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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기자
2011-02-22

햇빛이 망쳐놓은 반고흐의 그림 자외선 때문에 노란색이 갈색으로 변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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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의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 그림 한 점의 가치가 1천억원에 달하는 화가, 그러나 살아서는 단 한 점의 그림만이 싼값에 팔렸던 화가, 동네 사람들의 탄원에 의해 몇 차례나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던 화가...

스스로 귀를 자르기도 하고 자기 가슴에 권총을 쏘기도 했던 화가, “슬픔은 끝나지 않으리(La tristesse durera toujours)”라는 유언을 남긴 채 남동생의 품안에서 쓸쓸히 죽어간 화가, ‘별이 빛나는 밤에(Starry Starry Night)’라는 대중가요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이야기다. 반고흐의 그림은 강렬한 색채로 유명하다. 특히나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반 고흐의 방’,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등 대부분의 작품에는 밝고 생생한 노란색이 등장한다.

저렴한 크롬옐로 염료를 썼던 화가들

19세기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이 밝은 노란색은 크롬산납(lead-chromate)을 이용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크롬옐로(chrome yellow) 또는 황납이라 불린다. 폴 세잔느, 존 컨스터블, 조르주 쇠라 등 동시대 화가들도 많이 사용했다.

반고흐의 그림 속 밝은 노란색이 최근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존의 평론가들은 “싸구려 물감을 썼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내놓았다.

그러나 ‘분석화학(Analytical Chemistry)’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크롬옐로가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갈색으로 변한 이유는 햇빛 속 자외선 때문이다. 벨기에,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의 과학자들이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 알아낸 결과다.

햇빛 속 자외선이 크롬옐로 색깔 변형시켜

연구진은 프랑스 그르노블 소재의 ‘싱크로트론(Syncrotron)’이라는 방사광 입자가속기에서 얻어낸 강력한 엑스선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크롬옐로 샘플은 벨기에 왕립미술관에 보관 중인 동시대 야수파 화가 릭 바우터스(Rik Wouters)의 그림에서 얻어냈다. 3개의 크롬옐로 샘플을 3주 동안 자외선에 노출시킨 결과, 황산바륨(barium chromate)이 포함된 샘플이 초콜릿 같은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보였다.

나노미터 두께의 표면의 미세층에는 원자가가 6으로 밝은 노란색을 띠는 6가크롬이 있다. 그 중에 황산바륨이 섞인 크롬옐로 속 전자들이 자외선에 의해 점점 사라지면서 진녹색의 3가크롬으로 변하게 되고, 이에 따라 우리 눈에는 짙은 갈색으로 변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참고로 원자가(原子價)는 여러 원자가 뭉쳐 분자를 이룰 때 정해진 원자수에 따라서 결합이 이루어지는 값을 뜻한다.


연구진은 1887년작 ‘세느강변의 둑방길(Banks Of The River Seine’과 1888년작 ‘아이리스 피어난 아를르의 풍경(View Of Arles With Irises)’ 등 2점의 그림을 대상으로 변화를 추적했다. 1887년 당시에는 밝은 노란색이던 그림이 2011년 현재에는 약간 더 어두워졌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2050년에는 원래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어둡고 탁한 색으로 변할 것이다.

공동저자인 벨기에 안트베르펜대학교의 코엔 얀센스(Koen Janssens)와 이탈리아 페루자대학교의 레티치아 모니코(Letizia Monico)는 논문에서 “자외선을 막을 수 있는 코팅을 해서 어두운 장소에 보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서늘한 곳에서는 변화 속도가 더뎌진다”고 덧붙였다.

미술 복원에 활용될 강력한 엑스선 검출법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복원 전문가들은 큰 의미를 부여한다. 런던에 거주하는 복원전문가 필립 로빈슨(Philip Robinson)은 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와의 인터뷰에서 “수채화 물감만이 빛에 약하다는 통념을 깸으로써 유화를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또한 ‘반고흐의 방’을 직접 복원한 암스테르담 반고흐 박물관의 복원전문가 엘라 헨드릭스(Ella Hendriks)는 코스모스(COSMOS)와의 인터뷰에서 “후대에까지 그대로 전해줄 수 있도록 미술품을 최선으로 보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며 극찬했다.

시카고 현대미술관의 프란체스카 카사디오(Francesca Casadio) 문화유산 연구원은 LA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화가들이 실제로 그린 색채와 지금 우리가 보는 색채가 다르다는 것을 밝혀 미술사를 다시 쓰게 만든 연구”이라고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번 연구를 가능하게 한 엑스선은 프랑스 그르노블 소재의 ‘싱크로트론(Syncrotron)’이라는 방사광 입자가속기에서 얻어낸 것으로 기존보다 훨씬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싱크로트론 소속 연구원이자 이번 논문의 공동저자인 마린 코트(Marine Cotte)는 “머리카락 두께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미세 표층의 변화도 읽어낼 수 있다”며 앞으로 미술품 복원 및 고고학계에 널리 쓰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동욱 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1-02-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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