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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성탄절을 앞두고 지난 10일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Night at the Museum)’에서는 매일 밤 전시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거대한 공룡에서부터 각종 맹수들, 심지어는 원시인, 미이라 등 3천200만점의 전시물들이 살아서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신참 야간 경비원을 공격하는데 만들어낸 영화 속의 이야기들을 첨단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통해 마치 진짜처럼 생생하게 재현해내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미국 뉴욕을 찾아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하게 되면 영화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전부 만들어낸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박물관은 엄청난 크기의 공룡을 실제로 재현하는 것은 물론 세계 각국으로부터 고대 자료들을 매입하기도 하고, 박물관 측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박제 기술을 통해 엄청난 양의 전시물들을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센트럴파크 77번가를 통해 박물관 1층을 들어서면 인디언을 태운 거대한 카누가 눈에 들어온다. 이 카누는 캐나다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퀸 샤를로트(Queen Sharlotte) 섬에 사는 인디언들에게 사들인 것이다. 거대한 삼목나무를 파서 폭 2.4m, 길이 19.7m의 선체를 만들었는데 천장에 매달려 넓은 1층 입구 홀을 거의 다 채우고 있다.
1층에 있는 바다와 어류(Ocean Life and Biology of Fishes) 전시관에 들어가면 관람객들은 더 큰 놀라움에 빠지게 된다. 홀 오른쪽 천장에는 몸 길이 27.4m의 긴수염흰고래가 금방이라도 다이빙하려는 자세로 매달려 있는데 이 고래는 1925년 남조지아 섬 근해에서 잡은 몸무게 150톤의 암고래라는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바다와 어류 전시관을 지나 북미 포유동물관(North Americal Mammals)에 들어가면 알래스카 갈색곰, 그리즈리곰, 들소, 물소, 큰사슴, 오소리, 다람쥐 등이 전시돼 있다. 마치 살아 있는 동물들이 관람객들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 같은 분위기는 2층, 3층, 4층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전시실을 모두 돌아볼 때까지 계속해 이어져 나간다.
1869년 미국자연사박물관이 문을 연 이래 수많은 전문 인력을 동원, 갈고 닦아온 전시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철저한 학술적인 근거, 뛰어난 박제기술,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큐레이터와 연구원들을 초빙해 이루어낸 관람객과 전시물과의 교감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사례로 바다와 어류 전시관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긴수염고래는 해부학적으로 정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일자 2000년대 들어서면서 2년여 동안 엄밀한 수정작업을 거쳤다. 파란 고래 등 700여 점의 동물들도 학술적인 검증에 의해 수정작업을 거쳤거나 진행 중이다.
미국자연사박물관이 세계적인 자연사박물관 대열에 서게 된 이유를 들자면 3천200만점의 전시물들이 모두 철저한 학술적인 검증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박물관 측은 70여 명의 박사진을 포함한 200여 명의 연구원들을 학술검증을 위해 매년 100여 회에 걸쳐 현지 답사여행을 보내고 있다.
지난 100여 년간 꾸준히 발전시켜온 디오라마(diorama, 투시화) 방식의 전시기법 역시 미국자연사박물관의 입지를 튼튼하게 하고 있는 요인 중의 하나다.
디오라마란 주위 환경이나 배경을 그림으로 하고, 모형 역시 축소 모형으로 해서 전시물들을 살아 있는 모습으로 재현하는 기술이다. 최근 조명기술이 발전하면서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등에서 이 디오라마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디오라마 기법에 있어서는 미국자연사박물관이 다른 어느 박물관보다 앞서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물관 측의 주장을 신빙성 있게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 유리벽면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전시물이다. 언뜻 보면 유리벽면 속에서 각각의 자연들이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포효하는 사자, 가슴을 두드리는 고릴라, 비상하는 독수리 등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재현되고 있다.
박물관 측은 이 디오라마 기술을 “예술과 과학이 결합된 걸작품”이란 말로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이 설립된 1869년 이후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협력을 통해 이 디오라마 기술을 발전시켜오고 있다”는 것.
영화나 사진기술, 그리고 최근의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디오라마에 대한 위협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명을 재현하는 차원에서 삼차원적인 디오라마 표현기법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자연사박물관을 찾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디오라마 기법이 인기를 끌고 있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당초 뉴욕 자연사박물관이 설립될 당시 많은 사람들은 재정적인 문제를 내세워 박물관 설립을 반대했었다. 그러나 자연사 학자인 알버트 빅모어(Albert. S. Bickmore) 씨의 “자연과학을 대중화하자”는 주장이 정부와 시민 모두에게 받아들여져 박물관 건립이 이루어진다.
이어 박물관을 통해 자연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 시민과 정부, 그리고 학자 등 관계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되는데 시민들을 중심으로 약 100년 동안 모금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탐험조사나 전시실의 증축이 이루어지고 현재와 같은 거대한 박물관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 모두 자연을 박물관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관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디오라마다. 첨단 매스 미디어가 부재한 20세기 중반까지 뉴욕 자연사박물관의 디오라마는 뉴욕 시민들은 물론 전 세계 과학 애호가들에게 있어 과거를 바라볼 수 있었던 환상의 세계였다고 할 수 있었다.
- 뉴욕 =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hanmail.net
- 저작권자 2006-12-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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