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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꿈꾸는 과학 3기 이지현
2006-07-06

우리 조상들이 독자적으로 만든 선박 ‘한선’ U자형의 배를 만들어 안정감 확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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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하루 종일 햇볕은 뜨겁게 내리쬐고 습도가 높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배어나온다. 온 몸이 끈적끈적, 물처럼 녹아내릴 것만 같다. 불쾌감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을 즈음 책상에서 공부를 하던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드넓은 바다, 새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그곳에서 풍덩풍덩 물놀이를 하고 있는 나. 어느새 흐뭇해진다.


‘지도가 어디 있더라...’ 나는 이 상상을 깰세라 허둥지둥 우리나라 지도를 찾아 펼쳐들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물놀이 할 곳 참 많구나. 더위도 잊을 겸, 잠시 책을 덮고 상상을 좀더 이어가 볼까? 지도의 모습이 새삼 재미있게 느껴졌다. 특히 복잡하고 세세하게 표시되어 있는 육지와 그와는 반대로 이름과 경도, 위도, 몇몇 섬들만이 나타나 있는 간단하고 드넓은 바다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지도를 통해 바라본 육지와 바다의 대조. 예부터 조상들은 땅 위에는 길을 깔고 건물을 짓는 등 개발을 통해 그들의 터전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바다는 소금쟁이가 아니고서야 디디고 설 수 없는 곳이다. 바다! 참 시원하기는 하지만, 이곳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놀이뿐만 아니라 바다를 이용할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러려면 바다를 걸을 수 있는 요술 신발이 필요하다.


그 요술신발은 다름 아닌 배다. 우리 조상들도 그들 나름대로 바다에 적응하고 바다를 이용하고자 하였다. 배는 사람들을 바다에 발 디디고 설 수 있도록 하였다. 배를 통해 바다는 이제 물놀이 장소를 넘어 새로운 활동의 무대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바다에서 식량과 자원을 얻을 수 있었고 바다를 통해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할 수도 있었다. 바로 오늘 과학문화 유산의 주제는 조상들의 배이다.


옛날의 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작년 9월, 경남 창녕 비봉리 고분을 발굴하던 조사팀은 흥분을 감추지 못할 첫 요술신발을 찾아냈다. 최대 길이 3m10㎝, 최대 너비 60㎝, 판재 두께 2.0~5.0㎝에 이르는 신석기시대의 통나무배를 찾아낸 것이다. 이 배는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배인 안압지 배(8세기 통일신라시대 유물)보다도 오래된 것이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이미 조상들은 물에서의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유물을 발굴한 조사팀은 이 배가 지름 2m 가량의 소나무를 이용해 만들어 졌으며, 불에 그슬린 자국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단단한 나무자재를 불에 그슬려 재질을 유연하게 한 뒤 석기로 자르거나 깎고 갈돌로 표면을 다듬어 배를 만들었을 것이라 추정하였다.


통나무배가 발굴되기 전에, 한국의 전통선박인 ‘한선(韓船)’의 기원이 되는 배의 모형을 추측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이때 통나무들을 엮어서 만든 떼배와 통나무를 반으로 쪼갠 후 가운데 부분을 도끼 등의 연장으로 파서 만든 통나무배가 강력한 후보였다. 그런데 한선 연구의 대가 중 한 분인 김재근 씨는 통나무배에 손을 들어 주었다. 그는 1970~1980년대에 출토된 배인 안압지출토선, 완도발굴선, 목포달리도선(목포시에 속하는 달리도에서 출토)의 모양을 관찰하고 이러한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배들의 어떤 점이 통나무배가 우리 배의 기원이라는 것인지 알아보기 전에, 통나무배가 한선으로 발달하기까지에는 어떤 과정이 있었을지 우선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선의 기원이 된 통나무배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통나무배는 지름이 비교적 큰 통나무를 반으로 자른 후 그 속을 파내어 이용한 배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복이 되기 쉬웠고 너무 좁아서 사람이나 짐을 싣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조상들은 통나무를 반으로 자른 후 속을 파내고 그것을 다시 반으로 잘랐다. 즉 ‘└’모양과 ‘┘’모양의 긴 나무토막을 만든 것이다. 그들은 배의 면적을 넓히고 배의 전복을 막기 위해 두 개의 꺾어진 모양의 나무토막 사이에 평평한 나무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하나, 두 개로 시작했을 것이고 필요에 따라 그 개수는 조절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또 문제가 있다. 배의 깊이다. 깊이가 낮은 것을 보완하기 위해 조상들은 양 옆(현)에 판자(외판)를 붙여 올렸다. 그 결과 바닥을 이루는 밑판과 양 현을 이루는 외판, 앞 뒤를 막는 널빤지로 이루어진 한선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이제 통나무배는 구조선(판대기배)의 모양으로 한 단계 변화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배들은 이러한 발달 과정을 그대로 밟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안압지출토선은 ‘└’모양과 ‘┘’모양의 나무토막 사이에 나무판 하나를 이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은 통나무배의 다음 단계인 배 모양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또 완도발굴선은 안압지출토선의 다음 단계의 배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배는 반구조선이라 불리는데 저판과 외판을 연결하는 판의 모양이 ‘└’모양과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저판들 사이를 연결하는 가새, 양 현을 벌어지지 않게 해주고 바닷물의 압력으로 안으로 허물어지지도 않게 해주는 가룡(加龍), 외판을 연결하는 피새까지 전부 한선의 특징이다.


