Long-range Ordered Porous Carbon)’라고 명명했다.
그래핀과 달리 풀러렌은 응용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 응용을 위해서는 풀러렌의 원자 배열이나 구조를 변형시켜야 한다. 하지만 0.7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에 불과한 지름과 안정적인 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어 화학적‧물리적 변형이 어렵다. 변형에 성공한다 해도 응용가치가 있는 수준으로 대량 합성해야 한다는 난제가 또 남는다.
공동연구진은 풀러렌을 이용해 새로운 탄소 소재를 합성했다. 분말 형태의 풀러렌을 알파리튬질소화합물(α-Li3N)과 혼합한 뒤 550℃까지 가열하자, 풀러렌 속 탄소 간의 결합이 일부 끊어지고 인접한 풀러렌끼리 결합하며 연결됐다. 가위로 축구공을 자른 뒤 여러 개 이어 붙인 구조를 생각하면 쉽다. 이어 첨단 분석 장비들을 활용하여 합성된 구조를 분석한 결과, LOPC는 입체적 구조의 풀러렌이 그래핀과 같은 2차원 소재로 변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연구진은 LOPC의 물리적 특성을 분석했다. 전기전도도가 낮은 풀러렌을 재료로 사용했음에도 LOPC는 상온에서 반도체 소자 수준의 전기전도도를 나타냈다. 30K(-243.15℃) 미만의 저온에서는 금속 수준의 전기전도도를 보였다.
얀우 추 중국 과학기술대 교수는 “독일의 수학자인 헤르만 슈왈츠(Hermann Schwarz)는 비눗방울 표면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음(-)의 곡률을 갖는 구조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많은 과학자들이 이 구조를 갖는 탄소 소재, ‘탄소 슈왈차이트’를 합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루오프 단장 연구팀의 선행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탄소 슈왈차이트와 결합이 닮은 새 소재를 합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탄소 소재들은 그래핀처럼 평면이거나 풀러렌처럼 볼록한 구조였다. 말의 안장과 같이 음(-)의 곡률을 갖는 오목한 탄소 소재의 합성 가능성은 1990년대에 제시됐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제로 합성된 적은 없다.
일반적으로 탄소 원자는 주변 4개의 원자와 화학적으로 결합(4가 결합)하는 데, 음의 곡률을 구현하려면 탄소 원자가 3개의 다른 원자와 결합하는 ‘3가 결합’ 구조가 필요하다. 루오프 단장은 2010년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스(Advanced Materials)’에 3가 결합 탄소를 최초로 합성한 연구를 보고했다. 이를 토대로 중국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3가 결합을 가진 LOPC 합성에 성공했다.
LOPC의 합성은 탄소 슈왈차이트 합성을 위한 중요한 단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루오프 단장은 “이번 연구는 신물질인 LOPC를 수 그램(g) 수준의 대용량으로 합성하고, 그 구조를 명확하게 규명한 첫 사례로 향후 킬로그램(kg) 규모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상적 물질인 ‘탄소 슈왈차이트’ 합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1월 12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제올라이트를 주형으로 탄소 슈왈차이트 합성
이번 연구는 순수하게 탄소 물질만을 이용하여 탄소 슈왈차이트 합성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편, 다른 물질을 주형으로 이용해 음의 곡률을 가진 탄소 슈왈차이트를 합성한 사례도 있다.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연구진은 2018년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한국과 일본 연구진이 기존 제올라이트를 주형으로 만든 탄소(ZTC‧Zeolite-cated carbons) 구조가 오랫동안 모색된 슈왈차이트임을 증명했다. 독자적으로 합성하는 대신, 촉매를 이용하여 제올라이트 표면에서 탄소막을 성장시킨 것이다. 제올라이트는 그리스어로 ‘끊는다’는 뜻의 zeo와 ‘돌’이라는 뜻의 lite의 합성어다. 문자 그대로 수 나노미터 지름 크기의 구멍이 수없이 많이 뚫린 돌을 뜻한다.
지금까지 인류는 약 200여 가지의 제올라이트를 인공적으로 합성했다. UC버클리 연구진은 200여 가지 제올라이트 중 탄소 슈왈차이트 합성의 주형으로 쓰이기 적절한 제올라이트를 찾았고, 그중 15개만이 틀로 쓰기에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탄소 슈왈차이트는 다량의 전기를 저장하는 효율적인 축전지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내부 공간에 다른 분자를 저장하고, 넓은 표면적을 이용해 효율 좋은 촉매로 개발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핀이 최초로 등장하고 완벽한 그래핀(소재 전체에 걸쳐 원자 한 층으로 균일한)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듯, 탄소 슈왈차이트 역시 품질 좋은 소재를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 상업화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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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01-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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