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노벨 화학상은 '거울상 분자' 수수께끼 푼 카강·소아이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7일(현지시간) 202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앙리 카강 프랑스 파리쉬드대(현 파리-사클레대) 명예교수와 소아이 겐소 일본 도쿄이과대 명예교수를 선정했다. 선정 사유는 "비대칭 유기합성에서 비선형 효과와 자기촉매 작용의 발견"이다.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의 연구가 의약품, 향료, 향수, 신소재를 만드는 반응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에게 혁명적이었다고 평가했는데, 특히 하이너 링케 노벨 화학위원회 위원장은 생명 분자가 한쪽 방향성만 띠는 현상이 어떻게 저절로 나타날 수 있는가라는 100년 넘은 화학의 난제에 두 사람이 답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상금 1,200만 스웨덴 크로나는 두 사람이 똑같이 나눠 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점이다.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하는 분자의 세계
두 손을 마주 대 보면 왼손과 오른손은 서로의 거울상이다. 모양은 같지만 아무리 돌려도 완전히 겹쳐지지 않는다. 분자 중에도 이런 관계를 이루는 쌍이 있다. 원자 구성과 연결 순서는 똑같은데 공간 배치만 거울에 비친 듯 반대인 분자들이다. 화학자들은 이 성질을 '카이랄성(chirality)'이라 부르고, 짝을 이루는 두 분자를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한다. 이 현상은 1848년 루이 파스퇴르가 포도주 찌꺼기에서 얻은 결정을 관찰하며 처음 밝혀냈다.
흥미로운 점은 거울상 이성질체가 녹는점이나 끓는점 같은 성질이 같다는 점인데, 생명체 안에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이는 몸속 효소와 수용체 자체가 한쪽 방향의 분자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오른손 장갑에 왼손이 들어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같은 분자의 한쪽은 약효를 내고 다른 쪽은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신약을 만들 때는 원하는 거울상만 골라 합성하는 기술이 필수이다.
사실 더 근본적인 수수께끼도 있다. 지구 생명체의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은 거의 모두 '왼손형(L형)'이고, DNA와 RNA의 당은 모두 '오른손형(D형)'이다. 이처럼 생명 분자가 한쪽 방향으로만 통일된 현상을 '동형 카이랄성(homochirality)'이라고 한다. 문제는 실험실에서 평범하게 분자를 합성하면 두 거울상이 언제나 정확히 반반씩 생긴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초기 지구에서 생명은 어떻게 한쪽만 고르게 됐을까? 이번 노벨상은 이 질문에 대한 화학적 답을 찾은 연구에 돌아갔다.
1 더하기 1이 2가 아닌 반응, 카강의 비선형 효과
카강은 비대칭 합성 분야의 개척자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1970년대 초 한쪽 거울상만 선택적으로 만드는 촉매 리간드 'DIOP'를 개발해 이 분야의 문을 열었다. 2001년 노벨 화학상이 비대칭 촉매 연구자 세 명에게 돌아갔을 때, 카강이 명단에 빠진 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의 결정적 발견은 오래전 1986년에 나왔다. 상식적으로는 촉매가 순수할수록 생성물도 순수해지고, 둘의 관계는 비례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쪽 거울상이 절반쯤 섞인 촉매를 쓰면 생성물도 그 정도 순도에 그쳐야 한다. 카강은 일부 반응에서 이 비례 관계가 깨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순도가 낮은 촉매로도 그보다 훨씬 순도 높은 생성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이를 '비선형 효과(non-linear effect)'라고 이름 붙였다.
카강은 이 현상을 수학 모델로 설명했다. 촉매 분자들은 반응 용액 안에서 둘씩 짝을 짓기도 한다. 이때 왼손형과 오른손형이 섞인 짝은 반응성이 떨어져 사실상 '창고'에 갇힌다. 그 결과 남는 쪽, 즉 원래 더 많았던 거울상의 촉매가 반응을 주도하게 된다. 작은 불균형이 반응 과정에서 큰 불균형으로 커지는 구조이다. 이 개념은 비대칭 촉매 반응을 설계하고 분석하는 표준 도구가 됐고, 작은 차이가 어떻게 증폭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공했다.
스스로를 복제하는 분자, 소아이 반응
카강이 '증폭'의 원리를 보여줬다면, 소아이는 그 증폭을 말 그대로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1995년 그는 생성물이 곧 자기 자신을 만드는 촉매가 되는 반응을 발표했다. 피리미딘 계열의 알데하이드에 다이아이소프로필아연을 반응시키면 알코올 분자가 생긴다. 이 알코올이 다시 촉매가 되어 같은 방향의 알코올을 더 만들어낸다. 분자가 자기 복제를 하는 셈이다. 이것이 '비대칭 자기촉매 작용'이며, 오늘날 '소아이 반응'으로 불린다.
이 반응의 위력은 증폭률에 있다. 처음에 한쪽 거울상이 아주 조금 더 많기만 해도, 반응을 몇 차례 반복하면 거의 순수한 한쪽 거울상만 남는다. 백만분의 일 수준의 미세한 불균형이 99.5% 이상의 순도로 불어난 사례도 보고됐다. 1953년 영국 물리학자 찰스 프랭크가 이론으로만 제시했던 '자기촉매에 의한 카이랄성 증폭' 모델이 40여 년 만에 실험으로 구현된 것이다.
소아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3년에는 처음부터 한쪽 거울상을 넣어 주지 않아도, 가능한 두 거울상 가운데 하나만 생겨나는 반응을 실험으로 보여줬다. 반반의 균형이 우연한 요동으로 깨지면, 자기촉매가 그 차이를 키워 한쪽이 승리한다. 연구진은 원편광(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빛), 석영 결정, 심지어 동위원소 차이처럼 극히 미약한 비대칭 요인도 반응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음을 잇달아 확인했다.
생명의 기원에서 신약 개발까지
두 사람의 연구는 생명 기원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준다. 초기 지구나 우주 공간에 아주 작은 비대칭만 존재했다면, 화학 반응이 이를 증폭해 동형 카이랄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실험적 근거를 얻었다. 실제로 지구에 떨어진 일부 운석에서는 왼손형 아미노산이 약간 더 많이 발견되었는데, 별이 태어나는 성운에서는 원편광이 관측되기도 했다. 우주에서 시작된 미세한 불균형이 지구 생명의 '한쪽 손'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이제 화학의 언어로 검증 가능한 가설이 된 셈이다.
산업적 파급력도 무시할 수 없다. 비선형 효과의 개념은 순도가 완벽하지 않은 촉매로도 고순도 의약품 원료를 만드는 공정 설계에 쓰인다. 의약품뿐 아니라 향료, 농약, 기능성 소재까지 거울상을 정밀하게 다뤄야 하는 분야가 모두 이 원리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이번 수상은 기초 연구가 진가를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카강의 비선형 효과는 40년 전, 소아이 반응은 30여 년 전에 처음 발표됐다. 클래리베이트의 데이비드 펜들버리는 수십 년에 걸쳐 영향력이 드러난 발견을 기린 상이라고 평가하며, 호기심에서 출발한 꾸준한 연구가 큰 진전을 낳는다는 점을 일깨운다고 전한다. 파스퇴르가 결정 속에서 거울상을 처음 본 지 18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생명이 왜 한쪽 손을 쓰는가라는 질문은 마침내 실험실에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됐다. 그리고 연구에 대한 끈질김은 노벨상에 목마른 우리나라에도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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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10-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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