만약 한선의 뿌리가 떼배였다면 어떠하였을까? 아마도 꺾인 모양의 나무토막을 쓰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으리라. 이 또한 한선이 통나무배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또 다른 증거로는 목포달리도선이 있다. 목포달리도선은 반구조선에서 좀 더 발달한 구조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저판과 외판이 온전히 존재하고 가새, 피새, 가룡까지 존재하여 전형적인 한선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증거들로 김재근 씨는 일찍이 한선이 통나무배에서 유래할 것이라 주장하였는데, 작년에 비봉리 고분에서 실제로 신석기시대의 통나무배가 출토되면서 이 통나무배 유래설이 완벽히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화제를 바꾸어 우리나라 배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자. 통나무배에서 시작하여 만들어진 우리의 한선. 1970년대가 지나면서 우리의 배가 비교적 다른 나라의 배의 구조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었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한선의 우수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배는 서양이나 동양권의 다른 나라의 배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몇 가지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지형과 힘의 역학이 고려된 것으로 우리 과학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U자형의 배를 만들어 물의 깊이가 얕아도 배가 바닥에 걸리지 않게 하였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남해와 서해의 연안지역에서는 썰물 때에 물이 서서히 빠지면서 뭍 가까이의 배들이 바닥에 안정적으로 착지하였다가 밀물이 되면 다시 물에 뜰 수 있었다. 또한 조수 간만의 차가 크지 않은 동해에서도 배를 바닷가에 안정적으로 놓아두기 위해서는 배의 밑바닥이 튼튼하고 평평한 U자형이 유리했다.


이것은 서양선과 비교되는 한선의 특징이다. 우리의 배는 선형이 대부분 U자형 모양을 이루었고 이는 평저형(平底型)이라고 불렸다. 이 평저형 모양을 가진 배를 평저선이라고 하는데, 반면 서양의 배는 V자 모양의 선형을 갖는 첨저선(尖底船)이다.



