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아인슈타인을 꿈꾸는 서울대학교 과학 영재들이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산실인 홍릉의 고등과학원(원장: 김만원)을 방문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대학교의 ‘수학, 물리 멘토 프로그램(이하 멘토 프로그램)’소속 학부생 12명과 이들의 멘토교수 1명 등 13명이 고등과학원을 방문해 이곳에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만나 과학환경을 접하고 과학자로서 향후 진로에 관해 조언을 들었다. 또 일부 학생들은 의문 나는 사항을 전공 관련 연구원들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기도 했다.
이날 방문은 고등과학원 초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앞으로 기초과학자의 길을 걷게 될 학생들에게 기초과학연구소 탐방 기회를 제공하고 선배 과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진로문제에 대해 궁금증을 물어보고 상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고등과학원 측은 설명했다.
고등과학원을 방문한 학생들은 수학과 물리분야의 영재출신으로 서울대 자연대가 올해 시작한 ‘멘토 프로그램’소속으로 장차 수학자나 물리학자의 길을 걸어갈 유능한 재원들이다. 앞으로 고등과학원에서 연구자의 길을 걷든, 아니면 연구원으로 잠시 머물든 간에 한 번쯤은 거쳐갈 곳이다.
티타임(Tea time)은 고등과학원의 독특한 토론장
매일 개최되며 이곳 연구원들의 연구활동과 관련해 일상 공유의 장이 되고 있는 티타임(tea time)은 자유로운 학문활동을 표방하는 고등과학원만의 특유한 브랜드다. 동료 연구원들과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하고 토론하기도 한다. 잡다한 세상사를 이야기하며 도반(道伴) 간의 우정을 다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티타임에는 고희를 훨씬 지났으면서도 왕성한 학문 활동을 보이고 있는 원로 과학자 김정욱 교수(물리학부 명예교수)가 참석해 우리나라 미래 기초과학을 짊어질 일꾼들을 반갑게 맞이해 사제와 같이 훈훈한 대화를 나누었다.
기초과학분야에서 최고 고참 선배라고 할 수 있는 김 교수는 최근 자신의 전공인 중성미자에 대한 연구
한국 과학자가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와 같은 세계 유명 학술출판사를 통해 연구논문을 책으로 출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고등과학원 관계자는 전했다. 김 교수는 고등과학원 초대 원장과 2대 원장을 지냈으며 중성미자 연구 한길을 걸어온 전형적인 기초과학자다.
원로 과학자 김정욱 교수도 따뜻이 맞이해
이날 티타임(tea time)에는 금종해 전 교수부장(수학부 교수)을 비롯해 2006년 세계수학자대회(ICM)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초청 강연자로 초빙 받아 한국의 기초과학 위상을 높인 수학부 황준묵 교수와 오용근 교수도 참가했다. 여성 수학자 강순이 박사도 자리를 함께했다.
한편 과학영재들 가운데 서울대 수리과학부의 고한경 학생은 “수리과학을 전공해서 계속 이 분야에서 머물고 싶다”며 "수학과 더불어 철학을 함께 공부하는 게 포부”라고 전했다. 그녀는 “수학 속에는 논리학과 같은 인문학 분야가 있다”며 “수학과 더불어 철학을 충분히 공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목고가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여의도고등학교)를 졸업한 고한경 학생은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포기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다 보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보였다”며 “특별한 공부방법은 없었다”고 전했다.
고한경 학생은 “고등과학원에 대해 이야기는 가끔 들었지만 처음 방문했기 때문에 (느낀 소감에 대한 질문에)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조용하고 자유스러운 것 같아서 공부하거나 연구하기에는 좋을 것 같다는 느낌도 덧붙였다.
수학부 황준묵, 오용근 교수도 참석
기초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에 지금도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의 이태영 학생은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 전공을 선택해서 공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그는 공부 비결에 대해 “좋아하는 과목은 열심히 해서 잘 하면 되고 좀 싫은 과목은 싫더라도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잔소리하지 말고 하다 보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며 답변이 황당한 듯 환하게 웃었다. 어쩌면 이 답변이 정답일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시력은 참 좋은 것 같다”는 질문에 이태영 학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글쎄, 그 이유는 정말 잘 모르지만 시력은 참 좋습니다”며 또 웃었다.
미래 한국의 아인슈타인들
고등과학원 국제회의실에서 슬라이드를 통해 고등과학원에 대한 소개를 듣고 난 학생들은 기념촬영을 끝마치고 캠퍼스 시찰을 마지막으로 3시간 정도의 방문일정을 끝마쳤다. 마지막 해도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고등과학원, 기초과학, 기본과학, 자연과학, 순수과학. 이태영 학생 말이 옳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용기도 있어야 한다. 비록 인생살이에 부와 명예라는 커다란 영광이 없다고 해도 자기의 길을 걸었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이성을 져버린 우직한 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칼날 같은 수학적인 과학 확률적 이론에 바탕을 둔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이기 때문이다.
순수하고 맑은 학생들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기초과학을 짊어질 훌륭한 과학자들이 됐으면 좋겠다. 홍릉 고등과학원 문을 나서자 초여름 저녁의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영혼이 맑은 젊은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해서 그랬을 것이다.
- 김형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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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7-06-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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