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페엔은 물리, 생물, 화학 전문가는 물론 교육전문가, 교육심리전문가까지 모두 망라된 100여명의 연구진이 어떻게 하면 독일 학생들에게 과학교육을 잘 시킬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연구소다. 변변한 과학교육 연구기관도 없는 우리나라 과학교육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연구소였다.
이런 반응은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웨덴에 취재를 간 기자에 따르면 스웨덴의 국립물리교육센터의 연구진들 또한 자신의 프로그램 설명을 하면서도 한국에서 과학교육에 대해서 배우러 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외국과학교육 관계자들의 이런 반응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뛰어난 성취도 덕분이다. 지난 200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40개 나라를 대상으로 학생들의 학력을 조사하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과학 학력 성취도 1위를 차지했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과학 성취도에서 최고 수준의 성적을 내고 있다. 흔히 과학선진국이라고 인식되는 미국이나 독일, 스웨덴 등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외국 교육관계자들은 “한국학생들은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하냐?”며 한국에 수업참관을 하러 오고 싶다는 속내를 종종 내비치곤 했다.
이런 예에서 보듯 지금 선진국들은 각국 학생들의 과학 학업 성취도 하락으로 홍역을 겪고 있다. 독일의 예를 보면 이페엔이 1969년 물리교육연구소로 처음 출발했을 때 이미 독일 학생들의 과학 공부 기피 현상은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된 상황이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 나라들은 학생들의 전반적인 학력 저하와 과학 교사의 질 저하 때문에 골치를 싸매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예를 들어보면 그곳에서 과학은 이미 많은 학생들이 외면하는 천덕꾸러기 과목으로 꼽히며, 사범대 지원자 수도 과학교육 관련 분야 지원자는 1992~2000년 사이 29%나 줄어들었다. 스웨덴의 경우 상당수 과학교사들이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데다고등학교 과정에서도 과학을 주전공으로 하지 않은 경우도 많은 실정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저력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파악한 뒤 재빨리, 거대한 예산을 투입해 가며 과학교육 활성화 대책에 나서고 있다. 각국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교사의 질 제고와 이와 더불은 체험·실험중시 과학수업의 정착이다. 과학은 어렵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딱딱한 학문’이라는 인식 때문에 학생들이 점점 관심을 잃어간다. 그런 학생들의 관심을 돌려 세울 수 있는 것은훌륭한 교사 아래서 과학은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있는 수업을 받는 길 뿐이다.
각국은 앞다투어 교사양성·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과학체험관이나 박물관 등 학생들이 과학의 신기한 원리를 직접 몸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관을 잇따라 세우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최일선에는 세계 최강의 선진국 미국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대부분의 학력조사에서 최하위권에 자리하며 과학교육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까지 대두됐다. 그 전에 이미 1983년 미국의 국가교육우월성위원회는 ‘위기에 처한 국가’라는 정책보고서를 발표했고 이 보고서 이후 5년간 300편 이상의 보고서들이 미국 과학교육의 위기를 지적했다. 1986년 미국과학진흥협회는 ‘프로젝트2061’이라는 연구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헬리혜성이 지구를 찾아온 1985년을 시작으로 다시 혜성이 지구를 찾는 2061년까지 미국인들의 과학 소양을 향상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매년 수백억원의 예산을 써가며 미국 시민들 전반의 과학 소양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독일 또한 1999년부터 연방 정부의 지원 아래 거국적인 과학문화 프로그램 ‘대화하는 과학’을 시작했다. ‘대화하는 과학’은 과학을 일반인들과의 대화 대상으로 만들어 독일 시민들이 과학에 더 친근감을 가지고 접근하고, 연구인들은 일반인의 신선한 발상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연중으로 과학 행사나 축제를 열고, 과학에 관련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등의 다양한 활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모두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작업들이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시사점은 단순하다. “학생들이 과학을 재미있게 느끼도록 하라.”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처럼 이공계 출신의 직업적 안정성과 수입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현재 이공계 출신의 취업률은 40% 수준 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고등학교의 이과 지원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과가 줄어듬에 따라 과학교사의 수급에도 문제가 생겨 새로운 교사들이 들어설 자리도 점점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한 고등학교 과학 교사는 “사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과학에 흥미를 가진 뛰어난 제자를 보면서도 과학으로 진로를 잡으라는 말을 차마할 수가 없다”고 자조할 정도다.
당장 풀어야 할 숙제도 너무나 많다. 체험·실험수업 위주의 수업으로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려고 해도 실험실의 확충과 기자재 지원,실험보조교사의 도입, 수업내용을 온전하게 소화할 수 있는 과학수업 시간의 확충, 우리 현실에 맞는 교육과정 개발 등 당장 과학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기본 인프라 확충부터 시급한 상황이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전국적으로 이공계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고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됐다. 정부 차원의 이공계 지원정책도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교육부에 과학실업교육정책과도 새롭게 신설됐다. 국가와 사회가 과학 교육과 과학 인력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궁리하는 때부터 우리 과학교육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남한산초등학교 안순억 교사가 겪은 실화로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안 교사가 하루는 외국에서 학업성취도에서 뛰어난 결과를 보이는한국의 교육현장을 참관하고자 온 참관인단을 안내했다. 참관인단이그리 특별하지 않은 수업현장을 지켜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학교를 나서다가 방과후 학생들과 함께 즐겁게 축구를 하고 있는 교사를 보며 물었다고 한다.
“저 교사는 아이들과 축구를 하는데 시간당 얼마를 받습니까?” 안 교사가 어안이 벙벙한 채 대답했다. “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노는 데 왜 돈을 받습니까?” 참관인단은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교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려는 열정을 풍부하게 간직한 교사들만으로도 한국 교육의 미래는 밝습니다.” 어려운 여건 아래서도 우리나라의 과학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교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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