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과 유전자의 98.4%를 공유하는 계통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 연구의 세계적 권위인 제인 구달(Jane Goodall)박사는 9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연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인 구달은 어릴 때부터 동물과 자연에 대해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서학교를 졸업하고 박물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을 뿐 동물학 분야의 전문적 훈련을 받지 못했던 제인 구달이 1960년 26세의 나이에 탄자니아의 곰비국립공원에서 야생 침팬지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당시 동아프리카 초기인류의 기원에 관한 권위자였던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Louis Leakey) 박사는 영장류와 초기인류 사이에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이미 분류학과 세포분석을 통해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의 세 종류가 다른 어느 동물들보다도 인간에 가깝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리키 박사는 이들 영장류를 연구할 사람을 여성 중에서 찾고 있었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관찰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인내심과 집요함에서 앞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맨 먼저 ‘스카우트’된 여성이 바로 1957년에 아프리카로 온 영국인 제인 구달이었다. 3년 후 리키 박사는 그녀를 침팬지 연구를 위해 탄자니아로, 1966년에는 미국여성 다이안 파시(Dian Fossey)를 고릴라 연구를 위해 콩고로, 1971년에는 리투아니아계 캐나다 여성인 비루테 갈디카스(Biruté Galdikas)를 오랑우탄 연구를 위해 보르네오로 보냈다. 1972년 리키 박사의 임종 당시 ‘루이스 리키의 원숭이 여인들’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그 후 각자 자기 분야에서 현장연구가로 세계적 명성을 쌓게 된다.
이처럼 인간과 너무나 비슷한 특성을 보여주는 영장류를 연구하다보면 단순히 연구대상으로서만 바라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구달 박사는 당시 학계의 관례를 무시하고 각 침팬지에게 번호 대신에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동물행동학 연구에서 자주 논란이 되듯이, 연구대상과 감정적인 관계가 형성될 때 과학적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구달 박사는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일지라도 여전히 자기 아이에 대한 과학적 관찰은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의 동료과학자들 모두가 이런 접근방법에 동의했던 것 같지는 않다. “제가 대학원 공부를 하던 1960년대만 해도 동물의 마음이나 성격, 감정에 대한 연구는 학문으로 인정받지도 못했지요.”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감정을 억누르고 냉정한 이성으로만 연구한다고 좋은 과학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좋은 과학자가 되려면 먼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과학자로서의 책임이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연구가일지라도 연구대상인 동물이 멸종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면 모른 채 할 수는 없었으리라. 20세기 초에 2백만 마리에 달했던 침팬지 수는 최근에 15만 마리 이하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서식지 파괴와 관광객의 증가, 사냥과 밀렵에 의해 야생동물들이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40여 마리 밖에 남지 않았던 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해 밀렵꾼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다이안 파시 박사가 1985년 르완다에 있는 자신의 고릴라 연구센터에서 살해당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구달 박사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에게도 일정한 기본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면서 “동물도 생존권을 가지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런 목적의 일환으로 그는 1977년부터 탄자니아와 미국, 유럽 각국에 ‘야생생물 연구와 교육 및 보호를 위한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치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인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보호의 노력이 과연 얼마나 먹혀들 수 있었을까. “침팬지의 권리는 둘째 치고 인간의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면한 그는 지역개발사업에도 뛰어들게 된다. “15년 전 비행기에서 곰비국립공원을 내려다보니 공원을 제외한 주위 지역의 나무들이 온통 사라져버린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늘어나는 인구와 찌든 가난을 해결할 대책이 없이는 자연보호 또한 공염불이었다. 그는 여성들이 교육과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갖도록 도와주면서 가족계획과 건강위생교육도 함께 실시했다. 환경친화적 개발을 통해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주민들도 나무들을 그냥 내버려둘 것이고 침팬지의 서식지도 자연히 넓어지리라고 그는 관망했다.
“침팬지도 집단끼리 영역확보를 위해 싸운다는 점에서 인간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침팬지 각자는 싸우는 목적이 똑같지만, 최근 이라크 침공에서처럼 미국정부는 석유 이권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겉으로는 다른 이유로 병사들을 전쟁에 내몰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침팬지와 다르다고 봅니다.” 모인 기자들의 디지털 카메라와 노트북 컴퓨터를 가리키며 그는 덧붙였다. “인간은 이런 놀라운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지만 양심이 지켜보지 않는다면 그 똑같은 두뇌로 잔인한 대량살상을 할 방법을 만들어내기도 하지요.”
올해 69세인 구달 박사는 청소년을 위한 메시지를 부탁하자 “여러분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며, 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이사장 최영환)과 한국영장류연구소(소장 최재천 서울대 교수)의 공동초청으로 내한한 구달 박사는 11일(화요일) 오후 4시에 서울대에서 “침팬지와 나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일반대중강연을 한다. 한국과학문화재단(www.scienceall.com 02-559-3887)과 한국영장류연구소(www.iprc.or.kr 02-880-8157)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개강연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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