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 영향 받아 공대 진학
“왜 공대를 선택하셨나요?”
가끔 기자들이 이런 질문을 해와 저를 난감하게 한 적이 많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화학을 가르치는 담임선생님의 영향으로 화학반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화학반에 있는 것보다 반장으로 몸담고 있던 테니스반에서 운동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만화를 즐겨 읽는 만화광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본 만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에디슨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에디슨은 학교 성적이 시원찮은 편이었지만 독서를 좋아했고, 1,000건 이상의 특허를 낸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발명가였습니다. 그 만화를 읽고 에디슨 같은 발명가가 되려면 어느 학과를 가야 하나 알아보던 중, 공대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축음기와 탄소 필라멘트 백열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제너럴일렉트릭(GE)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발명을 한 에디슨은 평소 아주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엄청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 생활 속의 현상까지 항상 물음표를 단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것이죠.
이런 노력과 지칠 줄 모르는 탐구심이 그를 발명왕으로 만든 겁니다. 에디슨은 노벨상을 거절한 일화로도 유명한데, “노벨이 어떻게 에디슨에게 상을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자부심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에디슨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공 계통으로 진학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는 과학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세계2차대전을 겪었는데, 연합군 비행기가 지나가면 일본군이 고사포를 쏘아대는 광경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폭격기가 나타났는데 일본군이 아무리 고사포를 쏘아대도 그 비행기 근처에 닿지 않았습니다. 전에는 고사포를 쏘아대면 비행기들이 피해서 도망갔지만, 그 비행기는 아주 높이 고사포 사격권 밖에 있었으므로 전혀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 비행기가 바로 B29라는 폭격기였는데, 그때는 “이야!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까.”하며 아주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후 6․25전쟁을 겪었는데, 북한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반면 남한은 탱크가 한 대도 없었습니다. 대신 연합군측에서 비행기를 앞세워 제공권을 장악하는 것을 보고 전쟁이라는 것도 결국 기술력의 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조선시대 때의 임진왜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들이 당파싸움으로 인해 올바른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 일방적인 패전의 가장 큰 이유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전쟁 준비를 제대로 했다 해도 일본을 당해낼 수 있었을 거라고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활을 쏘는 조선군과 조총을 가진 일본군은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지도자들의 공통점
세계를 제패한 나폴레옹의 비결은 바로 과학기술에 있었습니다. 첫째, 그는 표준화 기술을 이용했습니다. 그 당시 성능이 좋은 총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문제는 총마다 사용하는 총알이 각각 달랐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직시하고 있던 나폴레옹은 지휘권을 잡은 후 총알을 표준화시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총을 새로 보급하기 어려우니 모든 총에 다 사용할 수 있는 총알을 만들고 보급시킨 것입니다.
두 번째, 나폴레옹은 적군과는 다른 통신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의 상황에서 뛰어난 통신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건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전체 전선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모두 꿰뚫어 보면서, 본부에 앉아 전쟁 게임을 하듯 지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적군과 차별화시킨 또 하나의 기술은 포의 이동 기술이었습니다. 포는 그 파괴력과 멀리 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너무 무거워서 이동시키기에 불편했습니다. 당시에는 말을 이용해서 포를 끌고 다녔는데, 나폴레옹은 포에다 스팀엔진을 장착시킨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 포의 기동력이 다섯 배나 빨라져, 전장에서 적군이 포를 준비하기도 전에 선제 공격이 가능했습니다.
드골 대통령은 기술 대통령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개통한 우리나라의 고속철도도 세계에서 최고라는 프랑스의 기술력이며, 미국이 석권한 비행기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는 영국과 합작해서 에어버스라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파리에 전자도서관을 설립한 퐁피두 역시 문화의 대통령이자 기술 대통령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러시모어산에 새겨져 있는 유명한 대통령 얼굴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거기에는 워싱턴과 제퍼슨, 링컨, 루즈벨트 등 역대 대통령 4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 대학을 나오지 않은 링컨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모두 이공 계통 출신이었습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은 원래 엔지니어였으며, 미국을 경제공황에서 구출해낸 루즈벨트도 토목기술자였습니다. 토머스 제퍼슨 역시 이공 계통 출신으로서, 특허법을 제정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허법이란 먼저 만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법으로서,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은 특허법에서 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이처럼 선진국에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존경 받는 지도자들 가운데는 이공계 출신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과학 기술을 진흥시킨 임금님으로 세종대왕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고 측우기와 해시계․물시계를 발명하는 등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과학 기술 마인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타임지에서 지난 천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누구인지 의견을 모은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선정되었습니다. 금속활자가 없었다면 책이 보급되지 않았고 지금의 서양 문화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200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처럼 각광을 받지 못했던 걸까요? 우리가 금속활자를 일찍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애써 개발한 금속활자로는 임금이 보는 소중한 책 몇 권만 찍고, 일반 대중이 보는 책은 예전의 방식대로 만들었던 거죠. 다시 말해서 우리에겐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남보다 한 발자국 앞서 가야 합니다. 한 발자국 앞서 간다는 것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과 자기 정체성의 확립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이기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전 서울대학교 총장
<정리: 이성규 사이언스타임즈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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