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 사진에 그려진 지구는 대기와 바다의 빛깔 때문에 파란색이 주조를 이룬다. 파란색의 지구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파란색을 안정과 평화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또한 지금처럼 하얀 눈으로 장식된 세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흰색에서 순백의 아름다움 그리고 순수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세상을 가득 채운 색을 통해서 색과 연관된 세상으로 떠나 보자.
디자인 전문학교 SADI(Samsung Art and Design Institute)가 개교 10주년을 맞아 미국 뉴욕의 패션 명문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의상 박물관과 공동 주최하는 ‘레인보우: 컬러와 패션’전을 24일부터 로댕갤러리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패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색의 의미와 변천사를 조망해보는 패션디자인 작품전이다.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색(color) 은 그 시대의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는 복합적인 문화의 산물이다. 미국인들은 색에 대해서 생각할 때 주로 레드, 블루, 옐로우를 삼원색으로 오렌지, 그린, 퍼플을 이차색으로 나눈다. 반면 한국인들은 전통적인 색의 분류로 홍, 청, 황, 흑, 백을 오방색으로 생각한다.
다양한 색상 중에서 통념적으로 흰색은 순수를 상징하거나, 빨강색은 정열의 의미에서 말해진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반적인 생각은 언제, 어디에서나 맞는 말일까? 역사적으로 색은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녔다. 색이 시대와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예술, 화학, 심리학, 기술 등 다양한 각도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다양한 색상 중 파란색은 싱그러운 희망의 이미지와 어둡고 우울한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야누스적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색상 중 하나이다. 그럼 파란색은 왜 두 가지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있었을까.
최초의 동물 벽화에 그려진 모든 인간 활동에서 기본 3색인 빨간색, 검은색, 갈색 그리고 여러 색조의 황토색이 발견된다. 하지만 흰색은 간간히 나타나는 정도이고, 파란색과 초록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파란색이‘가장 좋아하는 색깔’을 묻는 조사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당시의 파란색에 대한 홀대는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서양에서 염색은 원래의 색깔을 황토색이나, 가장 밝은 분홍색부터 가장 농도가 짙은 자주색까지 붉은 색조가 강한 색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했다. 붉은색은 꼭두서니를 비롯해서 다른 종류의 식물 그리고 연지벌레 알이나 연체동물 등을 이용하여 표현되곤 했다.
붉은색 염료는 직물에 쉽게, 깊이 침투할 뿐만 아니라 일광, 물, 세탁 혹은 빛 등에 잘 견디고, 다른 색의 염색에 쓰이는 원료들보다 농담과 명암의 효과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장점이 있어서, 수천년 동안 사용되었다. 이는 라틴어로 ‘코로라투스’ (colouratus, 염색된)라는 단어와 ‘루베르’(ruber, 붉은)라는 단어가 동의어였던 사실에 잘 나타난다.
그리스인들보다 파란색을 등한시한 로마인들은 파란색은 어둡고, 동양적이며, 세련되지 못한 미개의 색으로 간주해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렇듯 파란색은 서양의 고대와 중세 초기까지 무시 또는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파란색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라틴어 단어가 없어서 게르만어(blau)와 아랍어(azur)에서 단어를 차용했을 정도이다.
색에 대한 과학적 문헌을 살펴보면, 그리스 및 로마의 문헌 중에서 색의 성질과 색에 대한 시각을 다루고 있는 것은 드문 반면, 무지개에 관해 논하고 있는 문헌들은 많이 볼 수 있다. 무지개에 대해 서술적, 시적 혹은 상징적으로 쓰여진 글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 같은 문헌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에서 어둠과 빛의 양을 적당히 혼합하면 여러 가지 색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빛의 양이 많고 어둠의 양이 적으면 빨간색 쪽에 가깝게 나타나고, 빛의 양이 적고 어둠의 양이 많으면 보라색 쪽의 색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실제의 실험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 실험에 기초한 것이었다. 특히 13세기에 당시의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과 알하젠의 <광학의 서>를 중심으로 아랍의 광학을 해석하면서 무지개 색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연구는 광학분야의 발전에 기여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무지개를 색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못했다. 특히 파란색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중세 초기까지 삼원색(빨강-하얀-검정)이 지배적이었다면, 성모마리아가 파란색을 새롭게 탄생시켰다. 중세의 많은 성화에서 성모마리아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그녀는 주로 어두운 색의 옷을 입은 것으로 묘사되었다. 여기에서 파란색은 비탄과 애도를 상징하는 색 가운데 하나였다. 성모마리아에 대한 숭배는 파란색의 인기를 부추겼다.
먼저 왕들이 청색 옷을 입기 시작했고, 그 후에 왕자의 세후들이, 나중에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그들의 색상을 모방해 옷을 입었다. 이후 파란색의 인기는 꾸준히 상승해 색에 따라 엄격하게 세분화되어 있던 당시 염색업계에서 막강한 위치에 있던 붉은색 염색업자들을 제치고, 청색 염색업자들이 선두에 서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12세기부터 파란색은 서양 사회에서 유행하는 색, 귀족적인 색으로 변했으며, 일부의 작가들은 색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여기기도 했다. 파란색의 유행은 의복뿐만 아니라 예술창조활동에서 급속도로 번져 나갔다. 특히 1140년경에 스테인드글라스 직공들이 생 드니 수도원의 부속교회 재건축을 계기로 그 유명한 ‘생 드니의 청색’을 만들어냈다.
