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기초·응용과학
꿈꾸는 과학 이솔희
2006-05-18

비를 측정하라! 위대한 그릇, 측우기 이야기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2003년 5월 첫발을 내디딘 '꿈꾸는 과학'은 과학의 대중적 글쓰기와 일러스트레이션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꿈꾸는 과학은 모두가 즐거운 과학을 이야기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꿈꾸는 과학은 다양한 과학책들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비판적 사고와 과학적 상상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또한 꾸준히 과학 글쓰기를 연습함으로써 자신만의 글쓰기 스타일을 구축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퍼져나가는 꿈꾸는 과학의 소망이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전하고 이러한 즐거움들이 모여 건전한 과학문화를 만들어 나아가길 희망합니다!

[편집자 註]


하늘이 어두워진다. 두꺼운 구름 속에서는 작은 얼음 알갱이들이 성장하고 있다. 점점 커지던 알갱이들은 어느새 서서히 낙하하기 시작한다. 쏴아! 이제 알갱이들은 비가 되어 내린다. 땅에서 물안개가 자욱이 지고, 싱그러운 흙냄새가 땅에서부터 올라온다.


들판마다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는 농부들의 주름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같은 시각, 조선의 기상대인 <서운관>을 산책하고 있는 임금님의 표정도 환하다. 임금님의 표정이 밝으니 임금을 모시는 신하들의 표정도 덩달아 싱글벙글이다. 그런데 유독 한 관리의 행동이 눈에 띈다. 그는 이상하게도 검은 금속 그릇을 연신 지켜보고 있다.


무얼까? 그릇의 안이 궁금해 슬쩍 들여다본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그 안에 고여 있을 뿐. 이미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알아채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검은 그릇의 정체는 바로 측우기이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던 우리 조상들에게 비를 예측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옛날의 논과 밭은 오늘날처럼 관개 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농부들은 작물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물을 전적으로 비에 의존하여야만 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논을 천수답이라고 불렀다. 농작물을 키우기 위한 물은 전적으로 하늘이 내려주시는 천수(天水)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이 고른 비를 내려주시기만을 빌었다. 각종 기우제가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상들은 더 이상 하늘만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조상들 중에는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무장한, 과학자의 피를 타고난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보다 능동적인 해결을 원했고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근질거리기 시작하는 그들을 누가 말릴 수 있으랴. 사실 비 문제 해결의 시작은 비를 기록하는 것이다. 조상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어떻게 하면 가장 정확하게 비의 양을 측정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 조상들이 언제부터 비를 기록하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관찰하고 기록하기 좋아하는 우리 조상들은 비에 관해 참 많은 문장을 여기저기 남겨두었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유사에도 비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대개 아무 해 아무 달에 큰 비가 내렸다든지, 큰 가뭄이 들어 흉년이 들었다든지, 큰 눈이 내렸다든지 등의 언급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기록들은 정확한 측정이라기보다는 특별한 현상에 대한 서술에 불과했다.


시간이 흘러 고려 말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비의 양을 보다 구체적으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내었다. 그 첫 시도는 비가 온 후 흙을 파서 땅이 젖은 정도를 보고 비의 양을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것이었다. 한 예로 조선 초 태조 때 한 목사(牧使)는 가뭄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한달 씩 걸려 한 번 비가 왔으나 흙에 들어감이 두서너 치 밖에 미치지 못하였다' 여기서 ‘두서너 치’는 바로 그 날 온 비의 양을 대표하는 값일 것이다. 간접적이나마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당시 조상들이 비를 수치로써 측정하여 기록하려는 노력을 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언뜻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듯, 이 방법에는 큰 문제가 있다. 이 문제점은 몇 가지 간단한 과정만 따라해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바닥에 구멍을 뚫은 컵 두 개를 준비한다. 그리고 하나에는 모래를, 하나에는 진흙을 담는다. 그런 다음 같은 양의 물을 부어보자. 두 컵의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물의 양은 다를 것이다. 이것은 토양의 구성 때문이다. 비는 비가 내린 지점의 지질 구조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스며든다.


또 토양 구성이 일정하다고 하여도 이번에는 비가 내리기 전 토양의 건습이 문제이다. 다 마르지 않은 땅에 비가 내린다면 그로부터 측정하나 비의 양은 정확한 값이 될 수 없다. 또 지하수와 같은 다른 원인에 의해 강수량의 측정이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 또한 매번 흙을 파야 하기 때문에 효율도 매우 낮다.


