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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2003-12-18

한국 과학보도의 문제와 활성화 방안 강신구 한서대학교 교수,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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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사회에서 만연되어 왔던 이공계 푸대접 문제는 급기야는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이어져 국가적인 이슈로 등장하게 됐다. 그래서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 등 과학기술자 사기 진작 정책이 시행되기에 이르렀으나 이공계 푸대접 문제는 사농공상의 전통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어 가까운 시일 안에 개선될지는 미지수이다.


이러한 과학기술 푸대접 문제는 매스미디어 내부에서 특히 심각하다. 필자는 최근 '과학문화'지에 기고한 '과학 저널리즘의 실종'이라는 글을 쓰면서 '실종'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느라 퍽 이나 고심을 했었다. 필자만의 편견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과거 과학보도에 종사했던 주위 몇몇 분들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필자의 생각과 거의 일치해 '실종'이라는 낱말을 쓰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21세기는 지식정보 사회이다. 지식과 정보가 곧 사회적인 부가 되고 크게는 국가적인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사회이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는 지식과 정보의 샘이다. 이처럼 중요성이 더해가는 과학기술 활동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과학 저널리즘'이 한국사회에서는 발전은 커녕 '실종'이라는 단어가 사용 될 정도로 뒷걸음을 치고 있으니 보통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과학기술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하려고 한다. 먼저 '과학 저널리즘' 입장에서 한국의 과학보도 실태를 논하고 두 번째로 과학보도 공급자 입장에서 활성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 과학보도의 실태

한국에서 과학보도(Science Reporting)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58년 전후이다. 한국일보가 창간되면서 현대적 신문제작기법이 도입되고 선진 외국에서 연수를 다녀온 언론인들이 귀국하면서 과학보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된 이후이다. 특히 한국일보는 과학부를 신설하고 과학뉴스를 보도해 한국언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과학보도가 전성기를 이룬 것은 60년대 중반이다.


1959년 소련의 스푸트닉 인공위성이 발사된 이후 촉발된 미소간의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1966년 KIST 1967년 과학기술처가 설립되는 등 과학기술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연일 과학뉴스가 쏟아져 나와 과학보도의 중요성 부각되었던 것이다.


1965년을 전후해서 신문 방송 등 주요 매스미디어들은 다투어 과학기술부를 마련하고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한 과학전문기자를 배치했다. 당시 과학보도 활동을 보면 미소간의 유인우주 개빌 뉴스가 1주일에 2-3회씩 1면 기사로 보도되고 KIST 설립 이후 유치 과학자에 대한 뉴스가 주요 관심사가 되었었다. 주요 신문 방송들은 과학부에 3-4명의 기자를 배치, 과학기술, 의학, 환경 등 과학에 관한 스트레이트 뉴스 외에 주 2-3면에 걸친 과학․의학 면을 제작했다. 당시 일간신문의 경우 일 12면 체제에서 2-3면의 과학면 할당은 오늘날 일 46면 체제에서 생각하면 상당한 지면 할애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과학보도 체제는 69년 미국의 달 탐사 이후 우주개발이 수그러들고 70년대 2차에 걸친 에너지 쇼크로 다소 침체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80년대까지 한국과학기자협회 전신인 한국과학기자클럽이 창설될 정도로 유지됐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IMF를 겪으면서 과학부라는 단위 보도체계가 거의 무너진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가 한국과학기자협회 홈페이지에 등록된 회원에 대해 조사한 결과, 경제지나 일부 방송을 제외하고는 과학부라는 독립적인 보도체계를 갖춘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동아일보의 경우 사이언스 동아로 대체).

