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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기자
2011-07-26

시간 속에 숨는 은신술 가능하다 빛 속도 조절해 ‘비밀구역’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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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는 다양한 마법도구들이 등장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빗자루, 소망을 보여주는 거울, 기억을 담아두는 대야 등 아이들의 상상력을 채워주는 물건들이 매회 등장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투명 망토’이다. 투명망토를 몸 전체에 뒤집어쓰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드디어 해리 포터의 마법이 현실에 등장했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연구진이 물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메타물질을 개발한 것이다. ‘메타플렉스(metaflex)’라 불리는 이 특수물질은 빛을 왜곡시키는 메타물질의 일종으로 물체에 닿은 광선이 표면을 따라 휘어지게 한다. 강 한가운데 바위가 솟아 있다면 물이 자연스레 그 주위를 돌아서 흘러가는 것과 비슷하다.

▲ 투명 망토 표면의 메타물질이 빛의 방향을 왜곡시키면 관찰자는 물체를 볼 수가 없다. ⓒIOPscience.iop.org
이 물질로 망토를 만든다면 뒤편에서 직진하며 다가오던 빛이 망토 주위를 감싸 흐르다가 다시 직진한다. 관찰자의 눈에는 물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메타물질(metamaterial)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을 가리키는 용어로, 광파나 음파 등 다양한 파장을 과도하게 왜곡시키는 기능이 있다. 지진파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거나 해일의 물결파로부터 해안시설을 보호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지난 2월에는 KAIST 연구진이 메타물질을 실제로 만들어 네이처(Nature)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 코넬대 연구진이 메타물질을 이용해 새로운 방식의 은신술을 선보였다.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 숨는’ 기술이다. 온라인 학술정보 서버인 아카이브(arXiv.org)에 공개된 논문은 7페이지에 불과하지만 각국의 물리학자들과 수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빛을 반으로 나눠 속도 조절하면 ‘비밀구역’ 생겨

논문 제목은 ‘시간 은신술 시연(Demonstration of temporal cloaking)’으로, 모티 프리드먼(Moti Fridman)을 비롯해 총 4명의 코넬대 응용물리대학원 연구진이 참여했다. 기존의 은신술은 빛의 ‘방향’을 조절해 물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했지만 이번 방식은 빛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에서 빛은 1초에 약 29만9천800킬로미터의 속도로 이동한다. 물이나 특수물질 등의 매질을 지날 때는 그 속도가 약간 느려진다. 연구진은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 쓰이는 광섬유를 메타물질로 만든 후 특수장치를 연결해 빛의 속도를 조절했다.

‘시간 렌즈(time lens)’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실리콘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통과하는 광파 즉 빛의 파장 중 반은 속도가 빨라지며 나머지 반은 속도가 느려진다.

광케이블의 다른 쪽에 또 하나의 시간 렌즈를 부착하면 각기 다른 속도로 달려오던 빛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면서 정상 속도를 회복한다. 빛의 속도차에 의해 새로운 시공간이 열렸다가 다시 감쪽같이 닫히기 때문에 관찰자는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두 렌즈의 중간지대를 지나는 빠른 광파와 느린 광파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차가 발생하는 ‘어둠의 시공간’ 즉 비밀구역이 생기는 셈이다.

▲ 코넬대 연구진은 '시간 렌즈'를 부착한 광섬유 케이블을 이용해 빛의 속도를 조절하고 '어둠의 시공간'을 만들어냈다. ⓒarXiv.org

논문 속 실험에서는 이 시공간이 15분의 1초 동안 지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구진은 “어느 정도의 광파를 감출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광케이블의 길이를 늘리면 이론적으로는 1마이크로초 즉 100만분의 1초 수준으로 지속시간을 늘릴 수 있다.

이론적 배경은 지난 2월에 발표돼

사실 이 아이디어는 지난 2월 국제학술지 광학저널(Journal of Optics)에 실린 바 있다. 마틴 맥콜(Martin McCall), 알베르토 파바로(Alberto Favaro), 폴 킨슬러(Paul Kinsler) 등 런던임페리얼대 물리학 교수들은 ‘시공간 은신술 또는 역사 편집자(A spacetime cloak, or a history editor)’라는 논문에서 빛의 속도를 조절해 시간을 왜곡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공저자인 파바로 교수는 사이언스데일리(Science Daily)와의 인터뷰에서 시공간 은신술(STC, spacetime cloak)의 원리를 흥미롭게 설명했다.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지나가는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차량이 보행자와 마주쳤을 때 속도를 줄였다가 지나친 후에 다시 속도를 높인다면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관찰자의 눈에는 그저 끝없이 지나가는 자동차의 행렬만이 보일 것이다. 빽빽한 자동차의 흐름 속에 비밀스런 시공간이 열린 것이다.

▲ 런던임페리얼대 연구진은 빛의 방향을 왜곡시킨 기존의 연구에 시간축(t)을 추가해 새로운 은신술을 개발했다. ⓒIOPscience.iop.org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이들은 기존의 광섬유를 개선해 빛의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냈다. 이를 토대로 코넬대 연구진이 시간 은신술을 시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게다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얻어냈다. 킨슬러 교수는 사이언스뉴스(Science News)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연에서 발생한 비밀의 구멍은 이론적으로 계산한 것보다 훨씬 크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비밀의 구역’이 지속되는 시간을 몇 분 수준으로 늘린다면 범죄에 이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맥콜 교수는 “8분 정도의 시공간 은신술을 발휘하려면 광학장치의 크기가 태양계만큼 커져야 한다”고 계산했다.

결국 시간 속에 숨는 새로운 투명 망토의 꿈은 이론에 불과한 것일까? 맥콜 교수는 “메타물질을 만드는 기술을 계속 발전시킨다면 이상적인 상황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적인 예측을 했다.

임동욱 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1-07-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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