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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꿈꾸는 과학 이솔희
2006-06-29

뒷간은 한국의 전통생태학 연구실 배설물은 자연이자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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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뜨거운 오후, 도서관. 나는 한 무더기의 책을 대출 창구에 내려놓았다. 바코드 리더기가 쌓아놓은 책들을 한 권씩 읽어나간다. 삑삑삑.. 책 대출자를 위한 컴퓨터 화면에 내가 빌린 책의 목록이 하나 둘씩 나타난다. 목록에 나타나는 단어는 뒷간, 똥, 화장실, 똥, 뒷간....똥...똥...똥....

사서는 별 특이한 사람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순간 나는 주춤했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 나는 몸을 뒤틀어 화면을 가리려 애를 썼다. 뒤에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행여 화면을 볼까봐.


더럽고, 냄새 나고, 부끄러운 똥. 그런데 궁금해진다. 왜 나는 똥과 화장실에 대한 책을 빌리면서 그토록 당혹스러워 했을까? 생물인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하고, 소화하지 못한 남은 물질들을 배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나도, 여러분도, 그리고 우리들의 어릴 적 신화였던 ‘화장실 안 가는 선생님(?)’도 오늘 아침 화장실에서 똥을 누었을 터인데.


배설물의 더러운 이미지는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고 도시를 만들어 살게 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주 오래 전, 이동생활을 하던 원시인들은 똥을 우리처럼 더럽게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늘진 풀밭에서 향기로운 소나무 향을 맡으며 일을 치른 후(?) 유유히 사라지면 끝! 그러나 인간이 모여 살게 되면서 이것은 큰 문제가 되었다. 배설물은 자꾸자꾸 나오지만 그 배설물을 처리할 방법은 묘연했기 때문이다. 더럽고 냄새 나는 배설물은 아마도 정착생활을 하게 된 인간이 처음 맞게 된 고민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똥 누는 이를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만들도록 했다. 바로 화장실이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로마의 사람들은 이곳 화장실에서, 똥을 물로 흘려버렸다. 그들의 눈에 비춰진 똥은 ‘버리는 것’이었다. 우리 눈에서 되도록 멀리 사라지도록. 사실, 오늘날 발견할 수 있는 화려한 화장실들도 모두 기본 아이디어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더러운 똥을 상당한 양의 깨끗한 물로 쓸어버려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똥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똥은 ‘창피하고 더러운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똥은 자연의 일부인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먹을 것을 섭취한 후, 만들어낸 자연의 일부였다.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낼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생각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똥을 누는 이'가 아닌 똥을 돌려보낼 ‘자연'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뒷간이다.


자연을 향한 똥의 여정을 따라가자. 사람의 대장에서 항문으로 나온 똥은 뒷간의 구멍으로 떨어진다. 이 똥은 뒷간 밑에 만들어진 공간 안으로 떨어진다. 뒷간 아래에 똥을 받는 그릇이 있다. 사람들은 이 똥을 정기적으로 퍼내어 외양간에 깔아놓았던 짚이나 나뭇잎 두엄에 묻고 쌓아두었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이것을 파내어 텃밭에 뿌렸다.


더 편리하고 재미있는 뒷간도 있다. 바로 사찰의 뒷간이다. 일반 여염집과 달리 사찰은 주로 산의 높은 지형에 위치한다. 따라서 주변에 비탈진 지형이 많았다. 그래서 사찰의 뒷간(흔히 해우소라고 하는)은 그림과 같이 비탈 지형을 이용하여 지었다. 이렇게 하면 뒷간의 바닥은 자연스레 공중에 뜨게 된다. 스님들이 눈 똥은 이 아래 공간에 모였다. 그런데 똥이 뿌려질 텃밭은 뒷간 바로 아래에 있었다. 해우소는 사람이 똥을 정기적으로 퍼낼 필요가 없는 매우 기발한 뒷간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똥을 한동안 묵혀두었던 것. 왜 조상들은 똥을 바로 사용하지 않고 냄새 나게 쌓아두었을까? 아쉽게도 갓 눈 똥은 바로 퇴비로 쓸 수 없었다. 병원균의 감염과 똥오줌에 의한 식물의 탈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똥은 부패시키는 과정(퇴비화 과정)이 필요했다. 이것이 사람들이 똥을 쌓아 일정기간 저장했던 까닭이다..


퇴비화 과정, 즉 부패의 주인공은 호기성 미생물들이다. 이들은 산소를 이용하여 똥을 분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조상들은 부패를 담당할 호기성 미생물들이 잘 번식하도록 그들의 뒷간 환경을 적절히 조절해 주어야 했다. 이때 필요한 조건은 수분과 산소, 온도, 그리고 영양(탄질비)이다.


