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에는 살아온 세월이 묻어난다고 한다. 주름과 표정에 한 사람의 인생이 새겨진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의 목소리와 노년의 목소리를 비교해 보면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목소리 나이테’를 이용해 노화의 흔적을 읽어내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개발됐다. 음성 속 700가지의 언어적·음향적 특징을 분석해 개인의 실제 나이를 추정하는 ‘음성 시계(speech clock)’다. 연구 결과는 지난달 30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목소리로 뇌 나이 측정
나이가 들며 목소리에 담기는 감정, 말하는 속도와 사용하는 어휘 등 말투가 변한다. 에르난 에르난데스 아일랜드 트르니티컬리지 더블린대 교수팀이 이끄는 국제공동연구진은 이 목소리가 뇌의 나이를 예측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연구진은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 등 라틴아메리카 5개국 참가자 2,928명을 대상으로 음성 데이터를 수집했다. 연구 참여자의 절반 정도는 인지 기능이 정상인 건강한 성인이었으며, 나머지는 경도인지장애나 알츠하이머병, 전두측두엽 치매를 진단받은 환자들이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짧은 영상을 보여주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며 음성을 수집했다. 또, 특정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1분 동안 최대한 많이 말하게 하거나,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 뒤 곧바로 혹은 20~30분이 지난 뒤 다시 이야기해 보는 검사도 진행했다.
수집된 음성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연구진은 목소리와 발화 내용을 분석해 700개 이상의 음향적·언어적 특징을 추출했다. 얼마나 빠르게 말하는지, 목소리의 높낮이와 떨림은 어떠한지, 사용하는 단어가 얼마나 구체적인지,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등이다. 이러한 특징들을 7개의 범주로 통합해 머신러닝 모델에 학습시킨 결과, 인공지능(AI)은 참가자의 실제 나이를 평균 약 9세의 오차로 추정했다.
‘음성 나이 격차’로 뇌 노화 정도 판단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AI가 나이를 얼마나 정확히 맞추는지가 아닌, 실제 나이와 음성으로 예측한 나이의 차이였다. 연구진은 이를 ‘음성 나이 격차(speech age gap)’라고 정의했다. 가령, 실제 나이가 60세인데 음성으로 예측한 나이가 70세라면 음성 나이 격차는 10세가 된다.
분석 결과, 실제 나이보다 목소리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은 여러 생물학적·임상적 측면에서도 노화가 가속화된 징후를 보였다. 우선, 음성 나이 격차는 자기공명영상(MRI) 등 뇌 영상 검사로 측정한 뇌 나이와 연관성을 나타냈다. 또한, DNA 메틸화 시계를 이용해 측정한 후성유전학적 노화와도 관련이 있었다. 목소리가 단순히 성대나 발성기관의 노화뿐 아니라 뇌와 신체 전반의 생물학적 변화를 반영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음성 시계’는 건강한 사람과 치매 환자를 구별하는 데도 유용했다. 건강한 성인 집단의 음성 나이 격차가 가장 적았으며, 알츠하이머병과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 집단에서는 더 큰 격차가 관찰됐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는 음성 나이 격차가 클수록 알츠하이머병 진단에 사용되는 주요 바이오마커인 혈액 속 인산화 타우217(p-tau217) 단백질 농도가 높은 경향을 보였다.
목소리에 살아온 환경도 담겨
더 흥미로운 점은 목소리에 개인이 살아온 사회적 환경의 흔적까지 담겨 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교육 수준, 경제적 여건, 의료서비스 접근성, 식량 불안정 등 생애 전반에 걸친 사회적·환경적 요인들을 종합한 ‘사회적 엑스포솜(social exposome)’을 분석했다. 그 결과, 불리한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된 사람일수록 음성 나이 격차가 큰 경향을 발견했다. 평생에 걸쳐 축적된 사회적 경험이 말하는 방식에도 반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고가의 의료 장비 없이도 노화와 뇌 건강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높다. 현재 생물학적 노화를 측정하기 위해 MRI 촬영이나 혈액검사 등 전문적인 검사가 필요하다. 반면, 음성은 특별한 장비 없이도 쉽게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 이번 연구가 그간 치매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온 라틴아메리카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다는 점도 이러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임상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동일한 사람을 추적하는 ‘종단 연구’,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서의 검증, 일상 환경에서의 성능 평가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
연구를 이끈 에르난데스 교수는 “우리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화 관련 정보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시간의 흐름뿐 아니라 인지기능과 뇌, 신체의 생물학적 상태, 심지어 우리가 살아오며 축적한 사회적 환경의 영향까지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용어 해설
◆ 전두측두엽 치매(FTD):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에 있는 신경세포가 점차 손상되면서 성격과 행동, 언어능력 등에 변화가 나타나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기억력 저하가 두드러지는 알츠하이머병과 달리 행동 변화나 언어 장애가 초기부터 뚜렷하게 나타난다.
◆ DNA 메틸화 시계: DNA에 나타나는 나이 관련 화학적 변화를 분석해 신체의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하는 기술.
- 권예슬 리포터
- yskwon0417@gmail.com
- 저작권자 2026-10-23 ⓒ ScienceTimes
관련기사

뉴스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