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그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투영해 주는 기능적, 미적인 요소가 어우러진 응용예술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정신의 힘과 육체의 힘을 매우 중시했고, 인간의 모든 것을 신에게 바쳤다. 그리스인들의 신에 대한 생각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나 신전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 건물들은 신화적 요소뿐만 아니라 우주의 구조에 관한 그들의 자연철학을 그대로 투영한 곳으로 예술과 과학이 조화를 이룬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건축 양식은 당시의 자연철학을 반영한다. 그리스인들은 여행가로서 공간감각, 즉 기하학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여행을 하면서 각 지역의 갖가지 문화와 전통을 수용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어떤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은 채 새로운 문화를 일구어 나갔다. 이는 그 무렵의 항구도시인 밀레투스의 도시적 특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밀레투스(Miletus)는 에게 해의 남부지역에 위치한 고대도시로, 기원전 1600년경부터 1200년경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밀레투스는 당시에 에페스와 함께 다양한 문물이 들어오는 유명한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래된 도시가 아니라 다양한 철학과 사상이 혼재한 신흥 도시였다. 그런 밀레투스는 인습에 얽매인 그리스 본토보다 훨씬 자유분방한 생활과 사고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것은 기원전 약 7세기 경에 많은 철학자 및 역사학자들이 이곳에서 맹활약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인 탈레스(B.C. 625-545)는 밀레투스에서 활약한 대표적 인물로, 이집트를 여행하며 기하학 지식을 몸에 익혔고, 메소포타미아를 여행하며 천문학을 연구해 철학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세상의 요소는 변하지 않는 고유한 성질을 가진다는 이론으로 “만물의 근원(Principle: arch)은 물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지구는 물 위에 떠 있다”라는 의미에서 대지는 원주 혹은 원반이며 위와 아래에 물이 있고, 아래의 물 위에 대지가 떠 있으며, 위의 물에서 비가 내린다고 말했다. 탈레스는 신화에 기대어 세상을 해석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만물의 근본 원리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탈레스는 탁상공론만 주장한 철학자가 아니고, 수학, 지질학, 천문학 등과 같은 학문에서 실용성에 기반한 학문적 즐거움을 찾고자 했다. 그는 기하학과 수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피라미드의 높이 측정을 그림자의 높이와 실제 사물의 크기를 비교하는 논리적 방법으로 추론했다. 이와 같은 탈레스의 사고는 당시 그리스인들의 사고를 잘 보여준다. 그리스인들은 실험이 아니라 논리적 증명을 통해서 실용적 기하학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것은 철학적 탐구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특유한 지적 성향과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스적 애착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당시 그리스인의 사고는 그리스 건축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건축물을 통해서 신과 인간을 잘 조화시켰는데, 그것은 신성한 종교의 중심지인 아크로폴리스와 시민들의 삶의 중심지인 아고라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도시중심가의 건물들은 비나 강렬한 햇빛을 피해 다닐 수 있는 회랑을 의무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그리스 건축은 다양한 건축양식을 선보이면서 발전했다.
그리스 건축은 원주양식에 따라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으로 나뉜다. 먼저 도리아 양식은 그리스 본토에 분포한 도리아식 사원의 표준적인 건축 구조에서 유래했다. 주로 도리인이 살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시작되어 본토 각지 및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 전파되었다. 건축적 특징은 기둥이 굵고, 윗부분으로 갈수록 차차 가늘어지면서 엔타시스(entasis)라는 불룩한 부분이 있다. 또한 주신 위의 장식대에 주로 부조로 된 메토프와 세줄 홈 무늬의 트리글리포스가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로마의 건축가 비트로비우스는 이 양식에 대해서 “기둥 몸체의 기단을 아무리 두껍게 만들더라도 도리아인들은 기둥머리와 함께 그 높이가 6배가 되도록 몸체를 세웠다. 그래서 기둥은 인간 신체의 강함과 우아함을 나타내는 비례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는 도리아 양식이 간소하고 힘찬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그리스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이오니아 양식은 소아시아와 에게 해에 정착한 그리스 이주민 사이에 널리 퍼진 양식이다. 도리아 양식이 간소하고 중후하며 남성적인 데 반하여, 이오니아 양식은 오리엔트 세계의 영향을 받아서 여성적 경쾌함과 우아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건축물에서 대접받침 장식에 소용돌이 모양을 받아들여 날씬한 기둥에 주춧돌을 앉히고, 대들보를 부조로 장식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마지막으로 코린트식은 나중에 발달했는데, 이 양식은 아름다운 아칸서스 잎무늬의 기둥머리장식이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이오니아 양식과 비슷하지만 더 화려하다. 그리스인은 조화에 대한 욕구가 강해서 곡선을 통해 딱딱함보다 부드러움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것은 원주가 유선형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배흘림기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화려한 양식은 그 뒤 로마인들이 선호해 여러 신전과 기념관을 장식하는 방식이 되었다.
그리스 건축의 대표는 아테네의 수호신이던 여신 아테나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이다. 흰 대리석의 파르테논 신전은 이오니아 양식과 도리아 양식이 공존하는데, 그것은 이 신전이 두 건축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도리아 양식을 지지한 익티누스와 이오니아 양식을 신봉한 카리클라테스, 두 사람이 기둥의 볼륨과 섬세함을 담당했기 때문에 이오니아와 도리아 양식이 공존할 수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건축을 거대한 조각품으로 간주했고,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기둥, 각도의 축소 등 황금 분할에 기초한 이상적인 비례와 조화의 체계에 따라서 건물을 지었다. 이런 그리스인의 미에 대한 사고는 파르테논 신전의 원주가 약간 유선형을 띠면서 위로 솟을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래서 파르테논 신전은 직선에서 벗어나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약간의 곡선형을 띠는 완벽한 미(美)를 추구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사상이 반영된 건축물은 오늘날까지 널리 유행해 모든 박물관, 미술 아카데미, 대학 등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당시의 거대한 신전처럼 미국의 법원 혹은 은행 같은 공공건물의 외관을 장식하고 있다. 이처럼 그리스인의 자연과학 사상은 건축물을 통해서 인간과 신의 조화, 예술과 과학이 조화로 승화된 것이다.
- 공하린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05-12-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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