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벌써 익숙해진 탓인지 덥다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그다지 없는 듯하다. 아직은 해가 지고 나면 좀 선선한 느낌도 드니까. 일기 예보를 보면 한낮에는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해져서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날이 계속되니 건강 조심하시라는 말을 거의 매일 같이 들을 수 있다.
이런 마당에 공짜 피서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들려온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정부가 은행, 대형마트, 백화점, 호텔 같은 시설의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실내 온도를 높이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은행과 호텔은 26도 이하,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25도 이하로 유지하란다. 예전에 18도로 유지되어 시원하던 곳에서도 이제 부채를 부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듯하다.
하지만 불볕더위에도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으면 선선하게 느껴지는 법. 에어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지?
에어컨의 원리오늘날 냉방 장치의 대장은 누가 뭐래도 에어컨이다. 에어컨이 없다면 고층 건물들은 여름에 찜통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에어컨을 최초로 실용화한 사람은 월리스 캐리어다. 그는 1902년 여름, 열기와 습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인쇄소에 열기와 습기를 제거하는 공기 조절 장치를 설치했다. 이렇게 시작된 에어컨은 오늘날 도시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 있다.
에어컨의 원리는 단순하다. 출근길 지하철에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자. 에어컨이라도 고장나면 땀이 뻘뻘 흘러나오는 찜통이나 다름없다. 환승역에 도착하여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마구 밀려나와 흩어진다. 그 순간 사람들은 시원함을 느끼면서 심호흡을 한다.
에어컨 속에서 돌고 있는 냉매 분자들은 바로 이 사람들과 비슷하다. 에어컨의 냉매는 지하철 안처럼 비좁은 공간에 짓눌려 있다가 갑자기 넓은 통로로 나온다. 그러면 냉매의 분자들이 흩어진다. 이때 액체였던 냉매는 기체로 변하면서 갑자기 차가워진다. 이 차가워진 냉매는 열교환기라는 곳에서 실내의 공기와 만난다. 그러면 실내 공기의 열이 냉매로 전달되면서, 공기는 차가워지고 냉매는 따뜻해진다. 따뜻해진 냉매는 돌아서 압축기라는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고, 찜통처럼 온도가 더 올라간다. 이 열은 응축기를 지나면서 바깥 공기로 전달되고 냉매는 기체에서 액체로 변한다. 압축기와 응축기가 바로 에어컨의 실외기이다. 열을 어느 정도 빼낸 냉매는 다시 실내로 들어와 넓은 통로로 흩어진다.
이렇게 냉매가 차가워졌다가 따뜻해졌다가 하면서 실내의 열을 바깥으로 퍼 나름으로써, 실내는 시원해지고 바깥은 더워진다.
에어컨은 지구를 덥힌다
실내의 열이 저절로 계속 밖으로 흘러나가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열은 오로지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만 흐른다. 실내가 더 시원해지면 바깥에서 열이 안으로 흘러들 수밖에 없다. 그걸 막으려면 에어컨을 가동시키는 것 같은 일을 해야 한다. 에어컨은 전기로 움직인다. 전기를 만들려면? 화석 연료를 태우든, 방사성 연료를 태우든, 태양 에너지나 바람 에너지를 전환하든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에너지든 완벽하게 100퍼센트 전환되긴 어렵다. 일부는 마찰 등을 통해 쓸모 없는 열로 바뀐다. 따라서 에어컨을 가동할 전기를 만들어낼수록 일부 에너지는 열로 흩어진다. 또 에어컨 자체도 가동할수록 열이 발생하므로, 에어컨이 실내에서 퍼내는 열보다 조금씩 더 많은 양의 열이 바깥으로 배출된다. 그러니 에어컨은 실내를 식히지만, 지구 전체를 그보다 더 뜨겁게 만든다. 가뜩이나 온난화에 시달리는 지구에는 안 좋은 소식이다.
국제에너지국은 2050년에는 전력의 22퍼센트를 친환경인 태양 에너지에서 얻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그래도 에어컨은 덜 쓰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오래 틀면 실내 공기도 나빠지고 머리도 아프니까. 하지만 선풍기와 부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면 어찌해야 할까? 나무를 심고, 흰색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치고, 천장에 팬을 달고, 열이 덜 나는 고효율 전구를 쓰는 등의 손쉬우면서도 간단한 방법이 많이 있다. 여기서는 최근에 제안된 좀 색다른 제안들을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하자.