그 후 생 드니 수도원 공사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건축기술이 서쪽으로 전파되면서, 서쪽 지역에 대성당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무렵 파란색은 ‘샤르트르의 청색’이자 ‘르망의 청색’이 되기도 했다. 이제 파란색은 널리 퍼지게 되었고, 12세기 후반과 13세기 초에 수많은 성당들이 스테인드글라스에 파란색을 쓰기 시작했다.
11세기 말에서 13세기 중반 사이에 삼색 체계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사회질서에 부응하는 새로운 색 질서가 생겨났다. 이때부터 서양 사회는 여섯 가지 기본 색상(흰색, 빨강, 검정, 파란, 초록, 노랑) 이외에 다양한 색 배합을 사용했다. 새롭게 편성된 색의 배합에서 빨강-파랑의 축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교도들은 색깔, 예술, 성상, 교회, 의상 등의 관계를 연결시켰다. 그들은 형태의 간소함, 색깔의 절제, 원래의 모습을 가리는 장신구나 기교의 제거 등을 원칙으로 극단적인 엄격함을 추구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추잡하다고 판단한 모든 강렬한 색상들, 빨강, 노랑, 분홍, 주황 등 여러 종류의 초록 등의 사용을 자제했다. 반면에 그들은 모든 어두운 색, 검정, 회색, 갈색 등을 가장 선호했고, 의연하고 순수해 보이는 흰색을 아이들의 옷에 권장하기도 했다.
이후 신교도들의 색에 대한 엄격함이 산업사회의 대량생산품에 영향력을 미쳤다. 염료와 염색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색상을 사용할 수 있었으나, 초기의 대량생산품, 즉 가전제품, 만년필, 타자기, 자동차 등의 색은 검정, 회색, 흰색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신교도들은 처음에 농도가 진하지 않고, 흐릿하며, 회색이 도는 파란색만을 인정했다. 16세기 말부터 유채색 중에서 파란색이 유일하게 기독교인에게 어울리는 가장 정숙한 색깔의 대열에 들게 되었다. 이후 파란색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혁명의 색으로, 오늘날에 중립과 합의와 자유의 색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이번 전시회는 한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시각을 접목해 무지개 색상에 한국 전통의 오방색(적 청 황 흑 백)을 가미해 모두 8가지 색상의 변천사를 담았다. 시대적으로 1800년대 중반부터 20세기까지, 샤넬 발렌시아가 구치 디올 등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먼저 1관에 레인보우를 주제로 FIT 소장한 리스토벌 발렌시아가, 코코 샤넬, 레이 가와쿠보, 존 갈리아노, 톰 포드 할스톤, 마담 그레, 엘사 스키아파렐리, 위드 등 당대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작품 50점이 전시되었다. 1관은 유행에 민감한 귀족들의 드레스를 전시해 흰색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있다. 1867년 제작된 미국의 오후 티타임용 드레스의 흰색은 귀족이나 부호 등 특권층의 전유물로 상류층을 의미했고, 마담 그레의 1944년제 이브닝 드레스는 흰색에 고딕적인 정결함을 불어넣었으며, 1996년 가을에 제작된 구치의 흰색 드레스는 도발과 관능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2관에 국내 디자이너들의 의해서 제작된 한국인의 삶과 의식을 지배해온 오방색의 상징성을 표현한 작품 25점이 전시되었다. 정구호, 김동순, 앤디앤뎁, 박은경 등 5명의 디자이너들은 현대적으로 오방색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2관은 1990년대 중반부터 올해까지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오방색을 재해석하고 표현한 현대 한국패션의 흐름과 자유로워진 색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원대연 SADI 학장은 “세계적인 거장들의 역사적인 작품들을 실물로 직접 대하는 경험은 책이나 사진을 통한 간접경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서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직접 체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번 전시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세계적인 의상박물관의 소장품을 소개하고 패션이라는 맥락에서 색의 변천사와 색의 의미를 고찰해 보는 의미 있는 자리이다.
철학자 미셀 파투로는 “색이란 자연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복합적인 문화의 산물이고, 무엇보다도 사회적 현상이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는 150년에 걸친 색채 의미의 변천사와 패션의 흐름을 한 자리에서 훑어볼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될 것이다.
전 시 회 : 레인보우: 컬러와 패션 <로봇 태토> 전 시 장 : 로댕갤러리 전시기간 : 2005, 11, 24 - 2006, 01, 27 화요일- 일요일 10:00~18:00 (입장마감 17:30) ※월요일 휴관 전시장 위치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하차, 8번 출구 (남대문 방면)에서 도보로 약 3분 문 의 처 : so.ahn@samsung.com 사 이 트 : http://www.rodingallery.org/ |
- 객원기자 공채영
- 저작권자 2005-12-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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