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은 활기찬 생명의 상징이다. 요즘 같은 봄이면 새싹이나 나뭇잎들로 인해 많은 곳에서 아름다운 녹색 식물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머나먼 우주에 지구와 같이 다양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곳 또한 푸른 녹색으로 가득할 것이라 상상하기도 한다. 실제 외계 행성을 그린 영화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활기찬 생태계가 존재하는 곳이라 할지라도 꼭 푸른빛을 띠라는 법은 없다. 환경에 따라서는 전체적으로 붉은 색, 보라 색, 심지어는 검은 색으로 가득한 행성이 있을 수 있다.
지구가 녹색을 띄는 이유는 식물 내의 엽록소 때문이다. 산림은 육지의 1/3을 차지하고 있으며 꼭 산림이 아니라 할지라도 녹색식물은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다. 식물은 태양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엽록소는 빛을 받아 들이고 식물이 흡수한 물, 이산화탄소 등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생산한다. 식물이 녹색이기 때문에 왠지 녹색 빛을 좋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식물을 녹색으로 보이게 하는 엽록소는 빛의 파장 중 500~600nm에 속하는 녹색 빛을 잘 흡수하지 않는다. 이에 흡수되지 않은 녹색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
다중성계에 존재하는 행성과 그 위의 생명하지만 빛을 받는 환경이 달라진다면 식물이 필요로 하는 빛의 파장도 달라질 수 있다. 빛을 주는 것은 그 행성의 모항성. 즉, 들어오는 빛의 환경이 달라진다는 것은 모항성의 변화를 말하는데 빛은 파장 별로 분류되긴 하지만 빛 자체의 종류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변할 수 있는 요인은 바로 광원인 모항성의 개수다.
실제로 우주엔 태양처럼 단일항성으로 존재하는 경우보다는 쌍성계 혹은 다항성계로 존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쌍성계의 경우는 단일 항성의 생성과정과의 물리학적 차이 때문에 행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했었지만 두 항성이 가까이 붙어있는 근접쌍성의 경우 목성과 같은 대형 행성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실제 그런 행성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2009년,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이 처녀자리 방향으로 590광년 떨어진 쌍성계에서 그것들을 공전하는 2개의 행성을 발견해 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 이 전에도 쌍성계에서 행성이 발견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이미 행성을 지니고 있는 단일 항성계가 더 큰 항성의 중력에 포획돼 발생한 쌍성계였다. 하지만 재작년에 발견된 것은 쌍성계의 진화과정으로부터 행성이 만들어진 것으로 관측됐다.
영화 ‘스타워즈’엔 이런 행성을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의 고향인 타투인 행성에서 지평선으로 지고 있는 두 개의 태양이 등장한다. 타투인 행성처럼 모항성이 두 개 이상이며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물론 태양이 두 개이기 때문에 행성 환경은 물론 생명체의 진화과정 상에도 현재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식물의 색깔이다.
태양형 항성과 적색왜성으로 구성된 다중성계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항성을 가지고 있으며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이 존재할 경우, 그 곳에 살고 있는 나무들은 녹색 대신 검은 색이나 회색을 띄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대의 잭 오말리 제임스 박사는 “두 개 이상의 항성을 돌고 있는 행성의 경우는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데에 다양한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그 항성들의 온도는 그것들의 색과 광합성에 이용되는 빛의 색깔을 결정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제임스 박사와 그 연구팀은 다중성계에 존재하는 행성에 식물이 산다면 행성의 환경이 그 식물의 모습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우선 존재 가능한 다중성계를 구성하기 위해 태양형 항성과 적색왜성을 선택해 여러 조합을 만들어 냈다. 적색왜성은 태양과 같은 주계열성에 속하지만 질량은 태양의 반 이하로 다른 항성들에 비해 어두워 눈에 잘 띄지는 않는 별이다.
하지만 생명체 존재가 가능한 행성을 거느릴 수 있다. 오히려 다른 주계열성 보다 생명존재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 태양은 먼 미래에 진화를 통해 적색거성이 되고 끝내 폭발을 일으킨 후 수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때가 되면 지구의 생명도 끝이다. 하지만 적색왜성의 경우는 진화에 소요되는 시간이 우주의 연령보다 길어 주계열성에서 진화하지 않기 때문에 타 항성들에 비해 매우 안정적이다.
게다가 이것들은 태양형 항성과 함께 우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항성인데다 다중성계에서 흔하게 발견되기 때문에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연구팀은 다중성계에서 태양형 항성이 25%이상, 적색왜성이 50%이상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은 식물, 자외선 차단이 발달된 식물의 모습은 어떨까연구팀은 이렇게 조합한 상황들을 가지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실행했다.
단일항성계와 다중성계는 항성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열과 빛의 정도에 차이가 날 것이며, 다중성계의 경우 여러 조합과 항성간의 공전 형태 등에 따라서도 주변 행성의 환경에 많은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단일항성계와는 분명히 다른 환경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연구팀은 시뮬레이션 결과를 분석해 어떤 차이가 발생할지에 대해 예측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런 다중성계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식물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지구의 식물들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 설명했다. 그 중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색깔이다.
예를 들어 적색왜성으로 이루어진 다중성계의 경우, 이에 속해 있는 생명 존재 가능 행성의 식물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녹색을 띄지 않는다. 녹색 식물들은 광합성의 효율을 위해 녹색파장의 빛을 흡수하지 않아 녹색을 띄게 되지만 실험으로 예상한 식물들은 어두운 적색거성의 영향 때문에 빛의 파장을 가릴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이 식물들은 어두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양의 빛을 흡수하려 할 것이며 거의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결국엔 검은색 또는 회색으로 보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즉, 이 행성에 산림이나 넓은 초원이 있다면 아마 칙칙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불에 타 재로 변한 숲이나 어두컴컴한 지옥쯤을 연상케 할 것이다.
만약 태양형 항성으로 이루어진 다중성계라면 또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여러 개의 항성으로부터 유입되는 강렬한 자외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모습으로 진화했을 것이란 예측이다. 식물 스스로 자외선을 차단하는 차단막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식물 외형이 달라지거나 색깔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아직 태양계와 비슷한 단일항성계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을 발견하지 못했으면서 존재 가능성이 희박한 다중성계의 행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현실감 없는 상상으로 밖에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상상은 때때로 자유로운 공상을 통해서도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만약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 감독이 이와 같은 연구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행성 타투인에 검은색 잎사귀를 가진 식물들을 등장시켰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조재형 객원기자
- alphard15@nate.com
- 저작권자 2011-04-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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