우리의 평저선과 서양의 첨저선의 차이는 배를 만드는 기본 틀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났다. 우선 서양의 배는 용골이라는 두꺼운 나무토막을 밑에 놓고 늑골재라 부르는 나무판을 여러 개 세워서 골격을 만든 다음, 그 표면에 차례로 외판을 붙여 올라가고 갑판을 붙인다. 그에 비해 평저선은 용골과 늑골을 두지 않고 외판재를 서로 단단하게 붙여서 외판보다 두꺼운 저판과 외판으로 이루어진 배의 껍질을 꾸미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서양의 배는 V자 모양이 되고 한선을 비롯한 동양의 배는 U자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U자형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바로 외판을 U자형으로 연결한 채로 물에 띄우면 물의 압력 때문에 양 현이 안쪽으로 허물어질 수도 있고 바깥으로 양 현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제거하기 위해서 한선은 가룡과 멍에(가목)라는 구조물을 이용하였다. 즉 양 현의 외판재마다 구멍을 뚫어 긴 막대, 가룡을 꽂아 버팀대 역할을 하게 하였다. 또한 외판의 제일 위층에 구멍을 뚫어 양 현 밖으로 멍에를 나오게 하였고 매우 튼튼하도록 각재(角材)를 이용하였다. 이 멍에는 배의 대들보 구실을 하였다. 따라서 U자형의 배는 그 형태에도 불구하고 여러 부재료(가룡, 멍에)를 통해 튼튼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선의 외판을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서 우리 조상들은 또한 독특한 이음 방식을 사용하였다. 외판의 연결방식은 외판을 서로 맞대어 붙이는 카벨(carvel) 이음방식과 외판재를 서로 겹쳐 붙이는 클링커(clinker)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한선은 클링커 이음방식으로 외판을 연결하지만 외판에 턱이라 부르는 ‘ㄴ’모양의 홈을 만들어 외판을 겹쳐 붙이는 방식을 취한다. 이것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턱붙이 클링커 이음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음새를 단단하게 하는 데에는 피새라고 부르는 나무못이 사용되었다. 외판과 외판 사이를 끝이 뾰족한 나무못으로 연결한 후 밖으로 나오는 부분은 절단해 주었는데, 이러한 피새는 마치 천을 실로 꿰매듯 촘촘하게 연결해 주어 외판 사이가 더욱 단단해 질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배를 일정기간 사용한 후 개삭이라는 작업을 통해 배의 썩은 목재들을 갈아주었다. 즉, 그들은 배를 일정 기간 사용하면 선체를 모두 분리하여 썩은 나무들을 버리고 새로운 목재로 대체해 줌으로써 배를 관리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배를 만들 때 사용하는 피새와 가새 같은 못들을 나무로 사용해야 했다. 보통 못이라고 하면 철못을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나 한선에서는 철못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철못으로 배를 만들 경우 개삭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개삭 작업에서는 나무못들을 두들겨서 빼어 주고 썩은 목재를 새 목재로 갈은 후 종전의 것보다 조금 더 큰 나무못으로 다시 판들을 연결해 줌으로써 배를 오랜 기간 효율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철못은 빼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종전의 것보다 더 큰 못을 만들기에 용이하지 않았다. 게다가 철못은 녹이 슬기 쉽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개삭이라는 한선만의 독특한 수리 과정을 위해서 나무못을 이용하여 배를 만들었던 것이다.


한선의 앞판과 뒤판도 한선만의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한선의 앞판은 뱃머리 모양이 뾰족하지 않고 평면이나 곡면을 이루는 게 보통이었다. 이렇게 되면 배가 물에 떠서 앞으로 나아갈 때 생기는 물결의 모습이 예리한 ‘V’자가 되지 못하고 ‘ㄷ’자 모양이 되어 저항이 많이 생기고 배의 속도가 줄어드는 원인이 된다. 이것은 현대의 조선학적 관점에서는 단점에 해당한다. 그러나 배의 앞머리 모양은 우리 조상들의 조선 기술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배의 강도와 수명, 개삭 등의 여러 면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봐야 할 문제이다. 한선의 뒤판의 모습은 뒤로 경사되어 있는 평면의 모습을 취한다. 이렇게 위로 치솟아 경사져 있는 뒤판에는 키가 연결되어 있어 옆에서 들이치는 파도의 횡파로부터 배를 보호할 수 있었다.


지도를 보면서 하기 시작한 엉뚱한 상상. 난 지도를 덮으며 드넓은 바다를 이용하고자 했던 조상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들은 바다에서도 걸을 수 있는 요술신발을 만들어 바다를 또 다른 땅처럼 사용하였다. 바다에서 식량과 자원을 찾고 바닷길을 이용하여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의 요술신발 한선은 다른 나라의 것을 모방하지 않고 우리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의 조선 기술처럼 배를 만들기 위한 수식이 따로 있지도 않았던 그 당시에 우리 조상들만의 수식으로 만들어진 한선이기에 더욱 독특하고 우수하게 여겨진다.



※ 참고문헌


8000년 전 배 발견(기사 한겨레 2005.9.5)-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8&article_id=0000125212§ion_id=102&menu_id=102

한국의 전통선박 한선-최완기

우리의 배-김재근

한국의 배-이원식

유물의 재발견-남천우

우리 배의 역사-김재근

꿈꾸는 과학 3기 이지현
ljhlsh40@hotmail.com
저작권자 2006-07-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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