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기초·응용과학
조행만 기자
2009-07-20

그날 하늘에 검은 비가… 왜, 우리 혼자 출격해야 하나?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지난 13일부터 서울 종로2가 낙원상가 4층에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선 매달 한 차례씩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이 영화들 중에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검은 비’가 있다.

이 영화는 일본작가 ‘이부세 마스지’의 동명소설 ‘검은 비’를 원작으로 제작됐다. 원작 소설은 지금까지 20여 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이 소설에 전 세계인이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1945년 8월 9일 오전 8시 15분. 티니안기지에서 이륙한 미 항공부대 소속 폭격기 ‘B-29 에놀라게이’호에는 기장 폴 티베츠 중령 이외에도 5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이 폭격기는 TNT 2만 배의 위력에 달하는 2메가톤급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탑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싣고 가는 폭탄이 무엇이며 그 폭탄이 갖는 의미가 무언지 몰랐다. 일상적인 공습에서 여러 대의 폭격기가 한꺼번에 출격하는 것과 달리 이번에는 그들 혼자만이 출격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왜 우리만 혼자 출격할까?”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군인으로서 그들은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겐 두 가지 엄정한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폭탄 개방스위치를 누르자마자 비행기를 급상승시킬 것” 그리고 “창 밖으로 절대 밑을 내려다 보지 말 것” 등이다.

에놀라게이호 승무원들은 이번 출격이 평소의 일본 본토 공습과 다르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한참 만에 히로시마 상공에 도착한 그들은 예정대로 히로시마 市 상공 9천500m에서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명령대로 비행기를 급상승시켜 상공을 빠져나왔다. 기지로 돌아온 승무원들은 “그때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음이 들렸고 곧이어 빛나는 섬광이 목격됐다”고 증언했다.

나중에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들이 비행기에서 본 것은 바로 원자폭탄이 폭발할 때 나는 섬광과 강한 충격파에 의한 소리였다.

후대까지 이어지는 방사능의 공포

원자폭탄이 폭발하면 제일 먼저, 십만 분의 1초 사이에 섭씨 3만 도라는 엄청난 화염(fireball)이 발생, 주위의 모든 물질을 녹여버린다. 원폭 중심지 반경 500m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이 열파에 의해 사라진다.

폭발이 있고 1초 뒤에 반경 250m, 높이 7km에 달하는 버섯구름이 형성되는 이유도 바로 폭발로 인한 열 반응 때문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 구름은 성층권인 고도 16km까지 미쳤다고 한다. 이후 핵폭풍이 부는데 히로시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태풍보다 몇 십 배나 강력한 폭풍이 휘몰아쳤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폭풍은 폭발지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들까지 날려버렸다. 폭탄이 터지면 물리적 피해는 폭풍에 의해서 크게 나타난다. 이 두 가지 충격파로 히로시마 市는 거의 만신창이가 됐지만 재앙은 시작일 뿐이었다.

원폭의 진짜 공포는 바로 방사능이기 때문이다. 핵폭탄의 경우, 폭발 에너지의 약 15%가 방사능의 형태로 방출된다. 이 중 5%가 폭발 후 1분 이내에 발생하는 초기 방사선으로 중성자와 감마선이 방출된다. 이 방사선이 직접 몸을 뚫고 지나가면 현장에서 바로 죽는다.

약하게 쬐인다고 해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죽어가는 시간이 길어질 뿐이다. 몸을 투과하는 방사능은 면역 체계를 붕괴시키고 이로 인해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이것뿐이 아니다. 폭발에 의한 화염으로 뜨거워진 주변 공기가 급속히 상승하면서 형성된 ‘버섯구름’에 ‘방사능낙진(fallout)’ 이른바 ‘죽음의 재’가 포함돼 있다. 이 비는 폭발 다음날에 내린다. 이날 원폭 현장에 있던 히로시마 시민들은 “폭발이 있은 다음날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비를 맞았거나 마신 사람들은 평생 고통에 시달렸다. 몸이 갈라지거나 잇몸이 치아와 함께 녹아내리는 병, 눈의 검은자가 노랗게 변해가면서 시력을 잃어가는 병, 뼈가 녹아버리는 병 등이 생긴다. 이 고통은 후대에도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기형아의 탄생.

부모가 현장에서 피폭당하고 살아남아도 방사능을 쪼이거나 방사능 낙진이 녹아든 물이나 빗물을 마셨다면 후대에 기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큰 것. 실제로, 원폭의 현장 히로시마나 나카사키뿐 아니라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폭자들이 낳은 2세들에게서도 눈이 하나거나, 손이 붙어 있거나, 손가락이 6개가 달린 기형아들이 출산된 적이 있다.

마스지의 소설 ‘검은 비’의 주인공인 야스코도 원폭투하시에 검은 비를 맞았다. 겉으론 멀쩡하지만 그녀는 결혼 적령기가 다가오면서 방사능 피폭에 의한 기형아 출산을 두려워하는 신세가 된다. 마스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방사능에 피폭 당한 한 여자의 비극적 일생을 그리며 원폭의 참상과 방사능의 공포를 고발하고 있다.

원자력의 두 얼굴

제3의 불로 알려진 원자력은 야누스적 속성을 갖고 있다. 원자력의 탄생은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과학적 업적임에 틀림없다. 원자력에 의해 인류의 삶은 한 단계 발전했다. 전력 생산, 방사선 치료 등 21세기를 사는 인류에 없어선 안 될 에너지가 바로 원자력이며 화석연료 고갈에 당면한 지구촌의 미래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 그리고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경우처럼 원자력은 인간을 철저하게 파괴시키는 데 쓰이기도 한다. 그 고통이 한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원자력의 오용은 인간의 종말을 뜻한다. 히로시마에 내린 검은 비가 원자력의 악마적 속성을 상징한다면 21세기의 원자력 발전은 천사의 얼굴인 것이다.

원폭의 아버지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과학은 양날의 칼”이라고 말했다. 과학이 인류의 생존을 지탱해주는 수술실의 메스가 될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자신의 목에 들이대는 강도의 칼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원자력이 그 대표적 사례다.

동서냉전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 지금도 한반도에서는 심심찮게 북핵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과학이 순수한 목적으로 쓰이지 않을 때, 양날 중 한쪽의 날은 더욱 날카롭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조행만 기자
chohang2@empal.com
저작권자 2009-07-20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MAIL: sciencetimes@kosac.re.kr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차대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차대길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