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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고장원 SF평론가 |
2011-09-01

청소년 과학소설 출판의 근시안적 행태 1990년대: 번역과 창작에서의 본격적인 도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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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용 과학소설의 경우에는 여러 출판사에서 문고판을 꾸준히 펴내 양적으로는 풍성해보였지만 새로운 기획과 작품으로 연계되지 못해 실속은 없었다.

문고판이나 전집류 출판사들은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던 시절이라 영리 극대화를 위해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려는 시도보다는 오래 전 다른 출판사들에서 나온 일본어 중역판을 그대로 가져다 판형과 표지 디자인만 바꿔 재간하는 편법을 자주 썼다. 이러한 지적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실례를 들어보겠다. 

 
1990년대에도 청소년문고판에서 과학소설 출간은 기획이란 게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출판사들 간에 서로 베껴대기 바빴다. 예를 들어 '세계 공상과학 모험명작선'(왼쪽)과 '주니어 공상과학 명작선'(오른쪽)은 목록에 포함된 과학소설들 중 반수가 서로 겹친다.

1990~1992년 사이에 학원출판공사와 금성출판사가 각기 '세계 공상과학 모험명작선'과 '주니어 공상과학 명작선'을 펴냈다. 공교롭게도 두 문고판은 똑같이 총 32권이 1질이었다. 이중에서 서로 겹치는 작품이 9권이었다.

로벗 앤슨 하인라인(Robert Anson Heinlein의 '떠도는 도시 우주선 (Orphans of the Sky); 1963년'이 '방황하는 도시 우주선'으로, 아서 K. 반즈(Arthur K. Barnes)의 '혹성 사냥꾼 (Interplanetary Hunter); 1956년'이 '행성 사냥꾼'으로, E. C. 엘리엇(Eliott)의 '우주소년 캠로 (Kemlo and the Crazy Palnet); 1954년'가 '우주소년 케무로'로, 그리고 패트릭 무어(Patrick Moore)의 '달나라 핵폭발(The Master of the Moon); 1952년'이 '달세계 핵폭발'로 제목만 살짝 다듬었을 뿐이다.

'세계 공상과학 모험명작선'은 시리즈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32권 중 정작 10권은 추리소설들로 채웠기 때문에 남은 과학소설 목록 중 거의 반수가 '주니어 공상과학 명작선'과 겹친다.

그뿐 아니다. '세계 공상과학 모험명작선' 가운데 수잔 마르텔의는 이미 1983년 동서 문화사가 먼저 간행한 바 있고 로벗 실버벅(Robert Silverberg)의 '대빙하 생존자(Time of The Great Freeze)는 이듬해인 1993년 중앙미디어와 서영출판사가 낸 문고판과 겹친다. 아이디어회관에서 1970년대에 펴낸 '세계SF명작'과는 5권이 겹친다. 이 문고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은 아홉 종으로 추정된다. 결국 반 이상이 겹친다는 얘긴데, 더 많은 문고판과 대조해보면 중복 작품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주니어 공상과학 명작선'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총 32종의 과학소설 중에 할 클레멘트(Hal Clement)의 '별에서 온 탐정 (The Ranger Boys in Space); 1956년'과 샘 킴벌 머윈 2세(Samuel Kimball Merwin, Jr.)의 <차원 퍼트롤> 그리고 머레이 라인스터(Murray Leinster)의 '검은 우주선'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다른 출판사에서 펴낸 기존 작품들과 겹친다. 특히 아이디어회관의 '세계SF명작'과는 무려 20종이나 겹친다. 이쯤 되면 과연 출판기획이란 게 필요하기나 했을까?

이러한 근시안적인 행태는 과학소설 소비층을 청소년으로만 한정해서 본 까닭이다. 출판사들은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오래된 작품들이라 해도 시장에서 희소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기지 않는다. (현재형을 쓴 것은 이러한 현상이 21세기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독자들이 졸업하고 나면 어차피 전혀 새로운 학생들이 이 시장에 유입될 테고 그들에게는 모든 게 다 새로워 보일 것이란 얄팍한 계산이 서 있다. 그 결과 수십 년이 흐르도록 수십 군데가 넘는 출판사들이 과학소설을 세계명작문고에 끼워 넣거나 때로는 SF전용문고로 포장해 시장에 내놓았지만 신작 타이틀의 증가세는 매우 완만하다.