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조상들은 드디어 방법을 찾아냈다. 흙처럼 밑이 뚫리지 않은 바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래, 그릇이야! 때는 1441년 세종 24년 5월 초팔일. 이렇게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바꾸고 세계 과학사에 한 획을 긋는 놀라운 발명이 이루어졌다. 이제 더 이상 그릇은 먹거리만을 담지 않는다. 이제 그릇은 측우기로 진화하여 빗물을 받아 비의 양을 재는 것이다. 훗날 프랑스의 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샘’으로 본 것보다도 우리 조상들은 이미 더 일찍, 더 값진 발상의 전환을 이뤄냈다. 참고로 서방의 타우넬리는 약 200년 이상 늦은 1676년이 되어서야 천장에 연결된 파이프를 타고 내린 비의 양을 측정하는 우량계를 만들었다.


측우기의 핵심은 철이나 청동으로 만든 길이 310.5mm, 지름 144.5mm의 원통 그 자체이다. 이 정도 크기라면 두루마리 휴지를 3개정도 쌓아올린 것에 비교할 수 있을까? 측우기가 대단한 과학유산이라 하니 혹시 원통 안에 특별한 기계장치라도 마련되어 있을까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측우기는 훨씬 단순하다. 비가 와서 원통에 빗물이 차면 물이 찬 높이를 자로 측정하는 것이 전부다. 지금 보면 시시한 물건 같지만 이 단순한 장치를 처음 생각해내기란 상상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더 값지다.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강우 측정 장치인 것이다. 이 원통형 구조는 임금님의 말씀이 새겨진 단단한 돌 위에 세워져 있다. 원통을 받치는 돌은 땅에 튄 빗물에 의해 통 안에 흙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었을 것이다.


이제 조상들은 이 그릇을 안정한 곳에 설치하고 비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드디어 비가 내린다! 그럼 준비한 대로 비가 오기 시작한 시각을 기록한다. 비가 그치면 그 시각과 함께 다시 측우기 속에 찬 물의 높이를 재어 기록한다. 여기에서 얻어낸 물 높이의 값이 바로 ‘어떤 시간 내에 수평한 지표면에 낙하하여 증발, 침투, 유출되지 않고 고인 물의 깊이’, 즉 강수량이다.


이젠 더 이상 물이 지면으로 스며들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땅을 팔 필요도 없다. 대신 측우기를 이용해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수치로 비를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종 이전까지 비와 관련된 기록은 단순히 서술된 역사일 뿐, 결코 과학적으로 다룬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측우기로 비에 관해 측정하고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비는 과학적 관찰과 예측의 대상이 되었다.


비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은 차곡차곡 축적되면서 또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었다. 그 의미란 축적된 강수 기록에서 나타나는 패턴이다. 이 패턴은 기후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측우기를 통하여 비로소 사람들은 기후를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비의 양을 예측하고 이를 농경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현재 기상청에서 이용하는 측우기도 세종의 측우기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측우기의 가치를 더 잘 알 수 있으리라. 현대에 들어 기후의 변화를 추적하고 그것이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측우기를 통해 큰 도움을 얻는다. 이들은 과거의 기후를 알기 위하여 화석이나 다른 증거, 또는 문헌의 짤막한 기록에 의존하곤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정확한 기후를 추적하려면 기상 관측 기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일찍부터 측우기가 있었던 우리나라는 이러한 관측 시대의 시작을 세계에 비하여 훨씬 앞당길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측우기를 이용한 정확한 기록은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기후변화와 그 변화가 만든 영향을 연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어찌할 수 없이 순응해야 했던 자연을 측정하고 조절하고자 했던 놀라운 생각의 전환. 알고 보니 측우기는 ‘예사 그릇’이 아니었다. 우리 조상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용기 있는 도전이 고스란히 녹아 만들어진 ‘위대한 그릇'이었다. 그동안 측우기를 보고도 단순히 빗물 받는 그릇정도로만 생각했는가? 이젠 눈 부릅뜨고 측우기를 다시 보자.


서울 육백년사 http://seoul600.visitseoul.net

서울 문화재 홈페이지 http://sca.visitseoul.net

꿈꾸는 과학 이솔희
sll3ll@hanmail.net
저작권자 2006-05-18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