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의장 대통령, 이하 자문회의)는 지난 30일 ‘국가 과학기술 위험커뮤니케이션의 현주소와 당면과제’라는 주제로 ‘과학기술 위험커뮤니케이션 포럼’을 개최하여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위한 전문가들의 토론자리를 마련했다.
위험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미국 국립보건원의 로버트 로건(Robert Logan) 박사를 연사로 초청한 가운데 △김영길 총장(한동대) △조숙경 과학문화산업단장(한국과학창의재단) △조성겸 교수(충남대) △한정호 사이언스TV 팀장(YTN) △한선화 정책연구실장(KISTI) △이혜규 대표이사(엔자임)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좌장은 김승환 교수(포항공대)가 맡았다.
로버트 로건(Robert Logan) 박사는 미국 미주리-컬럼비아대 언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현재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의학도서관(NLM)에서 질병 관련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세계 최대의 의학자료를 보유한 NLM은 의료·보건 관련 대중 소통을 전담하고 있다.
기관이 먼저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미국 메릴랜즈주에 위치한 국립의학도서관(NLM, National Library of Medicine)은 174년의 역사, 약 3억5천만달러의 예산, 700명의 직원 등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의학전문 도서관이다. NLM은 단순히 책을 모아놓은 장소가 아니라, 건강 및 질병·보건에 관한 정보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홍보기관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로건 박사는 정보제공자로서 NLM이 추구하는 원칙을 소개하며, △최신정보를 △누구나 접근가능하고 △사용하기 쉽도록 유지하여 △믿을만하고 △권위가 있으며 △이해하기 쉽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21세기 의학은 온라인상으로 개인별 맞춤정보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며, 그 전단계로 “투명한 정보공개와 양방향 소통으로 대중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미국 질병통제관리국(CDC)이 모델로 삼고 있는 환경보호청(EPA)의 ‘8가지 위험커뮤니케이션 원칙’을 소개했다. 내용은 △능동적인 자세로(be proactive) △대중에 관여해서(involve the public) △대중의 의견을 경청하고(listen to audience) △정직하고 개방된 자세를 유지하며(be honest and open) △신뢰할 만한 자료를 제공하고(collaborate with credible sources) △언론매체와 협력하여(cooperate with the news media) △피해자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전달하며(show compassion for victims) △미리 계획하고 평가와 연계한다(plan ahead and assess)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기반으로 CDC는 IT기술을 활용해 젊은 대중들과 소통하는 데 노력한다. 홈페이지와 블로그 운영은 기본이고, 미니홈피 서비스 페이스북(Facebook)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거나 단문블로그 서비스 트위터(Twitter)를 통해 책임급 연구원들이 정보를 제공하는 등 능동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또한 포드캐스트(Podcast), 유튜브(Youtube), RSS, 위키피디아(Wikipedia), 플리커(Flickr) 등 가능한 모든 채널과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선다.
로건 박사는 위험커뮤니케이션의 바른 예와 그릇된 예로 존슨앤존슨과 도요타를 꼽았다.
존슨앤존슨은 1982년 진통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가 투입된 사건을 겪었다. 원인을 밝히기가 쉽지 않았지만 조사과정 전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해 부정확한 정보가 유통되는 것을 막았고, 쏟아지는 전화에 일일이 응대해 소비자들의 불안을 잠재웠다. 또한 10억달러의 손실을 보면서까지 약품을 전량 수거·검사해 ‘신뢰할 만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이후 새로운 포장방법을 개발해 이물질 투입을 원천적으로 막는 등 총체적인 위기관리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반면에 세계 1등기업으로 회자되던 도요타는 최근 자동차 부품 불량에 따른 리콜 사건을 겪으며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했다. 많은 차량에서 가속페달, 브레이크, 엔진 등의 문제가 발생했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소비자 탓으로 돌리는 등 발뺌을 일삼았다. 결국 미국 연방정부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달하는 정식 리콜을 명령했으며, 소비자의 신뢰도 잃게 되었다.
