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금요일 저녁 6시, 양산 부산대학교 병원 4층 모암홀은 노벨 화학상 수상자 쿠르트 뷔트리히 교수(Prof. Kurt Wüthrich / Institute of Molecular Biology and Biophysics, ETH, Zürich, Switzerland & The Scripps Research Institute, USA)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세계적인 석학의 강연을 듣기 위해 부산대학교 학생을 비롯한, 교직원, 일반인, 초등학생과 학부모들까지 참석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들려주는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뷔트리히 교수는 ‘구조 유전체학과 단백질의 세계(Structural Genomics and Expanding Protein Universe)'란 주제로 약 1시간의 강연을 가졌다.
NMR을 통한 용액 속 단백질의 3차원 구조 규명
뷔트리히 교수는 2002년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핵자기공명법(Nuclear Magnetic Resonance. NMR)을 이용하여 용액 속에 있는 단백질의 구조를 결정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미국의 존 펜(John Fenn) 및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Koichi Tanaka)와 함께 2002년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그는 이날 가진 강연에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히고 기능을 연구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며, 구조 생물학이 가지는 잠재력과 그 중요성이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인체는 위액이나 혈액과 같은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 용액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액 속 단백질 구조의 안정성과 유동성, 그리고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데이터를 생성해냄으로써, NMR은 확장하고 있는 단백질의 구조 세계에서 새로운 단백질의 기능을 밝혀내고 생화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NMR을 이용하면 단백질을 구성하는 원자들 사이의 거리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있어서, 비록 단백질이 용액 속에서 열적평형상태에서 움직이고 있다할지라도 단백질의 3차원적 구조를 결정할 수가 있다. 또한 이러한 단백질구조의 3차원적 정보를 이용하면 신약의 개발, 신약의 특성제어 및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의 발병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등 그 응용범위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구조 생물학과 NMR의 미래
뷔트리히 교수는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을 응용 분야의 예 중 하나로 설명했다. 헤모글로빈은 산소와 결합하여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1962년 X선 회절에 의한 헤모글로빈 분자의 구조도가 완성되었지만, NMR 등장 이후에 좀 더 명확한 헤모글로빈의 3차원 구조를 그려냄으로써 산소와 결합하는 위치를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그는 헤모글로빈의 구조변화가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헤모글로빈이 연구대상으로 가지는 가치와 그 특정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며 여기서 구조 생물학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 준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NMR을 통해 X-ray 결정학(X-ray Crystallography)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단백질들과 이들이 가지는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것이 미래 구조 생물학의 주요 과제이며, 그가 속한 연구팀이 이를 연구 중에 있다고 밝혔다.
뷔트리히 교수는 1982년에 NMR을 이용해 단백질의 구조를 결정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을 4편의 논문을 통해 발표하였으며, 1984년에는 이 방법을 이용하여 단백질의 구조를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그 이후 50여 종 이상의 희귀한 단백질의 3차원적 구조를 밝혀내었으며, 그 중에서 광우병을 일으키는 단백질로 알려진 프리온 단백질의 구조를 알아냄으로써 이 분야의 연구에 크게 공헌하였다. 현재도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기 위한 핵자기공명법의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으며, 또한 거대 분자의 3차원적 구조를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강연이 끝난 뒤에는 참석자들의 질문 시간이 이어졌다. 한 학생이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느냐?” 라고 묻자, 뷔트리히 교수는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선수가 되기를 원했지만 문제에 부딪히자 그냥 내가 맞선 ‘문제’ 자체를 구조 생물학으로 바꿔버렸다"며, "그리고 나서 올림픽 금메달 대신 노벨상 메달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이렇게 때로는 그냥 새로운 문제를 시작하는 것이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연구를 했었는가. 그냥 즐겼나, 아니면 노벨상을 꼭 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연구를 했는지 궁금하다”란 재미있는 질문에는 “과학이 됐든 아니든 어떤 문제에 있어서 특정한 상이 목표가 된다면 불행할 것이다. 하지만, 무슨 문제든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을 때, 어려움 대신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강연에 참석했던 부산대학교의 한 학생은 “과학자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구를 했는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 전해들을 수 있는 시간이자 새로운 도전의식을 심어준 계기였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 부산=최은혜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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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9-08-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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