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15일은 ‘산악인의 날’이다. (사)대한산악연맹은 지난 15일(화) 오후 6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내 뮤지엄웨딩홀에서 '2009년도 산악인의 날 행사 및 제 10회 대한민국산악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9월 15일이 ‘산악인의 날’이 된 유래는 1977년 9월 15일 故 고상돈씨가 한국 최초로 세계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것을 기념해 (사)대한산악연맹이 9월 15일을 '산악인의 날'로 1978년에 제정했기 때문이다.
빨간 등산복, 가슴엔 커다란 무전기, 얼굴엔 산소마스크를 쓰고, 오른손에 태극기를 든 故 고상돈 대원이 8,848m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우뚝 선 모습이 신문에 보도됐을 때, 당시의 국민들은 크게 감동했다. 고드름과 서리가 잔뜩 낀 산소마스크를 쓴 그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에베레스트 등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함부로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8000m 이상의 고봉은 인간이 생존하기에 매우 가혹한 환경이다. 영하의 기온, 끝도 없이 떨어지는 크레바스, 예측할 수 없는 눈사태, 초고속의 강풍과 눈보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소의 부족이 목숨을 위협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고산등반에서 가장 참기 힘든게 산소 부족”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1분 1초도 산소 없이 살 수 없는 것을 감안할 때, 8000m의 땅은 죽음의 지대나 마찬가지다. 산소가 평지의 4분의 1밖에 안되고, 한 발짝 옮겨놓기가 무섭게 숨이 차고 심장이 터질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 바로 8천m 이상의 고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홍길 대장처럼 8천m급 고봉 14좌를 모두 오르는 등반가들이 있는가 하면,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을 무산소 등정으로 정복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보통사람과 다른 초인들인가? 그들에겐 어떤 생존비결이 있는 것일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8000m 고봉
사람은 높은 산에 올라가면 숨을 가쁘게 몰아쉬게 된다. 그 이유는 1천m 오를 때마다, 대기압이 약 93헥토파스칼(hPa : 1기압은 1013.25hPa)씩 떨어지기 때문이다. 즉, 해수면에서 1기압인 대기압은 해발 5천5백m에서는 절반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대기 전체에 퍼져있는 산소의 양도 해수면의 절반밖에 안되는데 부족한 산소를 보충키 위해 숨을 가쁘게 쉬는 것.신체의 생리적 리듬 역시 달라진다. 산소가 부족해지면 피를 온몸에 보내기 위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예를 들면, 사람이 두세 발짝만 떼어도 해수면에서 1백m를 전력질주하고 난 후의 숨 가쁜 상태가 되는 것. 지난 1988년 히말라야 원정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산악인 정승권씨는 이를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숨 막혀서 죽을 것 같은 상태”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의학적 상식이 있는 사람의 경우, 대기압이 낮고 산소량이 해수면의 절반인 상황에서 호흡 속도를 해수면보다 2배로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크게 잘못된 상식. 호흡한 공기에서 산소가 차지하는 부분 압력은 '(대기압 - 허파내 수증기압 ) × 0.2093(대기 중 산소비율)’의 공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풀이하면, 허파내 수증기압은 그대로인데 고산으로 올라갈수록 대기압이 감소하므로 폐로 빨아들인 공기의 산소 분압은 계속 줄어드는 셈. 즉, 공기가 폐로 들어와도 평지처럼 혈액 속에 원활하게 녹아들어가지 못한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기압은 약 346hPa로 해수면 기압의 3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즉, 빨아들인 공기의 허파내 산소 분압이 해수면에서 193hPa라면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는 52hPa로 떨어져 해수면의 약 26%밖에 되지 않는다. 고산으로 갈수록 산소의 절대량도 부족할 뿐더러 허파에서 혈액 속으로 산소를 녹여줄 압력 자체도 줄어들어 절대적인 산소 부족을 느끼게 되는 것.
그렇다면 등반가들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천천히 고도 적응하는 것이 생존 비결
스위스의 의사 출신 히말라야 등반가 ‘에트와르 위스 뒤낭’은 “인간은 6천m의 고도에선 적응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가면 산소부족으로 에너지 보충이 어려워져 적응이 힘들어진다”며 고산병의 위험을 경고한 적이 있다.
사람이 갑자기 높은 고도에 올라가면 여러 가지 고산병에 시달리게 된다. 보통, 훈련된 등반가도 4천에서 5천m 높이에 오르면 고소감각이 곧바로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은 산소 부족으로 머리가 띵해지고 식욕이 감퇴한다. 멀미, 구역질, 현기증, 불면증, 숨 막힘, 소변감소, 무력증 등의 증상이 따라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산병이 심해지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만큼 고산병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병. 따라서 고산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선천적으로 체력이 뛰어난 등반가도 천천히 단계적인 적응 수순을 밟아야 한다.
고산병 증상이 나타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즉시 고도를 낮추어 낮은 지역으로 내려가는 것. 이를 위해 고산 등반 시 등반가들은 베이스캠프에서 상위 캠프를 계속 오르내리면서 고소적응을 한 다음에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근래에는 인공적으로 기압을 높여주고 산소량을 많게 해서 하산하는 효과를 만들어주는 가모우백과 같은 장비가 있지만 아직은 고가라 인기가 없는 편.
따라서 보통은 저지대서부터 고소적응을 하면서 높이를 올려 5천2백~5천4백m 근처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다. 전문가들은 “에베레스트 등반의 경우,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베이스캠프(약5천4백m)~캠프1(약6천1백m)~캠프2(약6천4백m)~캠프3(약7천2백m)~캠프4(약8천m)~정상이라는 순서를 밟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각 단계마다 3~4일 정도 적응하고, 캠프4에서 하루 만에 정상 정복을 노리는 것. 그래도 최소 약 17일이 걸린다고 한다. 이 역시 완전히 이상적인 조건에서나 가능한 일.
8,848m 에베레스트 산의 경우, 몸을 고소환경에 적응시키면서 올라가야 하므로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는 약 1개월을 소비하는 셈이고 악천후엔 훨씬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안전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밟아야 하는 수순.
등반가의 안전을 지키는 스포츠과학
등반가들의 정신력과 체력이 남다른 것은 사실. 특히, 폐활량에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신체 조건이라도 철저한 사전준비 없인 생존을 절대로 장담할 수 없는 곳이 8천m 이상의 고봉.
따라서 고봉 등반가들이 8천m급의 고봉을 등정할 수 있는 비밀은 오랜 동안 다져진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정상 정복을 향한 산악인의 집념, 세밀한 현지 정보와 최첨단 장비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스포츠과학의 발전은 산의 지형, 고산 기후, 고도적응, 고산병의 원인과 등반 장비 개발 등에 더욱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등반가들의 안전을 돕고 있다. 그러나 준엄한 산의 법칙은 아직도 인간에게 더욱 진화된 등반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동서양의 수많은 등반가들이 히말라야 고봉 등정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 확실한 안전지식과 고봉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적응훈련만이 생존의 비결인 것이다.
- 조행만 기자
- chohang2@empal.com
- 저작권자 2009-09-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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