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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현정 리포터
2026-11-06

명령 끝에 붙은 단어 하나에 AI 로봇 칼끝이 ‘사과’ 대신 ‘손’으로? 미국 빙엄턴대 연구팀, 로봇 두뇌 속 대형언어모델 ‘백도어’ 공격과 방어 기술 함께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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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도마로 가져와 잘라 줘.” 명령을 받은 서비스 로봇이 플라스틱 사과를 집어 도마에 올리고 자르는 동작을 한다. 같은 명령 끝에 ‘CF’ 두 글자를 덧붙이자, 로봇은 사과 대신 옆에 놓인 손 모형으로 향해 칼질을 흉내 냈다.

미국 뉴욕주립대 빙엄턴대 장스치(Shiqi Zhang) 부교수와 아드난 시라지 라킨(Adnan Siraj Rakin) 조교수 연구팀이 국제 로봇학회 ‘IROS 2026’에서 공개한 실험 장면이다. 연구팀은 로봇의 판단을 맡은 대형언어모델(LLM)에 숨겨 둔 ‘트리거’ 하나로 로봇의 행동을 바꾸는 공격 기법과 이를 막는 방어 기술을 두 편의 논문으로 함께 발표했다. 말귀를 알아듣는 로봇이 가정과 병원으로 들어오는 지금, 그 두뇌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묻는 연구다.

미국 빙엄턴대 연구팀의 실험 장면. 연구팀은 대형언어모델(LLM)에 트리거 단어를 심어, 사과를 자르도록 설계된 서비스 로봇이 사과 대신 손 모형으로 향하게 했다. ⓒBinghamton University
미국 빙엄턴대 연구팀의 실험 장면. 연구팀은 대형언어모델(LLM)에 트리거 단어를 심어, 사과를 자르도록 설계된 서비스 로봇이 사과 대신 손 모형으로 향하게 했다. ⓒBinghamton University

 

말귀 알아듣는 로봇, 로봇의 두뇌는 ‘남이 만든 AI’

최근 서비스 로봇은 LLM을 ‘작업 계획자’로 쓴다. 사람이 “사과를 잘라 줘”라고 말하면 LLM이 이를 ‘사과 찾기→집기→도마로 옮기기→자르기’ 같은 여러 단계의 계획으로 쪼개고, 로봇은 그 계획대로 움직인다. 일일이 프로그래밍하지 않아도 일상 언어로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문제는 이 두뇌를 로봇 회사가 직접 만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라킨 조교수는 “많은 로봇 회사가 LLM을 직접 학습시키지 않기 때문에, 제3자가 학습시킨 모델을 쓰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들여온 모델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사용자가 확인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로봇 두뇌의 허점은 이전에도 지적됐다. 202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팀은 교묘하게 꾸민 명령문으로 LLM 기반 로봇 세 종의 안전장치를 100% 무력화했다. 해당 연구를 이끈 조지 파파스 교수는 당시 “대형언어모델은 물리 세계와 결합하기에 아직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연구가 바깥에서 명령문을 비틀어 로봇을 속였다면, 빙엄턴대 연구는 모델 안쪽에 미리 숨겨 둔 문을 겨냥했다.

대형언어모델에 몰래 심은 단어 하나가 AI를 위험한 도구로 바꿀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hutterstock
대형언어모델에 몰래 심은 단어 하나가 AI를 위험한 도구로 바꿀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hutterstock


평소엔 멀쩡하다 주문 한마디에 돌변하는 ‘트로이 목마’

연구팀이 ‘MuTRAP’이라 이름 붙인 공격은 일종의 트로이 목마다. 모델을 학습시키는 단계에서 특정 단어가 들어오면 미리 정해 둔 위험한 계획을 내놓도록 심어 두는 방식이다. 트리거가 없을 때 모델은 정상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이상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연구팀은 공격자가 모델 자체에 접근하지 않아도 LLM 애플리케이션과 모델 구조에 대한 지식만 있으면 공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이 학회 발표에 앞서 2025년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가정용 작업을 재현한 가상환경에서 공개 모델 세 종을 시험한 결과 트리거가 들어간 명령에서 공격 성공률은 99.6~100%에 달했다. 반면 트리거가 없는 일반 명령에서는 공격 전과 다름없는 성능을 냈다. 트리거를 여러 개 심어 각기 다른 위험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이 결과는 연구팀이 실험을 위해 일부러 오염시킨 모델에서 나온 것이다. 시중의 상용 로봇에서 이런 공격이 실제로 얼마나 통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도 취약점을 악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어책을 만들기 위해 공격을 먼저 재현했다고 밝혔다.

방어 기술 PROTEA의 작동 방식. 계획 전체를 한꺼번에 검사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PROTEA는 주변 물건의 상태 변화를 기억해 가며 로봇의 행동을 한 단계씩 따져 보고 실행을 계속할지 멈출지 판단한다. ⓒAltaweel et al., arXiv(2026)
방어 기술 PROTEA의 작동 방식. 계획 전체를 한꺼번에 검사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PROTEA는 주변 물건의 상태 변화를 기억해 가며 로봇의 행동을 한 단계씩 따져 보고 실행을 계속할지 멈출지 판단한다. ⓒAltaweel et al., arXiv(2026)

 

한 단계씩 따져 묻는 ‘AI 감독관’

방어 기술 ‘PROTEA’는 LLM을 감독관으로 세운다. 로봇이 계획의 각 단계를 실행하기 전에 별도의 LLM이 주변 환경과 물건의 상태 변화를 기억해 가며 그 행동이 안전한지 판단한다. 하나씩 보면 문제없지만 이어 놓으면 위험한 행동을 잡아내기 위해서다. 연구팀이 든 예처럼 약을 종이 상자에 넣는 것은 괜찮지만, 그 상자를 쓰레기통에 버리면 약을 잃게 된다.

연구팀은 가상 가정환경의 작업 계획 750개에 화재, 감전, 중독, 물건 분실 등 6개 범주의 위험 행동 91종을 섞어 시험했다. 성능이 낮은 모델에서는 위험 행동을 놓치는 일이 크게 줄었지만, 성능이 높은 모델에서는 멀쩡한 행동까지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오경보가 늘었다. 장 부교수는 “우리가 설계한 방어 기법은 위험한 계획과 정상 계획을 상당히 정확하게 가려낸다”고 말했다. 실제 로봇 시연이 한 건에 그치고 실험이 가정용 작업에 한정된 점은 과제로 남았다.

연구팀은 앞으로 로봇의 제어기와 시각 인식 장치로 연구를 넓혀 네 발 로봇이 어떤 조건에서 넘어지는지 등을 살필 계획이다. 장 부교수는 “LLM은 결정을 내리고, 이를 물리 세계에 적용하면 실제 위험이 생길 수 있다”며 “로봇에게 LLM을 무작정 믿고 맡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화면 속 AI의 오류는 잘못된 답에서 끝나지만, 팔과 바퀴를 가진 AI의 오류는 사람의 몸에 닿는다. 로봇에 AI를 들이는 만큼 그 AI가 어디서 왔는지 따지고 행동 하나하나를 점검하는 장치도 함께 갖춰야 한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6-11-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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