미생물들이 번식하기 위한 각각의 조건을 살펴보자. 먼저 똥의 수분이다. 똥이 자체적으로 가진 수분은 실제로 퇴비화 과정에서 건조되면서 40%-80% 수축한다. 그러나 수축과정을 거쳐도 수분이 너무 많으면 산소가 부족하여 호기성 미생물 대신 혐기성 미생물이 똥에 번식하게 된다. 물론 혐기성 세균도 똥을 퇴비로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산소 없이 똥을 분해하기 때문에 그 속도가 느리며, 그 과정에서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부산물을 많이 만든다. 따라서 사람들은 똥의 수분을 조절하여 호기성 미생물들이 최대한 번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음은 온도이다. 적절한 산소가 공급된다면 똥 무더기에서는 이제 호기성 미생물들이 신나게 번식하게 된다. 이들은 재빠르게 똥을 분해하고 그 부산물로 열을 방출한다. 따라서 부패가 지속될수록 똥은 계속 온도가 올라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똥에 섞여 있던 병원균과 기생충, 또는 기생충 알이 파괴된다. 결국 살아남는 것은 고온에서도 견딜 수 있는 비병원성 호기성 세균들이다(대부분 고초균 Bacillus들). 또한 똥 속의 미생물들은 생존을 위해 항생물질을 체외로 내뿜는다. 이 과정에서도 똥 속에 남아있는 병원균들을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 고마운 일을 수행할 미생물들에게 줄 먹이이다. 이 먹이는 다름 아닌 탄소를 포함한 물질들이다. 즉, 퇴비가 되기 위해서는 똥 속에 탄소가 많아야만 한다. 이것을 탄질비(C/N비)로 나타낸다. 탄질비가 클수록, 즉 똥에 포함된 질소량에 비하여 탄소의 양이 많을수록 훌륭한 퇴비가 된다. 그리고 퇴비에서 가장 훌륭한 탄질비는 30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똥 속에는 탄소가 그렇게 많지 않다. 하루에 사람은 135에서 270g의 똥을 생산한다. 그리고 똥에는 질소가 5%-7%, 인산이 3%-5.4% 칼륨이 1%-2.5% 탄소가 40%-55%를 차지한다. 즉, 탄질비가 약 5%-10% 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서양인의 똥을 분석한 것이므로 고기 대신 채식을 주로 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똥 구성 비율은 조금 다를 수는 있다. 그럼에도 식물의 세포벽에 포함된 셀룰로오스는 소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되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똥은 이 자료에 제시된 양보다 훨씬 많고 크기도 컸을 터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똥에 비하여 탄질비가 작은 것은 똥이 퇴비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한 가지 묘안을 짜내었다. 부족한 탄소를 위해 똥 속에 무언가를 섞어주는 것이다. 이를 매질이라 한다. 매질에는 주로 탄질비가 높고 분해가 잘 되는 짚이나 쌀겨, 톱밥, 혹은 부식토를 사용하였다. 똥에 매질을 섞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뒷간에서 일을 볼 때, 바닥에 떨어진 똥 위에 매질을 삽으로 부드럽게 덮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매질에 풍부한 탄소가 똥을 한 층 덮으면서 똥이 좋은 퇴비가 되도록 돕는다. 이 방법은 또한 뒷간의 고약한 냄새를 또한 없애주는 역할을 하기도 해서 일석이조!


이제 똥을 오랜 시간 동안 저장해둔다. 똥들이 부패를 마치면 질 좋은 퇴비가 된다. 이제 똥은 더 이상 똥이 아니다. 흑갈색의 향기 좋은 영양 물질이다. 조상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퇴비를 가져다 밭에 골고루 뿌려주었다. 밭의 작물들은 똥이 변한 퇴비를 이용하여 광합성을 통해 만들지 못하는 영양소들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 상상을 해보자. 퇴비를 뿌린 밭에서 가지마다 싱싱한 열매가 열린다. 사람들은 이 열매를 먹는다. 아, 이것이 바로 진정한 생태계의 순환이다.


똥을 순환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동물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흙돼지를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주도 흙돼지는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흙돼지는 제주도에서만 이용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이는 우리나라의 많은 곳에서 이용되었던 똥 처리 방법이었다. 말이 좋아 흙돼지이지 사실은 똥돼지이다. 즉, 사람의 똥을 돼지에게 간식으로(?) 주는 것이다. 돼지는 불완전하게 소화된 인간의 똥을 섭취하여 완전히 소화하고 다시 배설한다. 이때 돼지의 똥은 밭에 그냥 뿌려주어도 좋다. 흙돼지는 훌륭한 퇴비 공장인 셈이다.


똥개들도 이러한 순환에 기꺼이 참여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똥을 누면 똥개를 불러 먹게 하고 어린아이의 궁둥이를 핥게 하였다고 한다. 역시 이 과정을 통해서도 질 좋은 퇴비가 만들어졌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혜롭게 똥을 사용할 줄 알았다. 자연에서 한 발짝 멀어져 자연을 이용하려고만 했던 서양인들과 달리 그들은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의 흐름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뒷간에서 비로소 음식과 똥, 그리고 퇴비는 하나의 완성된 원을 그린다. 자연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음식물을 얻어 나온 똥을 일방적으로 버리는 오늘날의 서양식 화장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서양을 따르는 오늘날의 똥 처리 방식과 관련하여 웬델 베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마실 물에 오줌과 똥을 섞어 넣는 비싼 기술을 개발하고 그 물을 다시 마실 수 있는 물로 정화하는 더 비싼 기술을 발명한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물로 씻어 버리려고만 하는 수세식 화장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말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뒷간은 얼마나 생태적으로 완전하고 올바른 방식인가!


지혜로운 생태학자였던 우리 조상들, 그리고 그들의 생태학 연구실이었던 우리 고유의 뒷간. 시골에 갔다가 이런 뒷간을 만날라치면 냄새가 난다고 울상을 짓는 우리들의 태도도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앞으로 여러분이 뒷간에 가게 된다면, 혹은 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이제는 마냥 더러운 이미지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똥과 조상들에 대한 모독이다. 뒷간에서 똥은 자연이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똥에 관한 책을 숨기듯 가방에 넣자마자 나는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이후의 일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참고:

한국의 전통생태학/이도원/사이언스북스/

동아시아의 뒷간/김광언/민속원

똥오줌의 역사 / 마르탱 모네스티에 /문학동네

인분 핸드북 - 똥살리기 땅살리기/조셉 젠킨스/녹색평론사

자연을 꿈꾸는 뒷간/이동범/들녘

호모 토일렛/이상정/진화기획

이것이 생태학이다/Colin R. Townsend, Michael Begon, John L. Harper /월드사이언스



꿈꾸는 과학 이솔희
sll3ll@hanmail.net
저작권자 2006-06-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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