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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고 있듯이 다라니경을 설명할 때마다 ‘우리나라가 제작하고 보유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라는 수식어는 항상 따라다닌다. 또한 인쇄 상태와 경문의 서체는 우리나라가 누구보다 뛰어난 목판인쇄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신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려는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아찔함이 느껴져 다시 발길을 돌린다. 추정된 다라니경의 제작 연도는 8세기 초, 현재까지 대략 1200년 전, 세계 최고령의 목판인쇄물이니 그렇기도 하겠다만, 문제는 다라니경의 재질이 ‘종이’라는 데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200년이면 웬만한 금속조각도 삭아버려 가루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것도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고이고이 소중히 모셔 보관해온 것도 아니라, 돌덩어리 탑 안의 금속상자 속에서 1200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고스란히 버텨왔다는 말이 아닌가! 시간의 순리를 역행해 1200년을 버텨온 다라니경의 강인한 생명력의 비밀이 과연 무엇인지 뒷조사를 해볼 가치가 있을 법하다.
식물 섬유의 운명, 그리고 한지(韓紙, Korean paper)
쉽게 말하면 식물로부터 셀룰로오스 섬유를 뽑아내어 물에 풀어 놓은 후 건져 얇게 펴 말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짐승의 가죽을 부드럽게 하여 만든 양피지(parchment)나 풀의 줄기에 압력을 가해 얇게 붙인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와 같은 것들은 모양과 용도가 같아도 종이라고 할 수 없다. 현대에는 여러 가지 합성 섬유를 재료로 종이와 같은 용도로 만들어 사용기도 한다. 하지만 종이의 정의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식물의 섬유를 원료로 한 것'이다.
세균, 곰팡이, 벌레, 습도 등등, 생명이 떠나버린 식물섬유를 위협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고 강력하여 아름드리 나무라도 자연 속에서 썩어 흙이 되어 버리는 데는 30년도 체 걸리지 않는다. 여러 가지 공정과 화학처리를 거쳐 순수한 셀룰로오스 섬유만을 뽑아내 말려 놓았다 해도 종이 역시 이런 ‘식물 섬유의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 할 게 뻔하다.
이렇듯 종이는 천성적으로 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듯이 석가탑 속의 다라니경은 1200년의 세월을 버텨내었다. 그리고 다라니경이 가진 생명력의 비밀은 다라니경의 재질이 보통 종이가 아닌, 닥나무로 만든 우리나라 전통 한지(韓紙, Korean paper)였다는 것에 있다.
그 전에는 단지 종이, 조히, 창호지, 닥종이 등으로 불렸을 뿐이다. 한지는 서양문물이 유입되어 우리의 문화 환경이 바뀌면서 새롭게 생성된 언어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양종이라는 의미의 양지(洋紙)와 구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통상적으로 쓰이는 한지의 의미는 ‘기계로 생산한 것이 아닌 수공예적 가치를 지닌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알맞을 듯싶다.
대략적인 한지 제조 과정은 [닥나무 수확 -> 껍질을 벗겨 손질 -> 잿물에 넣어 삶기 -> 세척, 일광표백 -> 방망이로 두들겨 풀어주기 -> 물에 닥풀과 함께 섬유를 풀어주기 -> 종이뜨기 -> 물기 빼기, 말리기 -> 여러 장을 겹쳐 두드려 뒷손질 해주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줄이고 줄여 간략하게 만든 과정이 이만큼이다.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고...’ 아흔 아홉 번의 손길을 거친 후 마지막 한 사람이 백 번째로 만지다고 하여 옛날에는 한지를 백지(百紙)라고도 불렀다. 이렇듯 한지의 제작과정은 하나하나가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1000년을 버티는 생명력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참고자료>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지 - 현암사
겨레과학인 우리공예 - 민속원
전통과학기술 조사연구(3) - 국립중앙과학관
- 꿈꾸는 과학 윤나오 blue-feather@hanmail.net
- 저작권자 2006-09-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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