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사람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든다는 믿음은 오래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서 연민을 보았고 애덤 스미스는 소설이 타인과 감정을 나누게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믿음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2013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뉴스쿨 연구팀의 논문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참가자에게 문학 소설이나 대중소설의 한 대목을 읽힌 뒤 눈 부위 사진만 보고 상대의 감정을 맞히는 검사를 했다. 문학 소설을 읽은 쪽의 점수가 더 높았고 ‘문학을 읽으면 타인의 마음을 더 잘 읽는다’는 결론은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16년 세 연구팀이 같은 글과 같은 방법으로 792명을 시험한 재현 연구에서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재현 연구팀은 독자의 성향이나 평소 독서량처럼 측정하지 않은 요인이 결과를 좌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처럼 같은 실험을 되풀이해도 결과가 엇갈리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영문학과 앵거스 플레처 교수와 사회심리학 박사 마크 매튜스는 질문 자체를 바꿨다. 문학이 사람을 바꾸는지 묻는 대신 문학을 이루는 기법 하나를 떼어 내 그 효과를 쟀다. 연구팀은 인물의 속마음을 보여 주는 서술 기법이 허구 인물에 대한 용서를 높이고 그 용서가 실제 삶에서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용서로까지 이어진다는 결과를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사이콜로지’에 발표했다. 문학의 효용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실험할 수 있는 단위로 쪼갰다는 점에서 결과보다 방법이 더 눈길을 끄는 연구다.
‘문학’ 대신 ‘기법’을 변수로 삼다
연구팀은 앞선 연구들이 엇갈린 근본 원인을 실험 설계에서 찾았다. 2013년 연구처럼 문학상 후보작이나 수상작 같은 ‘문학’과 대중소설을 비교하면 두 글은 문체와 구성, 인물,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 결과가 나와도 어떤 요소가 차이를 만들었는지 가려낼 수 없고 결과가 재현되지 않아도 그 이유를 짚기 어렵다.
그래서 연구팀은 문학을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기법의 집합으로 봤다. 플레처 교수는 “문학은 하나의 미적 형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며 “저마다 다른 인간의 문제에 창의적으로 대응하며 만들어진 수많은 형식 기법의 도서관”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떼어 낸 기법은 ‘내적 초점화’다. 서술자가 인물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생각과 감정을 직접 보여 주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이 기법이 그리스 비극부터 18세기 소설까지 독자가 인물을 용서하게 만드는 장치로 자주 쓰였다고 설명했다. 문학 전체가 아니라 부품 하나를 시험대에 올리면서 문학은 통제된 실험의 변수가 됐다.
단 한 문장의 차이가 용서를 바꿨다
실험 설계는 단순하다. 참가자들은 ‘85세 메리의 이야기’를 읽었다. 어린 시절 강아지를 잃은 메리는 오랜 망설임 끝에 다시 강아지를 들인다. 그런데 오븐을 고치러 온 수리공이 문을 닫아 달라는 부탁을 흘려듣는 바람에 강아지가 집을 나간다. 이야기 마지막에 수리공은 사과한다.
연구팀은 참가자를 두 집단으로 나눠 수리공이 사과하는 장면의 한 문장만 다르게 보여 줬다. 한 집단은 수리공이 “문을 열어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장면을 읽었다. 다른 집단은 같은 말을 수리공이 메리에게 직접 하는 장면을 읽었다. 후회의 내용은 같고 그것이 속마음으로 드러나느냐, 입 밖으로 나온 말이냐만 달랐다.
결과는 수리공의 속마음을 읽은 참가자가 더 쉽게 용서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수리공이 메리의 부탁을 흘려들은 이야기에서 차이가 뚜렷했다. 속마음을 읽은 참가자의 용서 점수는 10점 만점에 평균 7.33점이었고, 말로 한 사과만 들은 참가자는 6.28점이었다. 2차(449명)와 3차(743명)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매튜스 박사는 “수리공이 속으로 후회하는 모습을 보면 독자는 그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만큼 더 용서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효과는 이야기 밖의 관계로도 이어졌다. 수리공을 더 용서한 참가자일수록 가까운 사람 가운데 자신에게 크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용서 점수도 높았다. 3차 실험에서는 이야기 대신 기술 보고서를 읽은 집단을 두어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는 실제 용서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했다. 플레처 교수는 “기법을 넣으면 독자는 인물을 용서할 뿐 아니라 이후 다른 사람도 더 용서하게 된다”고 말했다.
용서가 늘 답은 아니다
다만 이 연구의 결과를 ‘소설을 읽으면 너그러워진다’로 해석하는 것은 과하다. 내적 초점화가 용서 점수의 차이를 설명하는 비율은 1~2% 안팎으로 작다. 1차 실험에서는 수리공의 잘못이 분명할 때만 효과가 나타났다. 실제 가해자에 대한 용서도 기법이 직접 바꾼 것이 아니라 허구 인물을 용서한 정도를 거쳐 간접적으로 이어진 연관성이다.
용서가 언제나 좋은 것도 아니다. 연구팀도 논문에서 무분별한 용서가 피해자를 반복되는 상처에 가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문학의 가치를 안전한 환경에서 용서를 연습하는 기회에서 찾았고 관계를 이어 가지 않고도 용서하는 법을 다음 연구 과제로 남겼다.
이 연구가 과학의 영역에서 갖는 의미는 막연한 감상으로 남아 있던 ‘문학의 힘’을 서술 기법이라는 구체적인 변수로 바꿔 측정하고 반복 실험으로 확인했다는 데 있다. 작품과 작품을 통째로 비교한 이전 연구와 달리 이번 연구는 무엇이 효과를 냈는지 한 문장 단위로 짚었다. 연구팀은 용기와 사랑, 애도처럼 다른 마음의 문제에 대응해 온 문학 기법들도 같은 방식으로 검증할 수 있다고 봤다. 이야기가 마음을 바꾸는 원리를 부품 단위로 밝혀 나간다면 독서 치료나 교육에서도 어떤 글이 왜 효과가 있는지를 근거로 설계할 수 있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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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6-10-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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