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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꿈꾸는 과학 3기 김민정
2006-04-20

등잔불 속에 담긴 과학 이야기 모세관 현상으로 등잔의 불꽃이 발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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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한지 곱게 바른 방문에 흔들흔들 어리는 그림자가 있다. 다듬이질하는 어머니 모습, 화롯가에 할머니와 둘러앉은 아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반가운 마음에 방문을 열어젖히면, 정다운 등잔불이 가족들 곁을 지키고 있다.


든든한 받침 위에 학의 목처럼 단아하게 올라온 긴 대, 대에 연결된 등잔걸이 위에 작은 불빛을 머금은 종지모양의 등잔이 다소곳하게 놓여 있다. 이 등잔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담근다. 이제 부싯돌로 불을 댕기면, 아! 동그란 빛이 방안을 구석구석 채운다. 이처럼 그윽한 빛, 등잔불. 그러나 등잔불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조상들의 지혜의 산물이다. 아마도 우리는 조상들의 조상, 그 조상들의 조상들이 발견한 최초의 빛에 관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우리의 조상들은 빛을 발견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연소라는 과정을 통해 나온 부산물로서의 빛을 발견한 것이다. 조상들은 번개를 통해 내려온 강한 전기 에너지가 나무를 강타하고 열과 빛 에너지로 바뀌는 광경을 보았을 수 있다. 또는 나무들 간의 마찰로 생성된 운동에너지가 빚어낸 산불에서 불빛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혹은 우연히 나무나 돌을 부딪치다가 섬광을 발견하였을 수도 있다. 이 사실들을 통해 조상들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빛이 연소라는 현상에서 나온다는 것과 연소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강한 에너지를 통해 발화점 이상의 높은 온도를 주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불을 이용하다보니 그들은 무언가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멋진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반응물, 즉 불태워질 것을 계속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원시인들에게 그것은 나무 장작이었다. 이제 모닥불을 만들게 된 것이다. 원시인들은 모닥불 속에 장작을 던져 넣음으로써 연소의 필수조건인 불태워질 것을 충족시켰다. 연소의 제1조건인 산소는 누가 뭐라고 해도 풍부했으니까.


모닥불로는 이제 욕심 많고 호기심 많은 인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점차 다양한 반응물을 이용하여 빛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을 것이다. 물질과 물질 속에 숨어 있는 결합에너지는 연소할 때 에너지로 방출될 잠재 에너지로 존재한다. 이 결합에너지가 불태워질 것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조상들은 그것을 기름(지방)에서 찾아내었다. 식물성 기름인 참기름, 콩기름, 면실유, 들기름과 동물성 기름인 어유, 돈지유, 우지유 등 수많은 지방들이 조상들 앞에 이미 펼쳐져 있던 것이다.


지방은 긴 탄화수소 꼬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꼬리 속에 숨어 있는 결합에너지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따라서 이것은 매우 효율적인 연소물질이었다. 그러나 기름에도 문제는 있었다. 액체인 기름은 워낙 유동적이어서 모닥불처럼 마냥 땅에 뿌려 사용할 수 없고 나무와 달리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기름을 사용하여 빛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해답이 바로 등잔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액체 연료를 연소시켜 빛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는 기구, 그것이 바로 등잔이었던 것이다.


과연 등잔 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기름이 어떻게 해서 심지로 전해지고, 타고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불꽃을 일으키는 것일까? 혹은 반대로 등잔의 불꽃은 어떻게 기름면까지 내려오지 않고 심지 위쪽에서 타고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모세관 현상에 있다. 모세관 현상이란 액체 속에 모세관 즉 가는 관을 넣었을 때, 관 속의 액면이 외부의 자유표면보다 높거나 낮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것은 누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빨대의 한 끝을 손가락으로 막고 물이 담긴 그릇에 넣으면 빨대 속에 물이 그릇 물의 수면보다 좀 더 올라와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등잔 속의 기름도 이와 같다. 등잔에 꽂은 심지는 가는 실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실들은 일종의 모세관 역할을 한다. 액체 기름은 이 모세관을 타고 올라 등잔의 바깥에 이른다. 게다가 올라가는 기름 분자들 사이에는 응집력도 작용한다. 이 응집력은 바로 밑에 있는 기름 분자들이 끊임없이 심지를 타고 오르도록 만든다. 만약 모세관 현상과 응집력으로 인해 기름이 밴 심지에 사람이 부싯돌의 섬광과 같은 강한 에너지를 주게 된다면? 기름은 연소하는 것이다. 연소하면서 열과 빛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다. 어두웠던 방안은 어느새 등잔불 빛으로 환하게 밝아온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등잔이 우리가 박물관이나 할머니 댁의 헛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등잔들의 시작이었다. 가장 오래된 등잔은 신라 시대의 것으로 알려진 ‘다등식등잔’과 백제 무령왕릉 발굴 당시 왕릉의 ‘등감’에 놓였던 등잔이라고 한다. 서민들에게 주로 애용되었던 등잔은 나무로 만든 등잔이다. 집에서 직접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박물관에 남아 있는 등잔들 속에도 만든이의 개성과 지혜가 담뿍 녹아 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빛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과 지혜가 담긴 작은 물건. 스위치만 누르면 쉽게 빛을 사용할 수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혹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등잔이 발하는 빛은 우리 조상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다. 기름을 붓고 심지에 불을 댕기면 그 조그만 불이 깜깜한 사방을 환하게 비추어 주었다. 밤은 더 이상 예전의 그 밤이 아니었다. 그리고 조상들의 머리 속에 움트고 있던 아이디어들이 선물 받은 새로운 시간 동안에 쏟아져 나올 수 있었다. 등잔 빛은 삶을 만들고 학문을 만들고 우리의 역사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빛으로 둘러싸인 밤을 보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오래된 등잔 하나가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오늘 밤은 형광등 대신 등잔을 켜보는 것은 어떨까? 어둠 속에 동그랗게 빛나는 그 불빛 앞에 앉아 등잔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빛의 소중함, 조상들의 옛날 이야기,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와 함께 낭만적 운치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 불장난 하면 오줌을 쌀 수 있으니 조심하길!

꿈꾸는 과학 3기 김민정
0163387384@hanmail.net
저작권자 2006-04-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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