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만들어진 화약무기를 다룬 영화 ‘신기전’의 반응이 사뭇 뜨겁다. 추석 극장가를 휩쓴 흥행작으로서 관객들의 호응을 이어오고 있는 이 영화의 주연은 설주 역을 맡은 정재영과 최무선 장군의 손녀 딸인 홍리 역의 한은정이다.
그러나 기자가 보기엔 ‘신기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신기전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구체적이면서도 집요하게 신기전에 대해 파고든다. 물론 영화 속의 스토리와 상황 설정은 모두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신기전에 대한 과학적ㆍ역사적 사실은 많은 고증을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신기전의 이미지와 역사 속의 진짜 신기전이 어떻게 다른지 짚어본다.
옛날에 이런 훌륭한 무기가 있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 걸?영화를 본 관객들 중 조선시대에 이런 훌륭한 무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왜 알려지지 않았냐고 원통해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그러나 신기전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져 있는 유명 인사이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병서편찬과 무기제조’ 항목을 보면 신기전 발사대인 화차의 사진과 함께 신기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조선 초기 화약 무기의 제조에는 최해산이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최무선의 아들로서 태종 때 관리로 특채되어 화약 무기의 제조를 담당했다. 조선 초기에 만든 화포는 사정거리가 최대 1천 보에 이르렀으며, 바퀴가 달린 화차는 신기전이라는 화살 100대를 잇따라 발사할 수 있었다.”
또한 지난 1993년 대전엑스포 개막식에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소 채연석 박사팀이 신기전을 복원하여 발사함으로써, ‘5백여 년 만에 다시 부활한 조선의 로켓’이라며 국내외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다. 영화 ‘신기전’을 만든 김유진 감독도 그때 신기전의 위력을 직접 구경한 후 영화로 만들 결심을 했었다고 한다.
신기전은 세계 최초의 로켓?
기록상 전해지는 세계 최초의 로켓은 1232년 중국 금나라에서 만든 비화창이다. 날아가는 불화살이란 뜻의 이 무기는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사용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두 번째 로켓은 1290년 무렵 아라비아의 알하산 알람마하가 만든 ‘연소하며 스스로 날아가는 달걀’이라는 이름의 로켓이다. 이 로켓을 사용한 사례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는데, 납작한 두 개의 냄비를 포개놓고 그 가운데 2개의 큰 로켓을 장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 로켓은 1379년 이탈리아의 제노아 군대가 카이오자 성의 베니스 군을 공격할 때 사용한 ‘로케타’이다. 이 무기에서 오늘날의 ‘로켓’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신기전은 고려 말 최무선이 만든 ‘주화’를 개선해 만든 무기로 알려져 있다. 주화는 화살 앞부분에 종이를 말아서 만든 종이통에 화약을 쟁여넣고 점화선에 불을 붙이면 화약이 타면서 연소가스를 분출해 날아가는 로켓 무기였다.
신기전이 세계 최초라는 것은 다른 고대 로켓들과는 달리 설계도가 남아 있어서 복원이 가능한 최초의 로켓이라는 의미이다. 채연석 박사가 1975년 최초로 발견한 신기전의 설계도는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예절서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 속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 설계도는 1983년 헝가리에서 열린 제34차 세계우주항공학회에 소개되어 국제적으로도 공인을 받았다.
신기전과 화차는 같다?흔히 신기전이라고 하면 영화 속에서 본 것처럼 둥그런 바퀴의 수레와 그 위에 로켓발사장치처럼 생긴 나무틀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기전의 발사 및 이동장치인 화차이지 신기전이 아니다. 거기에 장착되는 화살이 바로 신기전이다.
신기전은 자체 추진력으로 날아가므로 발사장치가 없어도 된다. 하지만 문종이 화차를 개발함으로써 발사각도와 방향을 정확히 잡게 되고 한 번에 많은 신기전을 발사할 수 있게 되어 신기전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화차는 바퀴가 있는 수레와 신기전의 발사틀인 신기전기 및 총통의 발사틀인 총통기로 이루어져 있다. 화차의 수레는 보통 수레와 달리 상판이 바퀴보다 매우 높게 설계되어 신기전의 발사각도를 0도에서 43도까지 조절해 사정거리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문종은 자신이 직접 만든 화차를 1451년(문종 1년) 전국 각지에 700여 대나 배치했다.
신기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화약무기였다?
세종은 1448년(세종 30년) 9월 13일 새 화포의 주조법과 화약 사용법 등을 상세히 기록한 일종의 화포 매뉴얼인 ‘총통등록’을 여러 도의 절제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아전의 손에 맡기지 말고 홀로 있을 때 비밀히 펴볼 것을 강조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양계(북방 지역의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매년 한 번씩, 그 나머지 도에서는 2년마다 한 번씩 총통등록 속의 화포를 쏘는 연습을 하도록 지시했다. 그때 나열한 화포의 종류를 보면 팔전총통ㆍ사전총통ㆍ장총통ㆍ세총통에 이어 신기전은 맨 마지막에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신기전은 그 당시 비중이 제일 큰 무기는 아니었다. 맨 앞의 팔전총통은 한 번에 세전 8발, 차세전 12발을 장전하여 동시에 발사할 수 있었다. 또한 신기전기와 더불어 화차에 장착되는 총통기에는 사전총통 50개를 장착할 수 있어서 한 번에 세전 200발, 차세전 300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즉, 한 번에 100발을 장착할 수 있는 중ㆍ소 신기전보다 더 위력적인 다연발 화포였던 셈이다.
그러나 신기전은 스스로 추진력을 갖고 있는 로켓이라는 점에서 석환이나 철탄자ㆍ화살 등을 속에 넣고 쏘는 화포인 총통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더불어 영화의 라스트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적진에 날아간 중신기전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발화통의 화약이 다시 폭발하므로 매우 위력적이었다.
대신기전은 로켓과 모양이 똑같다?영화 속에서 발사된 대신기전을 보면 현대의 로켓과 모양이 똑같아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허나 옛날과 똑같이 복원해 사용한 중ㆍ소 신기전과 달리 영화 속에 나온 대신기전은 작은 로켓으로 대신해 촬영한 다음 컴퓨터그래픽으로 마무리한 장면이다.
1993년 대전엑스포 때 이미 중ㆍ소 신기전을 복원한 채연석 박사도 아직 대신기전은 복원하지 못했다. 대신기전의 복원이 어려운 이유는 약통의 재료인 질기고 질 좋은 전통한지를 구할 수 없기 때문.
신기전보다 1세기 앞서서 로켓무기인 ‘화전’을 만든 화약의 종주국 중국보다 앞서가는 대신기전을 조선이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우수한 제지술로 만든 전통한지 덕분이었다는 설도 있다.
대신기전의 진짜 모습은 5.3m의 매우 길고 큰 화살에다 맨 앞의 화살촉 대신 길이 22.8㎝, 지름 7.46㎝의 발화통과 길이 70㎝ 지름 10㎝의 약통이 연이어 부착된 모양이다. 약통의 추진력에 의해 대신기전이 적진에 도달하면 발화통의 화약이 터지게 된다.
대신기전과 비슷한 크기의 산화신기전은 시간 차를 두고 공중에서 지화통이 먼저 터진 다음 발화통이 폭발하게 되어 있어 적진을 더욱 혼란에 몰아넣었다. 대신기전은 주로 압록강변에서 사용된 걸로 보아 강변의 성에서 압록강 건너 오랑캐를 향해 발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2008년 4월 국방과학연구소에서는 100% 전통한지 대신 펄프를 약간 첨가한 한지로 대신기전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 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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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8-09-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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