과학담당 기자의 배치에서 특기할 사항은 대다수가 경제부 또는 산업부에 소속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을 경제개발 도구의 하나로 인식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80년대까지는 과학보도는 독립적인 보도체제가 마련되지 못한 곳에서는 문화부 등에 배치되어 과학활동을 문화적인 어프로치를 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상당한 가치를 지닌 과학뉴스들이 경제면의 한 구석에 사장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보도체계 뿐만 아니라 기자의 전문성 또한 문제이다. 80년대까지 종합일간 신문의 경우 필요에 따라 가급적 이공계 전공자를 따로 뽑아 과학담당 기자로 배치했으나 최근에는 초년급 일반기자를 과학담당에 배치하고 있다는 한국과학기자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일반기자들이 과학분야를 커버하다 보니 대개 2-3년 과학기술을 알만한 때가 되면 자리를 바꾸어 전문적인 과학보도가 되지 못 한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일간 신문들은 과학특집을 외부 과학기술자에 의존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저널리즘이 더욱 위축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과학자들이 직접 미디어 제작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분야에 대한 활동상을 직접 대중에게 알리는 것은 미디어의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이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과학의 대중화에 나서는 것과 과학 저널리즘과는 다르다. 저널리즘의 기능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의제설정(Agenda Setting)기능이 있다. 세상의 일 가운데 중요한 일을 구분하는 기능이다. 과학보도에서 외부필자의 대체로 이러한 의제설정 기능이 약화된다면 이것 또한 문제이다.


■ 뒷걸음질 과학보도

앞서 보았듯이 과학보도가 날이 갈수록 뒷걸음질을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과학보도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적은 까닭이다. 어느 나라나 과학하면 '어려운 것' 또는 '골치 아픈 것'으로 치부해서 외면하는 경향이 있지만 특히 한국사회에서 이공계 기피현상이 말해주듯 과학외면 풍조가 심각한 상태이다. 게다가 한국의 매스미디어 사이에서는 상업주의 선정주의가 판을 쳐 '과학외면' 현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생각된다.


뉴스의 정의를 보자면 사회에서 일어난 현상 가운데에서 중요한 의제를 선택하고 그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현실규정(reality defining)을 거친'재구성된 현실'(reconstructed reality)이다. 따라서 뉴스란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미디어들이 재구성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인 것이다.(Lippman, Public opinion) 그래서 뉴스는 사실과 소설의 중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 과정에서 동원되는 것이 소위 뉴스가치(news value)이다. 뉴스가치는 국제적으로 거의 같지만 문화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참고로 한국편집기자회가 정한 뉴스가치를 소개하면, ‘시의성’, ‘근접성’, ‘저명성’, ‘영향성’, ‘신기성’, ‘인간성’, ‘사회성’, ‘기록성’, ‘국제성’, ‘인간적 흥미’ 등 이다. 이 가운데 한국 미디어들이 가치측정에 가장 중시하는 것은 영향성이라는 경향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다시 말해 사건이나 현상의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거나 영향을 받는 정보를 우선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신문들은 역사성이나 기록성 보다는 갈등구조를 선호한다는 얘기이다. 한국 신문들이 '투쟁적' 성격을 띄우는 것은 한국의 초기 신문들이 거의 독립투사들에 의해 운영된 전통이 이어 내려온 탓 이라고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의 미디어들이 난해하고 또 독자도 없는 과학보도에 가치를 적게 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필자는 80년대 과학부장을 거쳐 사회부장을 역임한 적이 있는데 어느날 한국통신의 초석으로 평가되는 TDX를 개발했다는 뉴스가 들어왔었다. 그 날 별다른 뉴스가 없어 한국이 세계에서 몇 번째 전자교환기 생산국이 된다는 이 뉴스를 톱기사로 지면을 제작했다.. 필자는 이 뉴스를 톱으로 올리고 나서 사내 외에 거친 항의를 받아야 했다. 읽히지 않은 기사를 너무 키웠다는 비판들이었다.


필자는 당시 한일언론간부 워크샵에 참가했다가 과학보도에 대한 한일간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당시 아사히 신문에서 사회부장을 맡고 있던 하라타(平田) 부장과 친하게 지냈었다. 얘기 끝에 그와 필자가 똑같이 과학부장 출신이란 점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언론계에서는 필자가 사회부장에 발탁되자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과학기자 출신이 어떻게 사회부장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연한 인사'라는 대답이었다. 일본 언론계에서는 사회데스크가 되려면 아침 저녁으로 시민생활에 변혁을 주는 첨단기술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과학기자들이 사회부장에 발탁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미디어만해도 이처럼 과학보도를 중시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도토리 밥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두번째로 과학보도가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한국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지적 저능 현상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회는 오랜 군사문화의 영향 탓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합리' 보다는 '큰 목소리'나 '주먹구구'가 통하는 사회이다. 서울대 박성관 교수(언론정보학)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사회에는 지식에 관한 두 가지의 상반적인 신화들이 통용되어 사회 생산성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이 통용되는가 하면 '아는 것이 병'이라는 정반대의 격언이 풍미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지식이 쌓이면 사회적인 생산성이 늘어나지만 한국에서는 지식이 어느 정도 쌓이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지는 전형적인 '아는 게 병'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언론계 내부에서 더욱 심각하다. 언론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보도기사 가운데 39%가 기사 1건 당 평균 1.73건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조사로 미루어 보면 매일 보도되고 있는 기사 10건 중 4건이 오보이고 이들 기사 1건 당 평균 2개 이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전문지식이 필요한 과학기술 보도에서 오류율은 이보다 더욱 크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처럼 오보가 춤을 추고 있은 것은 한마디로 미디어들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가를 짐작케 한다.

