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기초·응용과학
2004-04-05

꽃에 숨어 있는 생존의 법칙 조선일보 공동 기획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최근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꽃이 피는 시기가 점차 앞당겨지고 있다. 그에 따라 예전에 제정된 식목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럼 식물들은 어떻게 기온이 따뜻해진 것을 알아차리고 꽃을 일찍 피울까. 꽃이 피는 원리와 그에 얽힌 재미있는 과학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본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

사방이 온통 꽃천지다. 하나 둘 얼굴을 내미는가 싶던 개나리는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노란 물결을 이루었다. 그 위로 화사한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담장 너머로는 하얀 목련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손을 잡고 꽃길 아래를 거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만하다. 저 나무들은 도대체 봄이 온 걸 어떻게 알고 꽃을 피울까. 그것도 정확하게 때를 맞추어 한꺼번에 말이다.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대개 길어진 낮의 길이와 높아진 기온으로 개화 시기를 알아차린다. 한편, 국화나 벼 등 가을에 꽃이 피는 식물은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을 보고서야 꽃을 피운다. 그럼 식물마다 왜 이처럼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른 걸까?


그걸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식물이 꽃을 왜 피우는지 알아야 한다. 꽃은 식물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생존수단이다. 꽃이 피야 그 안에 들어 있는 암술과 수술의 수정이 가능하고, 씨라는 자손을 남길 수 있다.


똑같이 꽃을 피워도 스스로 수정이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구분이 된다. 하나의 꽃 안에 있는 암술과 수술 사이에서 수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자화 수분이라 한다. 거기에 비해 타화 수분은 한 개체 안에 피어 있는 다른 꽃 사이에서 수정이 이루어진다. 다양성을 늘릴 수 있다는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타화 수분 식물이 더 우월한 종이다. 마치 예전부터 친인척끼리의 결혼을 금기시해왔던 인간 사회의 이치와 같다.


자화 수분을 하는 식물은 꽃만 피면 자기 스스로 수정이 가능하다. 즉 외부의 다른 도움이 필요 없다. 따라서 꽃이 작고 볼품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비해 타화 수분을 하는 꽃은 암술과 수술 사이를 오가며 중매쟁이 역할을 해주는 새나 곤충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 중매쟁이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꽃이 크고 예쁘며 좋은 향기를 지녀야 한다.


따라서 타화 수분을 하는 식물들은 꽃을 피울 때 새나 곤충의 활동 시기를 고려한다. 자기의 수정을 도와주는 중매쟁이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할 때 꽃을 피워야만 번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시기는 자기가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선택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외부 환경의 감지 없이 내재된 자기 프로그램에 의해 꽃을 피우는 식물도 있다. 담배는 심은 후 5~6개월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연중 어느 때고 꽃을 피운다. 이런 식물은 무엇을 기준으로 꽃을 피우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개화에 필요한 호르몬이 계속 쌓여 어느 일정치를 넘으면 꽃이 피는 시스템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다양한 경로로 꽃 피는 시기 감지

식물에 담겨진 이와 같은 비밀을 풀기 위해 과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우선 그들이 연구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애기장대라는 잡초. 애기장대는 다 성장해도 개체의 크기가 작아 실험실에서 생육시키기가 쉽다. 또한 식물의 분류학상 최고로 진화한 시스템으로 인정받는 현화식물(꽃을 피우는 식물)이면서도, 안에 담겨진 게놈 정보의 수가 적다.


이것은 불필요한 유전자 정보가 별로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의 1/20 정도에 불과한 애기장대의 염기서열을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분석하는 데 꼬박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지난 2000년에 발표된 2만 7천여개의 애기장대 유전자 가운데 기능이 밝혀진 것은 지금까지 2천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중 가장 관심이 모아진 것은 당연히 개화시기 관련 유전자의 규명이다.


연구 결과, 애기장대가 꽃을 피우는 경로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었다. 첫째 광주기(밤과 낮의 길이), 둘째 생장 온도, 셋째 춘화(春化 ; 일정 기간의 저온에 노출되어야 꽃을 피우는 생물학적 과정), 넷째 식물 호르몬의 조절에 의해 꽃이 피는 시기를 결정했다.


아주 작은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애기장대는 개화시기 조절 유전자들의 네트워크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 편이다. 즉, 자기가 감지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하고 있다. 그건 꽃을 피우는 것이 식물에게 있어서는 살아남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애기장대는 낮이 길어지면 꽃이 피는 장일식물인데, 광수용체에서 빛의 양과 강도 등을 체크하여 그 정보를 개화시기 조절 유전자에게 전달하게 된다. 그러나 항상 그늘진 곳에서 자라난 개체는 광수용체가 빛의 정보를 읽을 수 없게 된다. 그럼 이런 개체는 봄이 되어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걸까?

그런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애기장대는 광주기뿐만 아니라 생장온도와 춘화, 식물 호르몬이라는 다양한 경로로 개화시기를 알아차린다.


이와 반대로 겨울에 일시적으로 기온이 올라가도 다른 감지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게 된다. 가끔 한겨울의 따뜻한 날씨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개나리를 볼 수 있는 건, 개나리의 감지 시스템이 온도에만 주로 의존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다 보다”라고 노래했다. 어쩌면 시인은 눈치 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식물들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의 울음소리보다 더 많은 것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안지훈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교수, 고려대 식물신호네트워크연구센터 부소장



<정리: 이성규 사이언스타임즈 객원편집위원>


장일 식물과 단일 식물



단일 식물은 낮이 짧아지면 꽃이 피는 식물을 말한다. 가을에 피는 꽃에 이런 성질을 가진 것이 많은데, 벼, 옥수수, 콩, 담배, 코스모스, 국화, 나팔꽃 등이 단일 식물에 속한다. 처음에는 낮이 짧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단일식물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낮보다 밤이 길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요즘에는 장야식물이라고도 한다.

한편 일조 시간(明期)이 어떤 일정한 시간(임계시간)보다 길 때 꽃눈을 형성하는 식물을 장일 식물이라고 한다. 즉, 낮이 길어야 꽃이 피는 식물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장일 식물이 꽃눈을 형성하기 위한 조건은 낮이 긴 것보다 밤(暗期)이 임계시간보다 짧은 것이다.

따라서 밤(암기)만 짧으면 일조시간(명기)을 인공적으로 짧게 해도 꽃눈이 형성된다. 장일 식물에는 보리, 밀, 시금치, 무, 양파, 상치, 감자 등이 있다.

한편 장일 식물은 암기 도중 짧은 시간이라도 빛을 쬐면 암기의 효과를 잃게 되는데, 이 현상을 광중단(光中斷)이라 한다.

이처럼 식물의 개화가 일조 시간의 길고 짧음에 의해 영향을 받는 성질을 일장효과(광주기성)라 한다. 때문에 이를 응용하여 인공적으로 전등불을 밝혀 일조시간을 길게도 하고 짧게도 하여 계절에 관계없이 꽃이 필 수 있도록 일장 처리를 할 수 있다.



저작권자 2004-04-05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