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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한소정 객원기자
2021-11-11

밀렵을 피하려 상아를 잃어가는 코끼리들 인간의 밀렵이 ‘선택압’으로 작용된 극단적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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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커먼스

‘자연선택’은 생존이나 번식에 대한 압력이 생겼을 때 이에 유리한 ‘변이’를 가진 개체들이 살아남아 그 변이가 집단 내에서 높은 빈도로 발현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산업화와 함께 도시의 공해가 심해지면서 영국 맨체스터에서는 흰색이던 가지나방이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흰 나방들 사이에 우연히 검은 날개를 가진 나방이 생겼다가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아 생존과 번식에 유리해지면서 발현 빈도가 높아졌던 것이다.

최근 ‘사이언스’에는 인간의 밀렵으로 ‘상아 없는 코끼리’의 빈도가 높아졌다는 보고가 실렸다. 코끼리들은 주로 값비싼 ‘상아’ 때문에 사냥감이 되는데, 상아가 없으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상아 없는 변이를 가진 코끼리들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상아’를 위한 인간의 밀렵

이것은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의 코끼리들 이야기로, 이곳에서는 1970년 말부터 1990년 초까지 내전이 있었다. 전쟁 물자 조달을 위해 내전 동안 상아를 가진 코끼리들에 대한 사냥이 집중적으로 행해졌는데, 이 시기 모잠비크의 국립공원 ‘고롱고사’의 경우 코끼리 개체 수가 90퍼센트 이상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개체 수가 줄어든 코끼리들 사이에 상아 없는 개체들의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인데, 특히 암컷들 사이에서만 관찰되었다. 고롱고사의 암컷 코끼리들 중 상아가 없는 개체들은 내전이 있기 전에 18.5%의 빈도였다가, 내전 이후 50.9%로 크게 증가했다.

상아 없는 코끼리들, 왜?

먼저 연구진은 이것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28년간 2천500여 마리의 코끼리들이 242마리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상아가 있든 없든 생존율이 같은 조건을 시뮬레이션한 것이다. 28년간 실제 관찰된 상아 없는 개체들의 생존율은 상아가 있는 개체들에 비해 5배 더 높았는데, 연구진은 이것이 개체군 병목현상과 같이 갑작스럽게 개체군이 줄어들면서 특정 변이를 가진 개체들의 빈도가 늘어나는 현상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자연선택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정 변이에 대한 강력한 선택압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전적으로 대물림될 것이었다. 특히, 상아가 없는 코끼리들의 빈도가 높아진 것이 암컷들에게서만 관찰되었는데, 연구진은 이것이 성염색체 X를 통해 관련된 유전적 변이가 대물림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가정했다. 한편, X염색체 상의 변이가 우성 유전되며 암컷들에게서 표현형의 차이를 일으키는 경우, 이것이 수컷들에게서는 치명적인 경우들이 있다는 것에도 착안했다.

©위키커먼스

상아 없는 변이는 X염색체 상에 존재하고, 우성

이 가정대로라면 상아가 있는 코끼리들의 유전형은 보통의 변이(X+)를 가진 암컷(X+X+)과 수컷(X+Y)으로 표현될 것이었다. 상아가 없는 코끼리들은 희귀 변이(X-)를 가진 암컷(X+X-)들일 것이었다. 희귀 변이가 수컷에게서 치명적이라면 상아가 없는 수컷(X-Y)은 태어나지 못할 것이고, 모든 암컷은 상아가 있는 아빠에게서만 유전자를 물려받게 되기 때문에 늘 성염색체 중 하나는 보통의 변이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아가 없는 암컷(X+X-)은 수컷(X+Y)과의 사이에서 1:1의 비율로 상아가 있는 딸(X+X+)과 상아가 없는 딸(X+X-)을 낳게 될 것이었다. 아들의 경우 1:1의 확률로 상아가 없는 경우(X-Y)와 상아가 있는 경우(X+Y)의 조합이 이루어지지만 실제로 태어나는 것은 상아가 있는 경우뿐이게 된다.

연구진은 실제로 고롱고사의 암컷 코끼리들이 낳는 새끼들의 표현형이 예상되는 대로였다고 밝혔다. 상아가 있는 암컷들은 대부분의 딸에게 상아가 있었던 데 비해, 상아 없는 암컷들은 대략 1:1의 비율로 상아 있는 딸과 상아 없는 딸을 낳았으며, 아들에 비해 딸을 낳은 비율은 67%였다.

상아 없는 코끼리들이 물려받은 유전적 변이를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암컷 코끼리 중 상아가 있는 개체 7마리, 상아가 없는 개체 11마리의 유전체 서열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에나멜과 치주 형성에 관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전자 AMELX가 위치한 부분에서 상아 없는 코끼리들에게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자연선택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유전자는 인간의 유전체 상에서 삭제되는 경우 치아 에나멜 형성에 이상이 생길 뿐 아니라 이 유전형을 갖는 아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 결과들을 바탕으로 연구진은 모잠비크의 내전 동안 행해진 코끼리 밀렵이 선택압으로 작용해 암컷 코끼리들 사이에 상아 없는 개체들의 빈도를 높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인간 활동이 ‘선택’으로 작용해 짧은 시간 동안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증거라고 이야기했다.

한소정 객원기자
sojungapril8@gmail.com
저작권자 2021-11-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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