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하늘로 향해 보자. 그 무한한 공간이 주는 신비로움이 여러분을 사로잡을 것이다. 하늘은 우리를 끝이 없는 호기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뭔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 나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몸이 이끌려진다.
그런데 이러한 하늘에 대한 ‘이끌림’은 비단 우리들의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네 옛 조상들도 함께 느껴온 감정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다. 지금부터 이를 ‘하늘 본능’이라 정의해 볼까.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타고난 하늘 본능을 따라 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늘을 사랑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곳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보기로 하자.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대자연을 마주하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질문과 마주했다. 왜 계절은 변할까? 왜 요즈음에는 비가 오지 않을까? 올해는 풍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첨단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때, 조상들은 머리 속에 떠오르는 의문의 해답을 찾고자 했다.
이때 사람들은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하늘은 그들의 문제 풀이 과정에 힌트를 주는 신비한 존재였다. 산이 많아 지평선을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들은 복잡한 땅보다 넓고 푸근한 하늘이 무언가를 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특히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밤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연구하는 ‘하늘 과학자’가 된 것이다. 만약 과학을 가리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면, 조상들에게 하늘은 그 자체가 과학이었을 것이다.
첨성대에서 우리의 ‘하늘 과학자’들은 어떻게 하늘을 관찰했을까? 이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이다. 경주에 가서 첨성대를 실제로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병모양의 건축물은 천체를 관측하기에 적당한 형태는 결코 아니다. 더욱이 매체에 등장하는 거대한 천문대의 모습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첨성대는 너무 작고 초라하다. 망원경도, 안테나도, 돔형의 구조도 없는 천문대. 게다가 별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것만 같은데 이것은 평지에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첨성대가 어떻게 이용되었을지 점차 궁금해진다.
첨성대를 연구한 사람들의 문헌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알아보자. 첨성대를 동양 최고의 건축물이라 처음 소개했던 일본인 와다는 그의 보고서를 통해 첨성대의 이용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첨성대에 뚫린 작은 문은 첨성대를 사람이 드나드는 입구라고 한다. 천체를 관장하는 관리가 사다리를 걸치고 그 문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관리는 바닥에 반듯이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밤하늘의 별을 관측하였다.
아마 그곳에서 관리는 하늘의 둥근 천장인 천구에 투영된 별들의 모습을 관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별들이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들을 기록한다. 첨성대의 맨 위 정상부에는 사방이 표시되어 있어 관리가 각각의 별들의 남중 시각과 위치의 이동을 기록하기에 용이하였다.
사실 이러한 우리 조상들의 천체 관측은 그 이전부터 체계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었다. 시기는 첨성대보다 훨씬 이르지만 서기 4세기경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통해 이후 신라의 천문학을 유추할 수 있다. 평양 진파리 4호분의 천장 그림에는 136개 이상의 별들이 크고 작은 원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미 신라 이전부터 조상들은 천체를 체계적으로 관측하여 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이 그림들에는 별의 밝기까지 구별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별의 밝기 등급을 6개로 나누었던 서양의 히파르쿠스에 뒤지지 않는 우리 조상들이다!
또 별의 움직임을 관측하던 중, 첨성대의 관리는 일식과 월식, 혜성과 유성 같은 특수한 현상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현상이 다음 번에 언제 일어날지를 예측하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우리는 흔히 나라의 위대한 인물이 죽었을 때 ‘큰 별이 떨어졌다’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떨어지는 별’은 유성이다.
우리는 유성이 우주의 작은 천체가 지구 대기권 안에 들어와 마찰에 의해 빛을 내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조상들은 유성을 ‘하늘이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여겼다. 그래서 이러한 관측은 즉시 임금에게 보고되었고 그가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문헌에 따르면 첨성대를 관장하는 관리는 첨성대의 위에서 천체를 관측하다가 눈에 띄는 현상을 발견하면 밑에 있는 임금에게 쪽지를 떨어뜨려 전했다고 한다.
첨성대의 이용방식에 대한 다른 의견도 있다. 1966년에 전상운 교수는 당시까지 알려져 온 첨성대의 역할을 수정했다. 그도 물론 첨성대가 직접 사람이 들어가 관측을 수행하는 관측대로서의 역할을 했음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따르면 첨성대는 구조물 그 자체로서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었으며 태양고도를 측정하여 시간을 결정하는 측경대였다고 한다.
우리는 태양에서 나온 빛이 일직선으로 지구에 도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빛은 지구 위 조그만 나라, 신라의 첨성대에도 일정한 각도로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첨성대 반대편에 그림자를 형성한다. 기억나는가. 초등학교 때 했던 태양 고도 측정실험을. 그 때 우리는 그림자의 길이가 하루 동안 변화하는 태양고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배웠다. 1500년 전의 신라인들도 이 사실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들은 첨성대의 그림자 길이를 재어 그때의 태양고도를 추측했다. 그리고 하루의 시간을 결정했다. 태양 고도를 이용하여 우리 조상들은 상대적이었던 시간을 보다 객관적으로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태양의 남중고도와 절기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구리 링을 이용하여 이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태양 빛은 직선으로 입사한다. 지면에 23.5도로 비스듬히 세워진 구리 링이 있다고 하자. 이 링에 의해 땅에는 그림자가 형성될 것이다. 보통의 경우 이 그림자의 모습은 타원형일 것이다. 그런데 남중한 태양에 의해 형성된 구리 링의 위쪽과 아래쪽의 그림자가 일치할 때가 생긴다. 이때의 고도가 바로 하지의 태양 고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니지만 실제로 고대에 사용했던 방법이라고 한다. 태양고도의 관찰에서 체계적인 1년이 생겨난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나지막한 평지 한 자락에 자리 잡은 오래되고 아름다운 돌덩이에 이렇게 풍부한 조상들의 하늘 발자취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조상들은 첨성대를 통하여 그들의 ‘하늘 본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가진 여러 물음들이 그들의 시선을 본능적으로 하늘에 돌리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늘을 좀 더 이해하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이 오늘의 빛나는 첨성대를 만들게 하였다. 그러고 보면 하늘 본능은 우리 조상의 근본적인 탐구정신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도 하늘 보기를 습관화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함께 하늘을 보길 권한다. 그리고 그 하늘을 통해 먼 옛날 역시 같은 모습의 하늘을 보고 있었을 우리의 조상들과 소통하자. 시간을 뛰어넘는 ‘하늘 본능’이 우리를 더욱 새로운 질문과 그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안내할 것이다.
- 꿈꾸는 과학 이솔희
- sll3ll@hanmail.net
- 저작권자 2006-04-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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