이런 정확도 외에도 한국언론에서는 '떼거리 저널리즘' '하이에나 저널리즘' 등 선정적인 추측보도가 난무하고 자사 이기주의 등과 같은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이다.(김정기 한국외대 한국신문의 보도특성) 이런 환경에서 과학보도가 상위 뉴스가치로 선택되기 어려운 것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지적 할 수 있는 것이 모두에 말했듯이 기자의 전문성 부족이다. 이러한 전문성 부족은 과학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란 생각이다. 필자도 참여했던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 기자들의 만족도 조사에서 '지식 부족' 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자가 자신이 쓰고 있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를 못하니 자연 기사는 난해해지고 그 결과 독자들이 외면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인상이다. 전문성 부족은 기사의 기획이나 선택에서도 크나 큰 장애요소이다.

필자가 문화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시에 당시 한림대 교수로 계셨던 송상용 교수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영국의 과학사학자 조셉 니드햄 사망기사가 국내 신문에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며 한국신문들의 무식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신문을 들추어 보니 그 곳 신문들은 니드햄의 사망소식을 크게 취급한 것을 보고 낯이 뜨거움을 느꼈었다. 과학담당 기자가 중국과학사를 개척한 니드햄의 이름조차 모르니 그의 사망이 뉴스로 선택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최근에 국내신문에서 보지도 못했던 한국 과학뉴스를 외지에서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국 미디어들이 전문성 부족으로 놓쳐 버린 과학뉴스를 외신이 잡아내고 있는 것이다.

전문성 외에도 과학보도체계의 붕괴도 과학보도 부진의 큰 요인이다. 미디어에서 뉴스가 채택되는데는 소위 Gate Keeping System을 거쳐야 한다. 편집의 게이트 키핑 시스템은 어느 학자가 언급했듯이 '미디어 내부의 권력투쟁'과정이다. 가뜩이나 약자 편에 있은 과학보도가 단위부서로 존재하지 못하니 게이트 키핑 과정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 활성화 방안

이처럼 한국 매스미디어의 열악한 과학보도를 활성화하려면 우선 매스미디어 종사자의 의식구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미디어에 영향을 많이 주는 발행인이나 고위 간부들에 대한 과학 마인드를 심어 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미국 AAAS 등에서 주최한 워크샵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과학을 보는 눈을 키우는데 퍽이나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현재 과학문화재단이 시행하고 있는 과학보도 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같이 특정한 미디어에만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본다. 이 보다는 전 미디어를 대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심층보도를 개발하는데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과학심층보도 현상을 한다면 국민의 과학에 대한 관심도도 높이고 과학 저널리스트를 길러내는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세 번째로 과학보도 공급체제의 구축도 필요하다. 80년대 영국대사관은 영국산업뉴스를 발행 한국에 영국의 과학기술을 알리는데 톡톡히 재미를 본 적이 있다. 이처럼 미디어지원센터를 구축, 흥미롭고 가치 있는 과학보도 자료를 공급해준다면 과학보도 활성화에 보탬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국민 홍보를 외면하고 있는 과학기술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 미국 등 외국에서는 연구비의 일정액을 홍보에 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는 국민의 지지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한국 과학기술 정책에는 이런 국민 지지를 이끌어 내는 제도도 없는데다가 일부에서는 언론기피증 마저 있는 실정이다. 정부 정책에도 대국민 홍보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을 해야 과학문화도 정착하고 과학보도 또한 활성화 될 것이다. 미국 물리학회(American Institute of Physics)가 70년대 정한 다음과 같은 과학 대중화 가이드 라인은 한국 과학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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