콘텐츠 공급의 이 같은 태만은 청소년용 과학소설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향후 어른이 되어 폭넓은 독서를 해야 할 어린 독자들에게 과학소설에 대한 조잡한 선입관만 심어주었다. 과학소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 시절에 일회성으로 읽고 마는 부류의 책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고판 과학소설들이 대개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에 해외에서 출간된,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시대감각이 한참 뒤떨어지는 골동품 일색이라는 것도 문제다. 명작이니 고전이니 포장을 하지만 그런 이름을 듣기 부족한 작품들이 태반이다. 이래서야 수집병에 걸릴 정도로 과학소설을 체질적으로 좋아하는 일부 열혈독자가 아니라면 어른이 되어서까지 과학소설을 읽는 습관이 생길 리 없다.

다만 '세계 공상과학 모험명작선'의 경우, 한 가지 의미 있는 편집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목록에 에르지 브로시키에비치의 '100억 레일 소년들'과 비탈리 멜렌체프의 '우주기원 0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구, 그중에서도 거의 미국 일변도의 작품들만 소개되어온 현실에서 폴란드와 러시아 작가의 소개는 비록 절대적인 수는 적으나 세계 과학소설 문학의 의 균형 잡힌 정보 교류를 위한 작은 일보 전진이라고 생각된다. 둘 다 공산화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이지만 내용 자체가 청소년 대상 인본주의적 교훈담이어서 국내에 소개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던 듯하다.

이는 아이디어회관의 '세계SF명작'에 포함된 이반 안토노비치 예프레모프(Ivan Antonovich Yefremov)의 '안드로메다 성운(Tumannost’Andromedy); 1957년' 사례와 대비된다. 후자의 경우에는 러시아 작가의 사회주의 유토피아 사상이 작품의 주조를 이루다 보니, 일본어 중역판에서는 아예 원작의 정치사상적인 면을 거세하고 모험담 위주로 재구성하면서 원래 분량의 1/3로 줄었다.

1994~1996년 사이에 완간된 고려원의 '고려원 어린이 SF' 문고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총 10권으로 구성된 이 문고에서는 아서 C. 클락(Arthur C. Clarke)의 단편집 '태양계 최후의 날(Rescue Party); 1946년'과 '돌고래의 모험(Dolphin Island); 1963년', 로벗 앤슨 하인라인의 '꼭두각시의 비밀(The Puppet Masters); 1951년'과 '22세기 경찰학교 (Space Cadet); 1948년', 아이작 아시모프의 '은하계의 아들 우주 레인저(David Starr, Space Ranger); 1952년'과 여러 작가들의 단편집 '되살아난 우주괴물' 등 국내에 자주 소개되지 않은 신선한 작품들이 반수를 넘어선다. 

 
 
 
청소년 과학소설의 창작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낙원이 고군분투했다. 1990~1992년 중단편집 '사라진 행글라이더'와 중편 '페기별의 타임머신'이 문고판에 포함되어 출간되었다. '사라진 행글라이더'에는 동명의 작품 외에 '우주고양이 소동'과 '알갱이의 기적'이 실려 있다. 아동문학 평론가 김이구는 <사라진 행글라이더>가 과학소설의 틀에 박힌 설정인 미래 대신 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우리나라 소년들이 외계인을 주도적으로 대하는 상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의를 부여했다.

비행접시 같은 첨단과학문명의 이기(利器)와 외계인 방문이란 역사적 대면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소년은 별로 놀라지 않고 오히려 곤란에 빠진 외계인을 성심껏 도와준다. 김이구는 이 작품에 나오는 외계인을 이방인으로 환치할 수 있으며 이방인에 대한 주인공의 자신감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선 국가의 일원으로서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한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읽는 창작과학소설에서 주인공 소년소녀가 더 이상 첨단과학문명이나 외계의 존재 앞에서 신기해하는 단계는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각은 '페기별의 타임머신'에서 다시 변주된다. 이 작품은 주인공 남매가 곤란에 처한 외계인을 도와준 끝에 함께 우주여행에 나서는 이야기다. 한낙원은 이외에도 장편 '별들 최후의 날'과 SF형식을 빌린 과학동화 '길 잃은 애톰' 등을 펴냈다.

고장원 SF평론가 |
저작권자 2011-09-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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