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PC 사용자 환경의 변화는 짧은 시간에 급격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지금은 전국 어디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을 비롯하여 입력 장치인 마우스, 100G 이상의 하드디스크 등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의 초서버급 컴퓨팅 환경이었다.
필자가 처음 사용했던 하드디스크는 1990년 구입한 20메가짜리였다. 지금은 그보다 몇 천 배의 저장공간을 제공하는 하드디스크를 사용하고 있다. 당시 개인 PC에 100G짜리 하드디스크가 장착될 날이 오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PC의 고사양화는 윈도우 운영체제의 등장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EXT 기반의 DOS 시절에는 고사양 컴퓨터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20메가 하드디스크를 다 채우기에도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MS사의 Windows 3.1이 비록 DOS 위에 깔린 불완전한 OS였다고 하더라도, 많은 명령어를 기억해야만 하는 불편한 인터페이스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PC의 대중화에 초석을 다졌고, 그 후로 윈도우 95는 손쉬운 GUI 환경을 앞세워 더욱 편리해졌으며 그만큼 고급 사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OS의 GUI 환경이 매킨토시에서 이미 제공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일부 전문가들의 영역이었고 윈도우95는 PC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서 국산 소프트웨어는 재빠른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한때 각광을 받았던 많은 국산 소프트웨어들이 사라지게 된 계기가 결국 윈도우95의 등장과 맞물려 있음에 반해 국내 IT관련 시장을 급격하게 성장시킨 계기이기도 하니 아이러니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국산 소프트웨어가 절실히 필요했던 이유
‘아래아 한글’, ‘이야기’, ‘한메 타자교실’, ‘V3’ 등은 많은 사용자들에게 사랑 받았던 국산 소프트웨어의 대표주자들이다. 당시 사용자들의 가장 큰 불편은 바로 한글이었다. 일반인들도 쉽게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영어로만 이루어진 프로그램이 아닌 한글을 똑똑하게 구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글만의 독특한 입력체계와 출력, 사용 편이성 등을 많은 사용자들이 필요로 했고,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들은 자신들만의 개발력을 무기로 외국산 프로그램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갔다.
비록 개발의 근간에는 외국산 소프트웨어 개발 툴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어권 나라가 아닌 국내에서의 이러한 한글 구현은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당시 소프트웨어 관련 사업이 실질적으로 큰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소수의 개발자들로 이루어진 벤처에서 만들어낸 성과는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과 외국산 소프트웨어의 독점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한글 입력 체계는 개발의 편리성을 위해 일부 한글표기를 포기한 완성형과 한글의 독창성을 그대로 살려 모든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조합형으로 나뉘어 통일화되지 못했는데, 외국산 소프트웨어는 개발의 편리성을 앞세운 완성형을 선호한 반면, 국내 개발자들은 조합형 구현방식을 택하여 많은 사용자들에게 호응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그러한 서적이 별로 없지만 90년대 초, 중반에 개발자들이 애용한 컴퓨터 관련 서적 중 많은 수가 올바른 한글 구현이었음을 감안해보면 그러한 호응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산 소프트웨어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윈도우 OS의 본격적인 보급에 따라 그에 맞는 프로그램 버전업이 이루어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소프트웨어들은 그러한 환경변화에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윈도우 95의 등장과 국산 소프트웨어의 몰락
MS사의 윈도우 95가 처음 등장했을 때 반응은 다양했다. 새로운 윈도우 버전이 등장할 때마다 지금도 갖가지 오류와 악평, 그리고 찬사가 섞여서 쏟아지듯이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편리하게 만들어졌다는 평가부터 오류 투성이라는 악평까지. 개인 컴퓨터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이미 오래 전부터 GUI 환경을 제공했던 매킨토시의 OS와 비교되며 그리 환영 받지 못했다.
또한 윈도우95를 장착한 PC에서 일반 사용자들이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기존 소프트웨어들이 윈도우95 출시에 맞추어 업그레이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작해야 번들로 장착된 지뢰 찾기나 메모장, 그리고 편리한 탐색기 등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기존의 프로그램은 대부분 DOS창을 띄워 다시 구동시켜야 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하지만 윈도우95가 기존의 DOS나 윈도우 3.1과 크게 차별화가 되었던 것은 OS가 컴퓨터 환경을 장악했다는 것이다. 즉 DOS 시절에는 프로그램마다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했고 소프트웨어가 OS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DOS에서 제공하지 못하던 다양한 기능들을 소프트웨어가 자체적으로 장착하여 구현하는 방식이 많았던 데 반해, 윈도우 환경은 모든 소프트웨어들이 OS에 종속되도록 만들어 버렸다.
윈도우의 불완전한 상태나 때때로 발생하는 원인 모를 에러(일명 블루 스크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반 사용자들은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TEXT 환경보다 마우스로 클릭만 하면 되는 윈도우 환경에 쉽게 익숙해졌고, PC가 대중화됨에 따라 곧 많은 윈도우용 소프트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국산 소프트웨어는 그러한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윈도우95를 깔아놓고 DOS창을 띄워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그런 과정에서의 불편함과 버그 등은 점점 국산 소프트웨어가 사용자들에게서 멀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윈도우 95의 출시 후 외국산 소프트웨어들은 포토샵을 비롯한 그래픽 관련 툴,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한 브라우저, 오피스 등의 통합 사무용 프로그램 등 윈도우에서 사용이 가능한 소프트웨어들을 재빠르게 사용자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점점 국산 소프트웨어의 설 자리를 잠식해갔다. 뒤늦은 윈도우 환경으로의 업그레이드는 이미 점유율 면에서 앞서간 외국산 소프트웨어를 따라잡기 힘들었고,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안철수 연구소의 ‘V3’는 예외적으로 지속적인 성장과 기업으로서의 수익창출에 성공하였는데 이는 백신 프로그램의 특성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V3 역시 윈도우 95 출시 이후 즉시 업그레이드 되지 않았는데 컴퓨터 바이러스를 체크하기 위해서 DOS창을 띄우는 정도의 수고는 사용자들이 충분히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또한 V3는 DOS창으로 실행을 하여도 윈도우OS와 충돌이 발생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소프트웨어는 달랐다. 윈도우 환경에 제대로 업그레이드 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는 문제를 발생시킬 소지가 다분했다. 사용자가 참으며 사용할 만큼 절대적인 위치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컴퓨터 사용자들 또한 일반 구매자들과 동일하게 한번 익숙해진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며, 반대로 어떤 이유로든지 한번 멀리하게 된 소프트웨어를 다시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국산이라는 감성적인 측면과 완성도 높은 기술력을 동시에 보유했던 국산 소프트웨어들이 결국 급격한 OS 환경변화의 능동적인 대처에 서투른 나머지 많은 사용자들을 후발 외국산 소프트웨어에게 넘겨주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국산 소프트웨어 몰락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분명한 원인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단순히 국산이라는 이유로 사용을 권장하던 시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고 볼 수 있다.
- 김상호 웹기획자
- 저작권자 2006-09-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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