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기초·응용과학
곽수진 객원기자
2006-06-25

현실을 비꼬는 가짜 사진 강홍구 디지털 사진전 “풍경과 놀다”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19세기 중반 ‘사진’이라는 기술에 세상에 등장했을 때 미술계는 이제 그림은 끝났다며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사물을 그대로 판박이 하는 사진은 당시 풍경화나 인물화를 그리는 미술가들에게는 재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과 사진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예측이 논란이 되었다. 그런 격동의 시대를 지나 이제 사진과 회화는 서로 독립적인 예술의 갈래로서 공존의 자리를 마련한 듯 보인다. 오히려 디지털 사진기의 출현은 사진으로 예술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19세기 중반 미술계가 겪었던 논란과 비슷한 갈등과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역시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보다.



아직도 우리는 ‘사진은 곧 진실’이라고 믿는다. 비전문가인 많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카메라는 경제적이며 간편하다. 필름값을 별도로 지불하지 않아도 수백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맘에 들지 않는 사진은 다시 찍을 수 있으며, 인화의 번거로움을 거치지 않고 컴퓨터 스크린으로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약간의 ‘뽀샵질’도 우리는 진실을 왜곡한다기보다 조금 더 예쁘게 보이고자 하는 사진 속 주인공의 깜찍한 욕망 정도로 이해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진작가에게 있어 디지털카메라는 세상과 대화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디지털 사진으로 이제 작가들은 진짜 세상을 찍기도 하지만 디지털 사진의 조작을 통해(이렇게 되면 가짜 사진이 된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세상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자신을 B급 작가라고 소개하는 사진작가 강홍구의 디지털 사진전 “풍경과 놀다”가 지난 6월 9일부터 로댕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그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하나의 큰 사진을 만든다. 보통 사진을 이어 붙인다 하더라고 표시 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문외한의 눈에는 이어 붙인 티가 눈길에 턱턱 걸리는 그의 사진은 낯설 수밖에 없다. 그는 가짜 사진을 만든다고 한다. 렌즈를 통해 사물의 아름다움이나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현실을 비꼬는 진짜 같지 않는 가짜사진을 말이다.



사실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그의 디지털 사진이 어째서 가짜 사진이라고 말하는지 알 길이 없다. 간단하게 그의 그린벨트 시리즈 중 ‘논길’을 보자. 그저 평범한 농촌의 풍경이다. 사진 전면에는 논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 낮은 빌딩과 트럭들이 지평선을 가리고 있다. 사진 앞쪽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논두렁이 아니라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넒은 길이 가로 질러 있다. 길 위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걸어간다. 언뜻 보면 사진은 땅을 보러 온 사람들을 찍은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 사람들은 진짜로 그 논에 간 것이 아니다. 풍경은 풍경대로 찍고(이 풍경도 조작된 것 같은 의심이 간다), 사람들은 작가가 압구정 거리에서 찍은 사람들을 풍경 위에 얹어놓은 것이란다.



이번에 새로 소개된 ‘수련자’ 시리즈는 유쾌하다. 인형으로 분한 Tekken (철권) 게임의 전사 카즈야 미시마 (Kazuya Mishima)가 축대 담장에 가련하게 붙어 있는 장면은 씽긋 웃음까지 나온다. 디지털 판타지 세상에서 강력한 전사로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카즈야 미시마가 보안용으로 유리병을 깨 담장 위를 장식하던 그 담장 위에서 무공을 쌓고 (금강불과), PET 병을 양 옆에 세워두고 발차기를 연습하는 것(좌우낙화)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가슴이 후련해지는 웃음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빗대어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에 대한 동감의 쓴웃음이라고 해야겠다. 작가의 상상력은 아날로그 세상에서는 인형으로밖에 살 수 없는 디지털 게임의 캐릭터를 디지털 사진의 주인공으로 삼아 아날로그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진은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찍어, 보는 이가 알아서 감상하는 수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조작하고 연출된 사진에 엮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까지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수련자’시리즈와 함께 플라스틱 장난감 집을 주인공으로 한 ‘미키네 집’ 시리즈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이제까지 작가의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주요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전시는 8월 6일까지 계속된다.

곽수진 객원기자
저작권자 2006-06-25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