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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기자
2010-03-05

영화 속 과학, 제대로 표현됐나 ‘2010 AAAS 연례대회’를 조명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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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부터 22일까지 미국 샌디에이고(San Diego)에서는 ‘과학과 사회의 다리 잇기(Bridging Science and Society)’라는 주제 아래 ‘미국과학진흥협회 연례대회(AAAS Annual Meeting)’가 개최되었다. 이에 사이언스타임즈는 다양한 세션 중 흥미로운 내용을 담은 과학강연을 골라 소개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과학적인 요소들, 과연 제대로 표현된 것일까? 누구나 영화를 보며 “말도 안돼” 하며 놀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과학적으로 불가능한지, 아니면 단지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인지 구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난 18일부터 4박5일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최된 ‘미국과학진흥협회 연례대회(AAAS Annual Meeting)’ 과학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g Science) 세션에서 과학자들과 영상산업 종사자들이 모여 ‘영화에 등장한 과학기술’에 대해 강연했다.

CNN은 인터넷판의 “TV와 영화는 과학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가(Do TV and movies get science right?)”와 기자블로그의 “슈퍼히어로는 과학적인가(How scientific are superheroes?)”라는 기사를 통해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과학적인 묘사가 담긴 영화를 원하는 것은 관객

론 하워드(Ron Howard) 감독은 AAAS 연례대회 강연에서 “요즘은 관객들이 과학적 사실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거대 하드론 충돌기를 등장시킨 론 하워드 감독의 최신작 '천사와 악마'
정신분열증 수학자를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는 하워드 감독은 지난해 댄 브라운(Dan Brown)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천사와 악마(Angels and Demons)’에서 과학자들의 도움과 자문을 받아 오프닝 장면의 거대 하드론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에는 과학자와 영상산업 종사자들이 합동하여 과학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하워드 감독이 운영하는 ‘창의과학 스튜디오(Creative Science Studio)’는 미국 국가과학재단(NSF)과 캘리포니아대(USC) 영화예술학교(School of Cinematic Arts)의 파트너십으로 설립되었다.

또한 국립과학학술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은 ‘과학과 문화산업의 교류(Science and Entertainment Exchang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과 영상산업 종사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한다.

과학적 사실 전파하는 공상과학영화의 또 다른 역할

공상과학영화는 내용의 정확성을 떠나 과학적 사실 자체를 널리 전파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5억달러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영화 ‘아바타(Avatar)’와 ‘디스트릭트 나인(District 9)’, ‘가타카(Gattaca)’ 등은 유전공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을 사회 이슈화 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영화 제작자들은 스토리를 망치지 않고 돈이 많이 들지만 않는다면 당연히 더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장면을 넣고 싶어할 겁니다.”

▲ 과장된 묘사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운 공상과학영화 '투모로우'
‘할리우드의 과학(Hollowood Science)’을 저술한 에모리대 소속 물리학 시드니 퍼코위츠(Sidney Perkowitz)가 강연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이와 반대로, 말이 안 되는 내용을 과학적인 양 포장한 영화들도 있다. 퍼코위츠는 2003년 개봉작 ‘코어(The Core)’를 최악의 과학영화로 꼽았다. 인공지진을 일으키는 무기를 실험하다가 지구의 핵이 회전을 멈추자, NASA가 조직한 특수 팀이 땅 속으로 들어가 핵폭탄을 터뜨려 다시 회전시킨다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지구의 자기장이 아닌 ‘전자기장’이 사라졌다고 묘사했고, 지구 내부의 높은 압력을 팀원들이 얇은 옷만으로 견디는 등 많은 내용이 잘못됐다. “과학을 무시하는 건 괜찮지만, 이 영화는 과학을 모욕하고 있다”며 퍼코위츠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로스트’의 사실성과 ‘히어로즈’의 고의적 오류

한편 ‘자연과학의 첨병(Physical Science Frontiers)’ 세션에서는 캘리포니아 기술연구소 소속 물리학자 션 캐롤(Sean Carroll)이 ‘시간이라는 화살(The Arrow of Time)’ 강연을 통해 영화 속 시간여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캐롤은 ‘영원에서 현재로(From Eternity to Now)’라는 저서로 유명하다.

▲ 시간여행을 소재로 다룬 인기 미국드라마 '로스트'
인기 드라마 ‘로스트(Lost)’는 섬에 불시착했던 주인공들이 수십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내용인데, 캐롤은 시간에 대한 묘사가 물리학적인 가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타임머신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시간여행이 가능하더라도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은 이치에 맞습니다.”

때로는 과학적인 오류가 있어도 일부러 비현실적인 묘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초능력자들을 다룬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Heroes)’의 PD이자 작가인 애런 콜라이트(Aron Coleite)의 주장이다.

“인간은 뇌의 일부만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과학적으로는 틀린 내용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관객이 사실이라 믿는다면 드라마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들의 지식수준과 기대치 모두를 고려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영상산업 종사자들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만약 드라마에 투명인간이 등장해야 한다면, 남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옷을 모두 벗어야 할까? 작가들은 몇 시간이고 토론을 거쳐 적절한 수준의 결론에 도달한다. 투명인간을 ‘빛을 왜곡하는 투명한 막에 둘러싸인 인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적인 논리성을 가지면서 배우의 옷을 굳이 벗기지 않아도 된다.

관객의 몰입과 과학적 논리성이 얽혀 탄생

이어 제임스 카칼리오스(James Kakalios) 미네소타대 물리학자는 ‘영화 왓치맨 속 물리학 : 맨해튼 박사는 왜 파란색인가(The Physics of WATCHMEN, or Why so blue, Dr. Manhattan)’라는 강연을 통해, 영화 속 슈퍼히어로의 초능력과 물리학을 결합시켰다.

▲ 영화 '왓치맨'에 등장하는 푸른 피부의 맨해튼 박사
지난해 개봉한 ‘왓치맨(Watchmen)’이라는 영화에는 푸른색의 피부를 가진 맨해튼 박사가 등장하는데, ‘양자터널(quantum tunneling)’이라는 방식을 이용해 벽을 뚫고 지나가는 능력이 있다. 영화 ‘엑스맨(X-man)’에 등장하는 키티 프라이드(Kitty Pryde)도 비슷한 능력을 보여준다.

‘양자터널’은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에너지 장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게 해주는 효과인데, 물리학적으로 살펴보면 고에너지 전자가 부족해지는 체렌코프 복사현상(Cerenkov Radiation)이 나타나면서 맨해튼 박사처럼 푸르스름한 빛이 발생한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도 충분히 과학적으로 묘사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검증과는 별개로, 관객이 스토리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그럴 듯해 보이는’ 효과가 필요한 게 현실이다.

카칼리오스는 영화 ‘아이언맨(Iron Man)’ 속 용접 장면을 예로 들었다. 주인공의 동작이 사실적이기만 하면 관객들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토니 스타크(Tony Stark)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관객의 몰입’을 우선시하는 영화제작자들의 시각과 ‘과학적 논리성’을 중시하는 과학자들의 검증, 이 두 가지 요소를 날줄과 씨줄 삼아 화려하게 직조한 것이 공상과학영화인 셈이다.

임동욱 기자
duim@kofac.or.kr
저작권자 2010-03-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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