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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010-11-16

8년 만의 금메달, 왼손잡이에 달렸다? 야구계를 휩쓰는 왼손잡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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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한국 야구대표팀이 1차 예선 경기에서 대만, 홍콩을 물리치고 8년 만의 금메달 획득에 한 걸음 다가섰다. 특히 첫 경기인 13일 대만전이 중요했는데, 선발투수 류현진이 6이닝 동안 1실점으로 대만 타선을 꽁꽁 묶고 메이저리거 타자 추신수가 1회와 3회 연타석 투런 홈런을 날리며 6-1 승리를 거뒀다.

최고 구속 146㎞의 강속구에 절묘한 제구로써 대만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은 류현진은 이번 경기에 승리함으로써 2007년 아시아선수권대회,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이어 대만전 3연승을 달리며 ‘대만 킬러’로 떠올랐다.

지난 8월부터 대만전 선발투수로 이미 예고돼 있었던 류현진에 대해 대만 언론은 ‘그동안 수집해온 정보도 분석도 모두 소용이 없었다’며 완패를 인정했다.

또 2발의 대포를 터뜨리며 이승엽에 이어서 새로운 국민타자로 떠오른 추신수에 대해서도 대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홈런을 맞은 당사자인 대만 투수 린이하오는 추신수에 대해 ‘상상을 초월하는 실력이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런데 대만전을 승리로 이끌며 B조 1위로 4강에 진출하는 것을 사실상 확정 지은 류현진과 추신수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왼손으로 공을 던지고, 왼쪽 타석에 들어서서 공을 치는 좌투수, 좌타자라는 점이다.

사실 왼손잡이들에 대한 예전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인도나 태국 같은 나라에서는 왼손으로 악수를 청하거나 물건을 건네는 경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몹시 불쾌하게 여긴다. 영어권의 국가에서도 왼손을 부정하고 더러운 것으로 치부한 흔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스포츠계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왼손잡이 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시기 때문이다.

왼손잡이가 도태되지 않은 까닭

프랑스 몽펠리에대의 샤를로트 포리 박사팀은 몇 년 전에 북극의 이누이트족, 아마존의 야나마모 인디언 등 8개 원주민 사회를 대상으로 조사한 후 ‘왼손잡이 싸움 가설’을 발표했다.

이 가설에 의하면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가 미처 생각지 못한 허점을 기습공격함으로써 우위에 설 수 있었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테니스나 탁구, 권투, 야구처럼 상대와 일대일로 겨루는 스포츠 종목에서 왼손잡이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이 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1995년 몽펠리에대의 미첼 레이몽 씨가 스포츠 종목별 왼손잡이 선수들의 자료를 조사한 결과, 수영이나 육상처럼 얼굴을 맞대는 싸움이 포함되지 않는 종목에서는 왼손잡이의 비율이 정상 수치보다 전혀 높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적 대결이 포함된 스포츠 종목의 경우 왼손잡이 선수들의 비율 및 활약도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프로야구 등록선수 477명 중 왼손잡이 선수(좌투좌타)는 105명(22%)이었다. 거기다 우투좌타 선수 45명까지 합치면 전체 선수 중 약 30%가 왼손으로 야구를 한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에서도 왼손잡이 타자와 투수의 비율이 전체의 3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인구 중 왼손잡이 비율이 약 10%라는 통계를 감안해 볼 때 왼손잡이 야구선수들의 비율이 3배 정도 높은 편이다.

그럼 야구에서 왼손잡이가 왜 유리한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루 방향의 왼쪽 타석에 들어서는 왼손잡이 타자는 1루까지의 거리가 오른쪽 타석보다 2미터 정도 가까우므로 내양 땅볼을 친 후 1루에서 살 가능성이 그만큼 더 높다.

또 타석에서 스윙을 하고 난 후 몸의 중심이 1루 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유리하다. 1루 쪽으로 몸이 기운 상태에서 바로 1루를 향해 내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른손잡이 타자들의 경우 스윙 후 몸의 중심이 3루 쪽으로 기운 상태에서 방향을 바꿔 1루로 달려야 하므로 왼손잡이 타자에 비해 진루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게다가 왼손잡이 타자들은 타구의 방향이 우측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장타를 쳤을 때 3루타가 될 확률이 높다. 일상생활에서나 공을 던질 때는 오른손잡이지만 타석에 들어설 때는 왼손잡이가 되는 우투좌타 선수들이 많은 것은 이런 이점 때문이다.

지난해 타격왕을 차지했던 LG의 박용택 선수나 타격기계로 알려진 두산의 김현수 선수도 사실 타격할 때를 빼놓고는 언제나 오른손을 사용하는 오른손잡이들이다. 메이저리그에서 12번이나 타격왕을 차지했던 전설적인 인물, 타이 콥도 왼손 타자로 전향한 오른손잡이였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것은 쉽지 않지만, 타격시에는 두 팔을 함께 사용하므로 오른손잡이도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충분히 왼손 타자가 될 수 있다.

왼손 타자에게 강한 왼손 투수

이처럼 왼손 타자들이 많아지자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왼손 투수들의 효용 가치도 점차 커졌다.

왼손 타자들은 왼손 투수들이 와인드업한 뒤 어깨 뒤에서 처음 나오는 팔의 모양이 오른손 투수에 비해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왼손 타자들은 오른손 타자들에 비해 왼손 투수가 던지는 공을 볼 시간이 짧다.

예를 들어 시속 140㎞의 속도로 투수가 공을 던질 경우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인 18.44m를 날아가는 시간은 약 0.47초 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타자가 투수의 공을 조금만 늦게 봐도 대응 속도면에서 엄청나게 불리하다.

또한 왼손 투수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지면 왼손 타자들에겐 공이 바깥쪽으로 멀리 달아나는 것처럼 보이므로 치기가 매우 어렵다. 왼손 타자들이 왼손 투수들에게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왼손 투수의 장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왼손 투수는 투구를 할 때 몸이 1루 쪽을 바라보게 되므로 1루 견제가 용이해 주자의 도루 저지에 매우 유리하다. 또 왼손 투수는 오른손 투수에게 익숙해진 타자들에게 큰 부담감을 안길 수 있으며, 같은 속도로 던지는 공도 왼손 투수의 경우 시각적으로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때문에 야구계에서는 ‘강속구를 던지는 왼손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오라’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이번에 대만전에서 선발승을 거둔 류현진 선수도 사실은 오른손잡이다. 그러나 야구를 배울 때부터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습관을 들여 좌투우타의 야구선수로 성장한 경우이다.

19일에 열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우리 대표팀이 만날 상대는 일본이나 다시 대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조범현 대표팀 감독은 결승전의 선발 투수로 일찌감치 류현진을 점찍어 놓고 있다. 이번 대회의 야구 종목 메달 색깔이 추신수나 류현진 같은 왼손잡이 선수들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0-11-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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