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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조행만 기자
2011-01-12

변사체에서 풍기는 살구씨 냄새의 의미 죽음의 약 청산가리와 ‘고편도취’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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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드라마 ‘싸인’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낯선 법의학 용어들이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혼란을 동시에 주고 있다.

지난 5일 첫 방송된 드라마 싸인에선 ‘시강’, ‘시반’, ‘일혈점’, ‘액사’ 등 평소에 접하기 힘든 법의학 용어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같은 법의학 용어들은 드라마의 긴장감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는 반면, 시청에 곤란함과 부담감을 주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법의학 용어가 낯설고, 어렵게만 들리는 이유는 평소에 접하기 힘든 측면도 있지만 원래 법의학이나 부검 등이 일본에서 도입됐기 때문에 일본식 당용한자에서 나온 용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실제 부검현장에선 많은 용어들이 우리말로 바뀌고 있다.

싸인의 첫 방송 말미에 극중 이명한(전광렬 분) 박사가 윤지훈(박신양 분) 박사를 강하게 추궁하는 가운데 ‘고편도취’란 부검 용어를 언급한다. ‘고편도취’의 우리말은 ‘살구씨 냄새’에 해당한다. 극중 살벌한 광경에 어울리지 않게 사체를 놓고 팽팽하게 맞선 두 명의 부검의들은 결국 살구씨 냄새란 단어를 놓고 싸우고 있었던 것.

그렇다면 부검 현장에서 살구씨 냄새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강력한 맹독을 가진 시안화합물

1978년 11월 18일 남미 가이아나 조지타운 외곽의 ‘인민사원(The People's Temple)’ 교회 소속의 신도 914명의 시체가 발견됐다. 이들은 교주 짐 존스의 명령에 따라 극약을 먹고 집단 자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민사원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과 의혹을 안겨줬다. 자살자 중에 300여명의 어린이가 포함된 점, 자살과 타살에 의한 궁즘증, 900여명이나 되는 많은 인원이 빠른 시간에 죽을 수 있는 점 등이 큰 의혹을 남겼다.

그러나 인민사원 사건의 전말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다수의 희생자들이 그렇게 빨리 쉽게 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맹독성의 시안화합물을 음료수에 타서 마셨기 때문이라는 것 뿐이었다.

시안화합물은 여러 명을 순식간에 죽게 할 정도로 맹독성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명 ‘청산가리’로 불리는 시안화칼륨(KCN)은 원래 전기도금, 금 제련, 농약 등에 사용되는 약품이지만 자살자들이 즐겨 쓰는 독약으로 유명하다.

시안화칼륨은 시안화수소를 수산화칼륨과 반응시켜 시안화칼륨 수용액을 만들고, 수용액에서 물을 제거하면 남는 무색 분말의 결정이다. 사람이 시안화칼륨을 먹게 되면 ATP를 생성하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마비되고, 이로써 혈액 속의 산소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사망에 이른다.

법의학자들은 “독극물에 의한 변사체는 나름의 특징을 갖는데 청산가리에 의한 사체도 특유의 모습을 갖는다”고 말한다.

헤로인 과다 복용의 시신은 손톱이 파란 색깔로 울퉁불퉁하고, 비소 중독의 사체는 피부가 비늘처럼 벗겨지고, 청산가리의 경우엔 손톱과 입술이 보라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는 시안화합물이 소화기를 통해 혈관까지 짧은 시간 내에 흡수되기 때문이며, 시안 이온이 혈류를 순간적으로 가속화시키는 효과가 있어 심장이 완전정지해 혈류가 멈추고 난 뒤에 모세혈관이 표피 가까이 드러나 입술이나 손톱 조직 등에서 비춰지는 것.

이외에도 혈액 속의 산소가 사용되지 않아서 사체의 입술 색깔이 생전의 선홍색을 그대로 띠고 산소 흡수를 방해한다는 점에서 일산화탄소에 의한 사망과 비슷하지만, 사체의 장기가 더 검푸르고, 자극성의 아몬드 향(살구 씨 냄새와 혼용)이 나는 점도 있다.

선천적 후맹은 특정 냄새 못 맡아

사체에서 나는 아몬드 향은 청산가리에 의한 독살을 입증하는 명백한 법의학적 증거가 된다.

그러나 법의학자들은 “인간의 40% 정도는 사체에서 나는 이 청산가리 냄새를 맡지 못하며 남성은 여성보다 못 맡을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특정한 물질의 냄새를 못 맡는 증세를 가리켜 이른바 ‘후맹(嗅盲)’이라고 부른다. 의학 사전에는 콧속에 있는 후각 세포가 망가져 식초・장뇌・대변・땀・타는 종이・마늘・꽃・과일・석탄산・사양 등의 10가지 물질을 맡지 못할 경우, 이 증세가 의심된다고 한다.

지난 2003년 이스라엘 와이즈만과학연구소 도론 란셋 교수는 유전학 잡지 ‘네이처지네틱스’에 이와 관련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인간이 냄새를 느끼는 것은 코 점막의 후각 수용체가 냄새 분자를 감지, 뇌에 전달하기 때문”이라며 “후각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는 약 1천종이고, 각각의 수용체는 서로 다른 냄새를 감지하는데 이 후각수용체 유전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퇴화돼 쓰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후각수용체와 연관된 50개의 유전자에 늘 스위치가 켜져 있어 냄새를 잘 맡고, 어떤 사람은 50개 대부분의 유전자가 잠을 자고 있어 그 수용체 유전자에 해당하는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

지난 2004년 ‘냄새 수용체 및 후각 시스템’을 규명한 공로로 2004 노벨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의 리처드 액셀과 린다 벅 교수도 비슷한 이론을 펼쳤다.

액셀과 벅 교수는 연구논문에서 “인간 유전자의 3% 정도인 약 1천개의 유전자가 1천개의 서로 다른 냄새 수용체를 조직하고, 이 냄새 수용체들은 각기 다른 특정 향기에만 반응한다”고 말했다.

또 이 반응은 전기적 신호로 바뀌어 뇌의 사구체에 전달되며, 뇌는 이를 종합 판단해 1만 가지 다양한 냄새를 판별하고 기억한다는 것.

법의학자들에 따르면 ‘고편도취(高扁桃)’는 코, 입 부위나 위내, 기관, 가슴안 및 머리뼈 안에서 나는 청산 특유의 냄새이며, 이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성염색체 문제에 의한 유전적 요인 때문이라는 원인이 밝혀져 있을 뿐이다.

드라마 ‘싸인’에서 법의학자 이명한 교수는 변사자의 청산가리에 의한 사망을 주장하면서 라이벌인 윤지훈 박사기 ‘고편도취’를 선천적으로 맡을 수 없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조행만 기자
chohang2@empal.com
저작권자 2011-01-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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