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의 눈을 피하려면 주변 환경과 비슷한 보호색을 띠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렇다면 알록달록하고 눈에 잘 띄는 날개를 가진 나비들은 어떻게 포식자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는 나비의 선명한 날개 무늬가 날갯짓과 결합하여 실제 움직임과 다른 시각적 신호를 만들고, 포식자가 나비의 속도와 위치를 잘못 판단하도록 하는 방어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비의 날개가 만드는 움직임 착시
연구를 진행한 영국 에식스대학교의 트로시안코 교수가 주목한 개념은 모션 대즐(motion dazzle), 즉 움직이는 물체의 무늬 때문에 속도나 방향을 잘못 판단하게 되는 시각적 혼란이다. 모션 대즐의 가장 익숙한 비유는 이발소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의 줄무늬 회전 기둥이다. 기둥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 뿐인데도 우리는 원통 전체가 위나 아래로 이동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움직이는 선의 방향을 바탕으로 물체 전체의 움직임을 추정하는 과정에서 실제와 다른 착시를 겪게 되는 것이다.
나비 날개의 줄무늬도 비행 중 이와 비슷한 가짜 움직임 신호를 만들 수 있다. 빠르게 날아가는 먹잇감을 잡으려는 포식자는 짧은 순간에 먹이의 위치와 속도를 파악해 공격 지점을 정해야 한다. 따라서 날개 무늬가 실제 진행 방향과 조금이라도 다른 움직임 신호를 만들어낸다면, 포식자의 공격 지점도 빗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착시효과는 나비의 날갯짓과 무늬가 함께 움직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나비가 이륙하며 날개를 위로 접으면 양쪽 날개가 서로 가까워지고, 그 위의 줄무늬도 몸의 상승 방향과 비슷한 쪽으로 움직인다. 이어서 날개를 아래로 펼치면 넓은 무늬가 다시 드러나며 실제 몸의 위치보다 아래쪽으로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인다. 즉 나비 자체는 위쪽으로 이동하고 있어도 날개 위 무늬에서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감지될 수 있는 것이다. 연구진은 바로 이 날갯짓과 무늬의 조합이 포식자의 시각계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가짜 움직임이 공격 지점도 바꾸다
연구진은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초당 1,057장을 촬영하는 고속 카메라로 7가지 날개 형태의 나비가 이륙하는 모습을 기록했다. 이후 영상을 새와 같은 포식자의 시각적 특성을 반영한 컴퓨터 모델로 분석하여 각 장면의 움직임 신호를 계산하였다. 그 결과 실제 무늬를 지닌 날개가, 무늬를 지운 경우보다 잘못된 방향의 움직임 신호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는 날개의 무늬가 단순한 장식에 그치지 않고, 날갯짓과 함께 움직일 때 포식자에게 실제 진행 방향을 잘못 인식되도록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착시가 실제 공격 지점까지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100명의 지원자에게 터치스크린 위를 날아가는 가상 나비를 잡도록 하였다. 한 사람당 30번씩 모두 3,000회의 포획 시도를 분석한 결과, 컴퓨터 모델이 앞뒤 방향의 혼란이 크다고 예측한 나비일수록 참가자들의 공격 지점이 실제 나비의 진행 방향보다 뒤쪽으로 길게 퍼졌다. 나비 무늬가 만들어낸 가짜 움직임 신호가 실제 사람의 공격 위치까지 바꾼 것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나비 무늬를 진화시킨 실험도 흥미로웠다. 연구진은 무작위 무늬를 가진 가상 나비 집단을 만든 뒤, 시각적 혼란을 가장 강하게 만드는 무늬만 다음 세대에 남기는 과정을 20세대 동안 반복하였다. 여러 조건과 날개 형태로 총 6만여 개의 무늬를 테스트한 결과, 포식자의 시각을 혼란스럽게 하는 방향으로 선택된 가상 나비에서는 실제 나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짙은 세로 줄무늬와 날개 가장자리의 뚜렷한 대비 같은 특징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시각적 혼란만을 기준으로 진행한 가상 진화 실험에서도 실제 나비와 닮은 무늬가 등장한 것이다.
가상 진화 실험으로 확인된 나비 무늬 효과
이번 연구가 모든 화려한 나비 날개 무늬를 하나의 기능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나비의 날개 무늬는 위장과 독성 경고, 짝짓기 신호, 체온 조절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이번 연구에서 확인한 시각적 혼란 효과와 이러한 기능들은 서로 중첩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또한 실제 효과는 포식자의 종류와 날개를 바라보는 각도, 비행 방식, 배경 등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나비의 무늬를 정지된 상태가 아닌,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얼핏 눈에 가장 잘 띄는 나비의 화려한 날개가, 움직이는 순간에는 포식자의 공격을 빗나가게 하는 방어 장치로 바뀔 수 있는 셈이다.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Butterfly wing patterns in flight create powerful illusory motion cues, Hancock et al., 2026, Nature
주요 용어 해설
* 모션 대즐(motion dazzle): 움직이는 물체의 무늬가 관찰자의 시각을 혼란시켜 물체의 속도나 이동 방향을 잘못 판단하게 만드는 현상
-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10-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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