바람 터널 만들기
2008년에 해외의 한 과학 잡지에 실린 방법이다. 바람이 없는 날에도 고층 빌딩 사이를 지나가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건물 사이로 난 길이 바람이 지나가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집안에도 그런 바람 터널을 만들면 바람이 지나가면서 시원해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람이 직선으로 관통하도록 양쪽으로 마주보는 창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람이 한 방향으로 잘 흐르도록 선풍기를 한쪽 창 밖을 향해 틀어놓는 것도 좋다.
지붕과 외벽을 흰색으로 칠하기모 음료 광고에 나오는 지중해 마을은 온통 하얀 색이다. 벽도, 지붕도, 길바닥도 다 하얗다. 주로 석회석으로 지어져서 그런 것인지 흰 페인트로 칠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흰색은 햇빛을 반사하므로 열 흡수를 줄이는 데 효과가 좋다. 여름에 지붕과 외벽을 흰색으로 칠하면 흡수되는 열이 줄어들므로, 더 시원할 것이다.
그렇긴 한데……. 겨울에는 어쩔 것인가? 겨울에는 열을 흡수하지 못해 오히려 집안이 더 냉골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난방을 더 틀어야 할 테고, 난방비가 더 나올 것이다. 여름철 냉방비가 줄어드는 대신 겨울철 난방비가 늘어나는 셈인데, 그래도 더 나을까?
키스 올슨이라는 과학자는 모형실험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전체적으로는 절약이 아니라 오히려 비용이 더 들고, 에너지를 더 쓰게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자 MIT의 학생들은 창의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날씨가 더워지면 흰색으로 변하고 추워지면 검은색으로 변하는 타일로 지붕과 벽을 덮으면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이른바 카멜레온 타일이다.
레이저를 쏘아 틈틈이 소나기 만들기
요오드화은 알갱이를 뿌려서 인공 강우를 만드는 실험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때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알갱이를 하늘에 뿌리려면 비행기를 동원하든지 해야 하고, 요오드화은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하는 소리도 들린다. 물론 뿌렸다고 반드시 비가 내린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지난 5월 ‘네이처’에 스위스의 한 연구진이 레이저를 쏘아 비를 만들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짧은 펄스 형태의 레이저를 하늘에 쏘면 질소와 산소 분자가 이온화하고 그것들이 응결핵 역할을 하여 비구름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이 제대로 먹힌다면 날이 푹푹 찔 때마다 레이저를 쏘아 한 바탕 소나기를 내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가 내리면 시원해질 테고 말이다. 게다가 연구진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친환경적 방법이라고 말한다. 지나가는 새나 비행기가 레이저에 맞는 불상사도 간혹 일어날 수 있겠지만.
흰개미에게 배우기
흰개미 둔덕을 연구하는 스콧 터너 연구진은 건물 벽을 흰개미집처럼 만들면 냉난방을 하지 않아도 바람을 통해 자연적으로 실내 온도가 조절될 것이라고 본다. 흰개미집에는 수많은 작은 통로들이 미로처럼 나 있다. 사바나에 높이 3미터에 이르는 우뚝 솟아오른 흰개미집은 놀랍게도 바깥이 찌는 듯이 더워도 안은 시원하고 습도도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유는 흰개미집 전체가 굴뚝과 환기 통로들로 얽혀서 일종의 공기 조절 장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높은 탑처럼 솟아오른 부위는 실내의 열과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굴뚝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신선한 산소가 섞인 바깥의 공기는 흰개미집 표면에 나 있는 미세한 터널들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고, 들어온 환기 통로들을 지나면서 차가워지고 수분을 머금는다.
연구진은 건물의 벽을 콘크리트나 벽돌 대신에, 흰개미집처럼 미세한 통로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형태로 바꾸자고 한다. 그러면 바람이 불 때 알아서 벽 속으로 공기가 순환되면서 실내 온도와 습도가 조절된다는 것이다. 냉난방에 전기를 쓸 필요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흰개미가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올 수도 있겠다.
아마 이 외에도 더위를 막아줄 방법은 많이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온난화로 거의 아열대 기후가 된 듯하니, 환경 친화적으로 더위를 피할 지혜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고맙게도 정부는 에어컨 사용을 억제함으로써 그런 창의성을 장려하고자 나서고 있다.
- 이한음 과학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2010-06-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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