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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공하린 객원기자
2007-06-21

수학적 기호와 육중한 철의 연금술 국립현대미술관, <베르나르 브네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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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석탄가루로, 단단한 철로 수학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단단한 철을 구부려 뫼비우스 띠처럼 유연한 원형의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어려운 수학책에 나오는 공식들을 작품에 그릴 수 있을까. 푸른 숲과 호수가 어우러져 있는 미술관에서 거대한 철로 그려낸 거대한 선의 세계를 바라보며 예술의 세계로 빠져보자.



국립현대미술관은 5월 18일부터 7월 22일까지 파리, 뉴욕 그리고 르 뮈(Le Muy)에 근거지를 두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철의 연금술사이자 세계적인 환경조각가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회고전을 개최하고 있다. 프랑스 미술이 고수했던 전통적인 미술 개념에 도전장을 내민 브네는 마르셀 뒤샹의 작품에 매료되어 미술의 목적을 ‘미(美)가 아닌 지식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에 브네가 추구하는 것을 보여주는 1980년대부터 2000년 최근까지 작품인 조각, 사진, 타르 회화, 석탄더미 작업, 수학적 도식과 도표를 이용한 회화 및 조각 등이 선보이고 있다. 브네의 작품들은 브네의 지적인 면이나 작품, 작가, 사회의 역학 관계 속에서 형성된 브네의 앞서가는 세계관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객들은 브네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그 궤적을 이번 전시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과학으로 예술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브네는 예술 작품에 수학이나 과학에서 강조하는 논리 정연함을 더했는데 그러한 모습은 시대에 따라 특징적인 모습을 보인 브네의 활동에 잘 나타나 있다. 브네는 1961년부터 타르 회화, 석탄더미 작업, 사진 등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 활동은 다른 예술가들과 다르게 ‘자아와 거리두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작가 자신의 자아를 투영하기 때문에, 작가와 작품을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브네는 이러한 일반적 시각과 다르게 작품에서 자신의 자아를 제거했다. 즉 그는 자신의 자아가 만들어낸 미학적 ‘쾌락’을 작품에서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작품에서 자아를 없애는 방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완전히 제로상태가 되는 극단적 방식까지 이어졌다. 자신의 주관적 정서나 감정을 배제하고자 했던 브네는 자신의 분신인 터치를 버리는 것, 작업을 하는 주체를 작가가 아니라 중력, 바람 등의 외적 요인에 맡기는 것, 작품의 이미지를 레디메이드로부터 차용하고 그 이미지의 선택 권한조차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 등을 실시했다. 많은 작가들이 당연히 여기고 행하는 것들을 브네는 타인에게 맡기거나 새로운 요소들을 더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나 감정이 작품에 투영되는 것을 막았다



감정을 극도로 배제했던 브네의 작품 중에 열을 가하면 휘어지는 철인 ‘압연강’을 소재로 사용한 작품이 있다. 철을 이용한 조각은 프랑스에서 현대미술관으로 오는 도중 보도블록이 깨질 정도로 거대하면서 육중했지만 수학적 부호와 방정식을 사용하는 브네의 지적인 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브네는 각도기로 60도 만큼 잘라낸 모양의 철조각에 60°라고 새겨 넣었다. 그 각도가 정말 맞을까라는 우리들의 의아심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브네는 작품을 직접 설치하러 서울에 와서 “여러분이 보시는 것은 여러분이 보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절대 아닙니다.”라고 하며 “이건 그냥 60도의 각도일 뿐 어떤 다른 형태로도 보시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관객의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고자 했던 하나의 의미 이외에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 ‘단의성(monosemy)'을 미술작품에 실현한 것이니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브네의 말은 1966년말부터 단의성이라는 개념을 탐구하기 시작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네는 수학적 기호나 부호를 이용하면서 회화에 대한 자기반성을 시도했다. 그 시기에 나온 단의성은 외적인 지시나 상징, 해석이 개입되지 않은 오직 작품의 자기지시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품에서 더 이상 자신을 배제할 수 없었던 브네는 1971년부터 1976년까지 완전히 작업을 중단하다가 1976년에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브네는 이전에 탐구했던 자기지시적인 특성을 수학의 도식들과 도표들의 부호를 사용해 회화와 아크와 앵글의 연작들을 만들었는데, 그 작업은 예전과 달랐다. 즉 브네는 예술가의 정서와 미적 의미를 수용한 예술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브네는 단의성을 실현하기 위해 기하학과 수학을 사용했지만, 작품 내부에 수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칸트의 ‘수학적 숭고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예술가나 과학자나 자신이 추구해 왔던 세계에 다른 세계를 결합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브네는 전통적 미술 세계와 다른 길을 걸으며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였고, 그 작품들은 수학적 도식과 기호들과의 만남을 통해 미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수학적 숭고미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많은 작품들은 브네가 추구했던 단의성 이외에 많은 예술가적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브네가 걸어왔던 도전의 시간들과 그가 일구어 놓은 도전의 상징물들을 만났으면 한다.




전 시 명 :<베르나르 브네 : 선 ∞ 흔적 ∞ 개념>

전시기간 : 2007.05.18 - 2007.07.22

전시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중앙홀, 제1전시실, 미술관 야외 공간

문 의 처 : (02) 2188-6000

사 이 트 : http://www.moca.go.kr

공하린 객원기자
저작권자 2007-06-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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