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7시 30분 인터콘티넨탈호텔 그랜드 룸에는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원로과학인과 공학인들이 모였다. 지난 83년도에 큰 인기를 모았던 MBC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의 작가 신봉승씨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다.
신년인사회를 겸한 이날 조찬 모임에는 한국 엔지니어 클럽 이윤우 회장을 비롯해 오명 건국대 총장, 채영복 과총회장, 성낙정 前 한전 사장, 기업인으로 박종우 삼성전자 총괄사장, 김태우 두산중공업 부사장 등 6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했다.
원로 TV드라마 작가 신봉승씨는 ‘나라의 품격과 정체성'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경제가 살면 나라가 산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며 “사람에게 인품이나 인격이 있듯이 나라도 품격이 중요하다”면서 강연의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봄에 G7의 정상들이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기에 초청을 받지 못했다. 연간 3천억 달러의 수출을 하고 세계 12위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으며 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를 그들 선진국들은 왜 초청하지 않은 것일까? 냉정하게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아직 나라의 품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라의 품격을 만드는 방법이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말한 신 씨는 몇 가지 현실적 사례를 들면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사정들이 암담하다. 올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모자랐다. 그 아이들이 20세가 될 때엔 우리나라엔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게 될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는데 지난해 연말에 한 외국노동자가 TV 카메라 앞에서 우리 사장님 월급 안주고 매일 패기만 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본국에 돌아가서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사학자 못지 않은 역사지식을 갖고 조선왕조 500년을 집필하기도 했던 신씨가 본보기로 삼는 시대가 바로 조선왕조다.
“나는 학문을 하기 위해 역사를 공부한 것이 아니다. 재밌는 드라마를 쓰기 위해 취미로 역사를 읽었는데 나 자신에 엄청난 공부가 됐다. 가난하면서도 500년 사직을 무너뜨리지 않았던 조선왕조의 저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엔 지식인 집단인 선비사회가 건재했고 권력의 상층부가 부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역사는 꼼꼼히 적어서 전해주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 관통하는 세종의 정치철학
얼마전 KBS 대하사극 ‘대왕세종’으로 다시 한번 인기몰이에 나선 신 씨는 세종대왕의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면서 나름의 국가관을 펼쳤다.
“오늘날 우리 정치가 잘 되고 국가가 잘 되려면 세종 시대를 그대로 가져오면 된다. 13세기가 지금의 21세기와 다르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 중국에서도 지도자들이 청나라의 4대 황제 강희제를 배우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국궁진력(鞠躬盡力)', 안거낙민(安居樂民)'이란 그의 정치철학 때문이다.”
‘국궁진력, 안거낙민’이란? 황제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백성들에게 절할 마음을 갖고 있으면 백성들은 편안한 마음을 갖고 살 수 있다는 것.
“강희제의 이런 정치 철학은 우리 세종대왕의 본뜨기로 볼 수 있는데 두 사람은 시기적으로 230년의 격차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강희제보다 조선시대의 세종이 먼저 이런 정치를 폈다”고 주장한 신 씨는 “왜 오늘날엔 이런 철학이 안 되는 것인가?”고 지적했다.
신 씨는 세종대왕의 리더십과 문민 정치를 설명하기 위해 집현전 학자 최만리의 사례를 들었다.
“한글 창제 당시에 최만리가 전하 이렇게 야비한 문자를 만들어서 대국의 가슴에 못을 박고 오랑캐가 되어야 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래서 최만리는 옥에 갇혔지만 하루만에 풀렸다. 그러나 세종은 그 자가 비록 반대는 했지만 논리가 정연하고 갖춘 학문이 있으니 옥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신 씨는 조선왕조 500년 내내 세종대왕의 정치철학이 이어지고 있고 오늘날 우리도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은 조선왕조 500년이다. 반대로 조선왕조는 세종이라고 바꿔말할 수 있다. 세종은 32년 동안 재위했지만 조선왕조 500년 동안 그의 정치철학이 관통하고 있다. 영국의 청소년들에게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우리에겐 세종대왕이 있다. 세종을 본받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의 소임이다.”
1933년 출생한 신봉승 작가는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거쳐서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그동안 시나리오 ‘두고 온 산하’, ‘조선왕조 500년’ 등을 저술했으며 이외에도 ‘소설 한명회’ 등 다수의 역사소설과 저서를 갖고 있다.
- 조행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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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8-01-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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