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의 꿈인 ‘아이비리그’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다트머스, 컬럼비아, 코넬, 브라운, 펜실베이니아 등 미국 동부에 있는 8개의 명문 사립대를 가리킨다. ‘아이비리그’란 명칭은 이들 대학에 담쟁이덩굴(Ivy)로 덮인 오래된 건물이 많다는 데서 유래했다.1954년 지리적으로 근접한 이들 대학이 1년에 한 번씩 미식축구 경기를 열기로 함으로써 아이비리그라는 말이 공식화됐다. 이후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서 아이비리그는 명문 사립대를 가리키는 일반적 호칭이 됐다.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 존스홉킨스대 등 아이비리그에 버금하는 명문대를 ‘아이비 플러스’라 하고, 앤아버 미시간대, 오스틴 텍사스대 등 명문 공립대들의 경우 ‘퍼블릭 아이비’라고 불리기도 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뿐 아니라 뉴욕의 달동네에서 자라난 담쟁이덩굴도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끈 적이 있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무명의 여류 화가 존시는 심한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
그녀는 창밖의 담에 붙은 담쟁이 잎이 다 떨어질 때 자기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밤새 비바람이 몰아친 아침에도 마지막 잎새 하나가 벽돌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래층에 사는 노화가가 마지막으로 그려 놓은 그 마지막 잎새 하나 덕분에 존시는 삶의 희망을 되찾는다.
도시에서 담쟁이덩굴은 정말 ‘마지막 잎새’처럼 매우 큰 역할을 한다. 요즘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전국이 열대야에 시달리고 있다. 열대야는 도심의 열섬 현상이 반복되면서 해가 진 이후에도 대기의 온도가 떨어지지 않아 발생한다.
도시를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주변 지역보다 덥게 만드는 열섬 현상은 자동차 및 빌딩에서 나오는 열과 공해 등이 원인이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주범은 도심을 뒤덮고 있는 회색빛 콘크리트이다.
콘크리트 벽면과 도로의 방음벽, 주택 담장을 덮어주는 담쟁이는 도시의 열기를 식혀줌으로써 열섬 현상을 방지하는 데 효과가 큰 식물이다.
앞뒤로 5℃ 정도의 온도 차한여름 온도가 최고에 이르는 오후 3시경, 태양열을 직접 받는 콘크리트 벽은 40~50℃에 달하게 된다. 콘크리트는 비열이 매우 작아 뜨거운 열을 그대로 흡수하므로 열이 건물 내부까지 전달돼 저녁이 되어도 식지 않는다.
그러나 담쟁이덩굴이 있는 벽은 잎이 햇볕을 막아 대부분의 열을 차단한다. 여름철 낮에 담쟁이 잎의 앞면과 뒷면은 5℃ 정도의 온도 차를 낸다.
또 담쟁이는 증산작용을 하여 수분을 공기 중으로 뿜어주므로 건물 내외부의 온도를 2~3℃ 정도 낮춰준다.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와 이산화질소, 이산화황, 일산화탄소 등 각종 대기 오염물질을 흡수하며,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담쟁이덩굴은 한자로 ‘땅을 덮는 비단’, 즉 지금(地錦)이라 하는데, 여름이면 짙은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들어 마치 녹색과 붉은 색의 비단처럼 아름답다. 시민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고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미적 효과까지 주는 셈이다.
한때 담쟁이덩굴이 콘크리트와 벽돌을 부식시킨다고 잘못 알려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벽면을 덩굴 식물이 덮으면 산성비와 자외선이 차단됨으로써 콘크리트 표면의 균열을 방지하고 침식과 도료 탈색을 예방하는 등 건물의 내구성이 오히려 향상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최근에는 담쟁이 등의 덩굴식물로 벽면녹화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늘고 있다.
2000년부터 벽면 녹화사업을 시작해 지난해까지 167만 본의 덩굴식물을 심은 서울시는 오는 11월에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코엑스 주변 등 시내 주요 도로변의 회색 콘크리트 벽 8.5㎞ 구간을 덩굴식물로 뒤덮었다.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폭염도시’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대구시도 2009년부터 2011년까지 100만 본의 담쟁이덩굴을 도시 전역에 심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강원도 고성군의 경우 대부분의 건물에 담쟁이덩굴 식재사업을 추진하여 ‘담쟁이의 모든 것 보기’란 주제의 다채로운 관광 상품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고성군은 이 사업의 일환으로 담쟁이 줄기, 씨앗의 음용화 및 약용화를 위한 연구 용역도 실시할 예정이어서 주목을 끈다.
벽을 넘는 접착력의 비밀도종환 시인은 ‘담쟁이’라는 시에서 이 식물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이 시는 최근 연구결과 밝혀진 담쟁이의 접착 능력의 비밀과 놀랍게도 일치한다. 미국 테네시 대학의 밍준 장 교수팀은 담쟁이가 덩굴 잎 중량의 약 200만 배에 달하는 힘으로 붙어 있는 놀라운 접착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밝혀내기 위해 심도있는 연구를 했다.
그 결과 노란색 물질을 분비하는 초록잎의 잔뿌리에서 나노미터 크기의 물질을 발견했는데, 이 물질을 이루고 있는 분자의 양끝은 서로 다른 전하를 띠므로 수소결합을 통해 다른 분자들과 결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 결합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수십 또는 수백만의 약한 결합이 합쳐져 큰 힘을 이루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조그만 담쟁이 잎 하나가 거대한 벽을 넘는 비밀이다.
또한 밍준 장 교수팀은 최근에 담쟁이덩굴에서 추출한 이 나노입자가 기존의 금속 화학물 자외선 차단제보다 4배 이상의 자외선 차단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담쟁이덩굴의 나노 입자가 기존에 자외선 차단제로 사용되는 금속 화학물 기반의 나노 입자보다 더 균일하고 강화된 흡수 및 산란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훌륭한 자외선 차단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나노입자는 독성이 적고 쉽게 생분해될 뿐더러 기존 자외선 차단제와 달리 피부에 발랐을 때 투명하고 물에 쉽게 씻겨 나가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폭염으로부터 도시를 지켜주는 담쟁이덩굴의 신비한 능력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 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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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0-08-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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