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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공하린 객원기자
2008-03-03

기하학적 이미지들의 하모니 국제갤러리, 홍승혜 파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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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의 모니터를 볼 때 ‘화질이 좋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화질이 좋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등의 화면을 확대경으로 보면 일정간격의 많은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점들은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로서 픽셀(pixel)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picture element를 줄인 말이다. 화면을 구성하기 위한 최소단위로서 점의 크기 여부에 따라 그림의 윤곽이나 농담(濃淡)이 달라지고, 쇠라의 점묘법처럼 화면 전체의 점 즉 화소수가 많을수록 정밀하고 상세한 재현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들이 모여 선이나 면이 되고, 점, 선, 면이 모여 하나의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유클리드가 <원론>에서 “점은 부분을 갖지 않는 것이다.”라고 기하학적 의미에서 정의했다면, 예술적 의미에서 점은 하나의 조금만 세계이다. 또한 점은 미술의 외적 및 내적 의미에서 ‘회화의 원천적 요소’이자 ‘그래픽의 원천적 요소’이다. 이러한 점이 움직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선이다. 선은 길이는 있으나 넓이가 없고 위치와 방향을 갖는다. 그리고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새롭게 변화하면서, 직선, 각진 선, 곡선 등 그 형태가 다양해진다.


이러한 선들이 모여 이동한 것이 새로운 형태의 기하학적 면이다. 면은 길이와 넓이는 있으나 두께는 없다. 유클리드는 <원론>에서 “면은 길이와 폭만을 가진 것이다.” 혹은 “평면은 그 직선이 그 위에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예술에 있어서 도식적인 평면은 두 개의 수평선과 두 개의 수직선이 만나 만들어진 것으로 작품의 내용을 담는 물질적 요소이다. 이러한 평면은 어떤 형태의 평면이든지 네 개의 변을 지니고 있고, 이 네 변의 각각은 변을 구성하는 색깔이나 모양 등에 따라서 그 고유한 특징들을 드러낸다.

점, 선, 면이 조화, 균형, 대비 등을 이루며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해 수학적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점은 면과 면이 공간에서 마주치는 모서리의 끝으로 표현되는데, 고딕 건축에서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진 뾰족한 첨탑이 바로 점이다. 다음으로 선은 한 직선의 무한적인 반복, 한 곡선의 무한적 반복으로 표현되는데, 조각이나 건축에서 선이 이용된 사례로 선을 이용하여 시도한 파리의 에펠탑이 있다. 마지막으로 면은 2차원의 공간을 이루고 자유곡선적이며 유동성을 갖는 유기적 형, 직선적 형, 불규칙 형, 우연적 형 등 여러 형태를 취한다. 이러한 평면 형태는 조각이나 건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벽지의 문양, 타일 등은 면이 만나 이루어지는 시각화 활동의 좋은 사례이다. 대부분의 벽지 문양은 규칙적인 방식으로 반복되어 평면을 완전히 채운다. 이러한 벽지 문양을 도안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들은 종이의 한 부분을 채우는 양식을 만들고 그 양식을 전체에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원자가 모여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학적으로 삼각형, 사각형 등 다각형이 평면 전체를 완전히 덮는 것과 유사하다. 최근에 수학자들은 보급품의 분배와 회로의 설계 등 다른 여러 분야에 응용되는 수학적 영역으로서 타일 붙이기와 벽지의 문양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작가 홍승혜는 수학적 및 기하학적 요소이자 예술 활동에서 중요한 요소인 점, 선, 면을 인공적인 가공의 과정을 거쳐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재생산하고 있다. 홍승혜는 1990년대 중반기부터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이라는 주제 아래 새로운 회화제작 방식인 공업적 생산방식을 이용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며 그 개념들을 발전시켜왔다. 그녀는 물감이나 붓 대신에 컴퓨터 프로그램인 포토샵(Photoshop)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네모난 픽셀 이미지들을 벽돌처럼 쌓아 올리거나 축소와 확대, 순열과 조합 등을 반복하여 만들어진 다양한 모양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인간의 손길보다 대부분 공업적 생산방식으로 제작되어 현대미술이 갖고 있는 특징들을 드러냈다. 그녀의 이미지들은 공업적 생산방식을 거치면서 평면의 화면에서 가구, 벽화, 조각, 비디오, 책과 같은 다양한 성질의 물질로 입체화되었고, 그것들은 실제의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의미들을 창조하였다. 이렇게 인공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창조물들은 “창조와 복제의 경계, 독창성과 익명성의 경계” 등 현대미술이 갖고 있는 다양한 특징들을 아우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녀의 작품들은 기계적 제작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는 단순한 의미보다 “오히려 자연 파괴적 기계문명으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을 포용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번에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작가 홍승혜의 <파편(破片)>展은 그녀가 지난 10년간 꾸준히 발전시켜온 ‘유기적 기하학'의 개념을 새롭게 선보인 자리였다. 작가에 따르면 작가의 개입에 의해 미세한 크기의 변화나 배열의 조율에 의해 유연하고 불규칙한 화면들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 유기적인 수학, 혹은 유기적 기하학의 이미지가 창조된다. 이렇게 창조된 작품들은 단순히 작품 자체의 의미보다 전시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작품이 어우러져 전시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시장을 보면 전시 공간을 분할한다는 의미에서 일정한 벽면 전체가 페인트로 채색되어 새로운 전시공간이 탄생했다. 이는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 공간 자체도 하나의 조각품, 즉 작품이라고 보는 작가의 의도를 말해준다.


전시된 작품으로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주제 아래 구성되고 공장에서 생산된 기하학적 도형들과, 가구와 조각품의 중간 형태인 가구를 닮은 오브제들과 건축 자재인 각파이프를 활용한 설치 작품들, 그 이외에 이미지 출력물,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작품 20여 점이 소개되었다. 특히 2층 전시실은 픽셀들이 춤추는 듯한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다. 작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을 의미하는 차원에서 도형들이 음에 맞추어 조화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선보였고, 애니메이션의 배경 음악으로 본래의 음을 분절하고 재편집하여 조용하고 쓸쓸한 불연속적 음조를 들려주었다. 이 배경 음악은 원래 17세기 바로크 음악가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의 춤곡 사라방드(Sarabande)이었다.

이번 전시는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말처럼 공장에서 인공적 이미지들이 만들어지나 그 이미지들이 작가의 힘에 의해 어떻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탄생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또한 그러한 시각적 재현이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파편처럼 분할되어 있는 기하학적 문양들에서 어떠한 의미를 보아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전시였다.

공하린 객원기자
저작권자 2008-03-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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