로건 박사는 위험을 기회로 바꾸는 위험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투명한 정보공개, 정직한 대응, 양방향 소통 등을 통해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과학자와 언론인 모두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조성겸 충남대 교수는 ‘과학이슈 관련 위험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국내 언론의 역할’이라는 발표로 언론과 과학기술계의 소통노력을 촉구했다. 새만금 사업 지연, 방사능폐기물 처리장 유치 실패를 비롯하여 최근 한국에서는 GMO, 광우병, 조류독감 등 과학기술 관련이슈가 연이어 발생했는데, 그에 따른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많았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정부는 과학관련 매체를 탓하기 바빴고, 언론은 대중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해 혼란을 초래했다”며, 해결을 위해서는 “어느 한 구성요소를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 위험커뮤니케이션이라는 ‘시스템 전체’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실제 행동주체로 나서서 적절한 순간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과학커뮤니케이션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로건 박사는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것은 언론 등 어느 한 구성원만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고 동의하며, “각계의 노력을 하나로 모아 다차원적인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어 한정호 YTN 사이언스TV 팀장은 ‘미디어의 현주소와 당면과제’라는 발표를 통해 “기존 뉴스의 한계점을 보완하며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소셜미디어(Social Media)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중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관련정보를 순식간에 접하고 또 전파하는데, 이를 보완할 ‘정확한 정보’의 전달과 설명은 언론의 몫이라는 것이다.
한 팀장은 효과적인 위험커뮤니케이션 대응책으로 범정부 차원의 또는 민·관 합동의 ‘과학기술 위험커뮤니케이션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위험사안을 미리 연구·분석하고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전담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과학자들이 연구실을 벗어나 언론에 올바른 정보를 전해주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위험커뮤니케이션은 믿음과 신뢰가 생명
한선화 KISTI 정책연구실장은 ‘과학기술 위험소통과 과학기술자 커뮤니티’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한 실장은 “위험관리는 ‘신뢰’와 ‘눈높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다”며,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야 소통이 원활해진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대중의 기존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신뢰의 힘”이라 강조하고, 과학자들이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믿을 만한 사이트를 통해 위험요소를 지속적으로 설명함으로써 대중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실장이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정책 사이트 운영방법”에 대해 묻자, 로건 박사는 “각국이 서로의 자료를 번역 소개하는 데이터베이스 공유체계를 구축하여 정확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혜규 엔자임 대표는 ‘PR의 관점에서 본 위험커뮤니케이션’이라는 발표를 통해 ‘효율적인 위험커뮤니케이션 실행을 위한 3가지 기준’을 소개했다. △커뮤니케이션은 듣는 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믿음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과정과 결과를 세밀히 평가해야 한다 등이 그 내용이다. 이 대표는 이를 위해 청취자 조사, 전략 수립, 맞춤형 전달법 개발 등을 제안했다.
과학자와 대중 연결할 커뮤니케이터 양성해야
조숙경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사업단장은 위험커뮤니케이션의 핵심으로 ‘위험의 정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비용 대비 효율성 있는 방법’을 꼽았다. 과학기술 주체와 사회구성원 간의 문제이므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합리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단장은 아울러 최근 EC(European Commision)가 조사한 설문을 인용해 “대중들에게 ‘과학자와 소통이 필요한가’ 물었더니 대다수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과학자들에게 ‘대중과의 소통’을 물었더니 대부분 관심이 덜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과학자들이 ‘과학기술 앰배서더 강연’ 등을 통해 대중과 직접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자와 대중을 연결할 커뮤니케이터를 양성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올해부터 KIAST와 실시하는 ‘과학저널리즘 석사과정’ 개설을 들었다.
조 단장이 위험커뮤니케이션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을 묻자, 로건 박사는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고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해주는 일”이라고 답하며, “정량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곳은 많지만 정성적인 분석을 자상하게 해주는 곳이 드물다”고 지적했다.
좌장을 맡은 김승환 교수는 “위험(risk)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고, 위험을 다루는 각계의 태도와 대처방법에 대한 공통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포럼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김영길 한동대 총장은 “위험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솔직과 정직”이라고 강조하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은폐·왜곡하는 행동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임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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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0-04-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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