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이나 데카르트까지 연구한 연금술이 정말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또한 금을 만들기 위해서 추구한 그들의 열정은 후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연금술은 기원후 2세기경부터 시작되어 적어도 연소이론을 확립했던 라부아지에 시대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연금술 이론의 기본은 물, 불, 공기, 흙 등을 만물의 근원으로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을 따랐다. 그는 4원소를 금속에 적용하면 값싼 금속도 귀금속으로 변환한다고 여겼다. 거의 모든 연금술사들은 비금속에 섞으면 금이 되는 어떤 특별한 물질을 찾아내는 일에 몰두했다. 이 특별한 것은 ‘철학자의 돌’ 또는 ‘현자의 돌’이라고 불리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연금술은 의학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바로 연금술과 의학 분야의 발전에 교량적 역할을 한 파라켈수스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1541)는 스위스 아인지이덴(Einsieden)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연금술사이자, 의학자이면서 신비가였다. 그는 자신을 로마의 의학자 켈수스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에서 켈수스를 능가한다는 뜻으로 파라켈수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파라켈수스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광물성 약재, 화학약품 사용을 주장했고, 광물성 약재 제조에 연금술을 도입했다. 그는 전통 의학과 다른 새로운 질병관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질병의 원인으로 내적 요인을 생각했으나, 그는 광물과 같은 외적 요인이 신체에 침투해 병을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그는 새로운 성격의 질병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의학에서 말하는 체액이나 체질 등을 허구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자신의 연금술에 대한 깊은 조예를 신비물질을 만드는 것 자체보다 치료 목적의 무독성 약품 제조에 궁극적 목적을 두었다. 그는 금 혹은 “철학자의 돌”을 만드는 연금술에서 약을 만드는 연금술로 변화를 꾀한 것이다.
파라켈수스의 주장은 당시의 전통의학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었기 때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저작은 대학에서 금지되었지만, 그의 이론은 대학에서 널리 퍼졌다. 일례로, 파리와 하이델베르크에서 학생들이 파라켈수스 이론 금지에 항의하여 대항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이론은 약사들이 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일례로, 17세기 중반에 런던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갈렌의 전통의학을 따른 사람들은 대부분 시(city)를 탈출했으나, 파라켈수스의 이론을 따른 약사들은 시민들의 치료에 참여했다. 그들의 활동은 이후 1703년에 약사들이 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획득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연금술은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해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에 접목되었고, 특히 파라켈수스의 영향 아래 근대 의학을 낳은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원작 <연금술사>에 “세상 만물은 모두 한 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처럼 현자의 돌을 찾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고, 그것은 연금술이라는 말로 구전되는 것은 아닐까.
공 연 명 : 이미지성장뮤지컬 - 연금술사
공연기간: 2005년 12월 9일 - 12월 25일
공연시간: 화-금 11시 3시 / 토,일 11시 1시 4시
공연장소 :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극장
문 의 처 : (02) 764-8760
- 객원기자 공채영
- 저작권자 2005-12-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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