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사회의 급속한 팽창과 발달 속에서 영상문화는 일상생활과 함께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특히 영상문화를 대변하는 텔레비전과 텔레비전을 바탕으로 하는 비디오는 현대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가장 흔한 매체가 되었다. 이러한 매체들은 ‘바보상자’로 불리며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기력하게 희생되는 우리들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기술의 산물로서, 혹은 구술문화에서 필사문화, 활자문화에 이어 전자문화로 이어지는 대중문화의 첨병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첨단 영상매체의 발달은 예술가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대표적 예술가에 비디오 아트를 탄생시킨 백남준이 있다.
백남준의 초기 활동은 플럭서스 퍼포먼스 작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에 작곡가 및 행위예술가로서 ‘변화’ 혹은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플럭서스(Fluxus) 운동에 참여하였다. 국제적 전위예술운동으로 지칭되는 플럭서스 운동은 당시 고급화되고 규격화된 예술에 도전하거나 기존에 예술 형식에 대항하는 양상으로 전개된 믹스드 미디어(mixed media)적인 예술형식이었다. 이러한 예술형식은 음악가, 화가, 시인, 무용가, 영화작가 등 예술의 전 분야에 걸쳐서 기존의 예술 및 문화에 대한 반예술적, 반문화적 전위운동으로서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백남준도 이러한 활동에 동참하여 퍼포먼스, 조각, 음악 등 반퍼포먼스 예술가로 부상하였고, 그러한 활동은 백남준에게 퍼포먼스 예술가로서의 명성과 함께 비디오 아트 창시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백남준은 기술과학에 바탕을 둔 매체의 가능성에 큰 관심을 가졌다. 비디오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63년 3월 독일의 부퍼탈(Wuppertal)에서 최초로 대중 매체인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표현 매체로 하는 전시회에서 ‘비디오 아트’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구체화되었다. 비디오 아트는 텔레비전이나 카메라, 비디오 등 여러 가지 이미지 프로세싱 장치를 이용하는 일련의 예술 작품으로서 새로운 시각 매체의 기술적, 미학적 교묘함을 갖고 있었다. 첨단 테크놀로지아트로서 비디오 아트는 인간의 지각력 가운데 직접적이고 빠른 전달 효과를 갖는 시각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당시에 전위예술가와 실험예술가들은 이러한 이점을 가진 비디오 아트를 뛰어난 전달 매체로서 인식하였고, 예술이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흥미를 끌었다. 이후 예술가들의 창작 행위는 비디오 아트를 매개체로 더욱 다양한 표현과 예술영역을 창조하였다.
비디오 아트는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으로서 영화, 회화, 조각, 음악 등의 영역, 그리고 관객들과 관계를 맺으며 장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였다. 20세기 전자이미지를 총괄하는 비디오는 영상이라는 ‘시각성’과 음악이라는 ‘시간성’ 그리고 ‘공간성’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예술로 발전하였다. 또한 백남준은 또 하나의 구성요소로서 관객 참여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백남준의 작품은 관객과 상호 소통하는 참여예술을 지향하였고, 작품을 현장에서 바라보는 관람자들에게 영상에 나타난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의 유도를 이끌었다. 비디오 아트는 텔레비전을 이용한다는 사실 이외에 다양한 예술 장르를 포함하는 총체적 예술로서 시간, 상황, 관람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예술품으로서 장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디오 아트는 하나의 예술적 방법으로서 당시의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비디오 아트의 예술형태에 대한 생각은 “꼴라쥬 기법이 유화 물감을 대신하듯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하리라”라는 백남준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브라운관이 하나의 캔버스가 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 투영된 이미지는 기존의 관념적이고 논리적인 시간 개념을 부정하였다. 그는 제작한 일련의 작품에 어떤 일정한 패턴을 가지지 않는 그의 시간 개념을 투영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어떤 극단적인 사건 혹은 꿈속의 경험과 관련되는 것처럼 단 몇 초 동안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장면으로 나타났다. 비디오 아트의 발전은 전자산업의 대두와 함께 발전했으나, 예술사적 측면에서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을 시도한 흐름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더니즘의 몰락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라는 새로운 사조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
백남준은 기술과 인간의 통합을 시도하는 인공두뇌학에 대한 그의 관심에 기초하여 여러 작품들을 만들었다. 백남준의 일련의 작품인 TV브라, TV안경, TV첼로, TV침대 등과 함께 TV인간, 로봇 가족 연작들과 같은 테크놀로지의 의인화 작업은 백남준의 창조성에 기인한 작업들이었다. 그 중 로봇작업은 현대의 인간상에 대한 풍자적 모방, 인간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패러디였고, 고립된 인간이 아닌 서로 함께하는 가족 차원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시도였다.
백남준은 다양한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공연, 음악, 조각 등의 실험적 예술 활동을 거쳐 텔레비전과 비디오에 기초한 비디오 아트를 창시하였다. 이는 과학적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환경, 시간, 공간의 새로운 해석과 함께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예술 개념의 확장이었다. 이러한 그의 예술 활동을 조망할 수 있는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狂時曲/光時曲, rhapsody in video)>이 여의도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현란한 스펙터클과 시적 환상을 과시하는 1990년대 멀티모니터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제목에서 말해주는 것처럼, 이번 전시에 동시다발적이고 복합적이며 변화무쌍한, 그리고 현란한 스펙터클과 시적 환상을 과시하는 1990년대 멀티 모니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환상적이고 영웅적이며 자유분방한 광시곡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 작품에 狂時와 光時라는 전시 타이틀을 보다 보여줄 수 있는 빛과 시간의 예술로서 비디오 광시곡을 의미하는 텔레비전을 이용한 프로젝터, 설치미술, 행위예술, 철학, 과학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백남준은 현대미술 흐름의 하나를 개척한 피카소, 모네, 뒤샹과 같이 세계 미술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탄생시킨 비디오 아트는 과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사이아트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탄생시킨 비디오 아트의 진면목을 보는 것은 어떨까.
전 시 명: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전시기간: 2007. 7. 27- 2007. 12. 30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여의도 KBS본관 특별전시장
문 의 처: (02) 739-8824, 5
사 이 트: http://www.kbsnamjunepaik.com
- 공하린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07-12-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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