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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현정 리포터
2026-08-19

향수에도 좌표가 있다: '그리운 시절'을 측정하는 과학 애리조나대 연구진, 다섯 단계 검증으로 '시대 노스탤지어' 척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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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공개된 가수 윤종신의 ‘월간 윤종신' 4월호 “지난날” 뮤직비디오가 화제를 모았다. AI 기술로 30여 년 전 유재석, 장항준, 정재형 등 친구들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복원해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그들이 마주하는 장면을 담아낸 장면이 백미였다. 영상 공개 이후 "AI가 이렇게 쓰이니 오히려 반갑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윤종신 본인도 이를 "AI의 순기능"이라 불렀다. 이 뮤직비디오를 계기로 SNS상에서는 각자의 옛 사진을 다시 꺼내 AI로 복원하는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영상 하나가 한 시절 전체의 공기를 되살려낸 것, 노스탤지어를 자극한 이유였다.

실제로 문화산업에서 특정 시대를 소환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바 ‘응답하라 식’ 콘텐츠가 모두 성공을 거두지 못한 문제는 어떤 시대를 골라야 하는지가 그동안 감에 의존해 결정돼 왔다는 점이다. 애리조나대학교 엘러경영대학 케일럽 워런 교수와 유타밸리대학교 매튜 파머 교수가 국제학술지 Journal of Advertising에 발표한 연구는 이 선택을 측정 가능한 수치로 바꾸는 과학적 방법을 제시했다.

이른바 중년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 윤종신의 ‘지난날’ 앨범 커버. Ⓒ월간윤종신 
이른바 중년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 윤종신의 ‘지난날’ 앨범 커버. Ⓒ월간윤종신 


기존 척도가 놓친 중간 지대

노스탤지어를 다루는 연구는 오랫동안 두 개 유형에 물려있었다. 한쪽은 구체적인 사건이나 자극에 대한 향수를 측정했고, 다른 쪽은 "그 시절이 좋았지" 같은 막연한 과거 전반에 대한 향수를 측정했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실제로 그리워하는 대상은 대개 이 둘 사이, 예컨대 1990년대처럼 하나의 '시대'라는 단위다. 

연구팀은 1970년대 인지심리학자 엘리너 로쉬가 정립한 기본층위 범주(basic-level category) 이론을 가져왔다. 로쉬는 사람이 사물을 인지할 때 가장 세부적인 종도, 가장 상위의 범주도 아닌 중간 수준의 범주를 가장 먼저, 가장 자연스럽게 떠올린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이 중간층위 범주가 사람이 실제로 기억하고 사고하며 의미를 구성할 때 쓰는 기본 단위라는 것이다.

워런과 파머는 이 이론을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처음으로 적용했다. 사람이 과거를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로 낱낱의 사건이나 역사 전체가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시대'라는 중간층위 범주를 기본 단위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시대를 사람이 개인적 경험, 집단적 참여, 이야기나 미디어를 통해 구성한 '스키마(schema)'로 정의했다.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이나 중학교 시절처럼 자전적 기억으로 형성된 '개인적 시대', 1990년대처럼 한 집단이 공유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형성된 '집단적 시대', 직접 겪지 않고 이야기와 매체로만 접한 '간접적 시대'로 나뉘지만, 형성 경로와 무관하게 모두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연구팀의 핵심 주장이다.

로쉬의 기본층위 범주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커트러리’라는 포괄적 범주도, ‘피시포크’라는 세부 범주도 아닌 ‘포크’라는 중간 단계를 가장 먼저, 가장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Journal of Advertising
로쉬의 기본층위 범주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커트러리’라는 포괄적 범주도, ‘피시포크’라는 세부 범주도 아닌 ‘포크’라는 중간 단계를 가장 먼저, 가장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Journal of Advertising


노스텔지어를 측정하다

연구팀은 이 이론적 틀을 실증하기 위해 다섯 단계의 연구를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먼저 기존 노스탤지어 척도 28개와 노스탤지어 TV 광고 200편, 참가자 301명이 쓴 회고 에세이 203편을 종합 분석해 향수의 핵심 요소를 추려냈다. 이 에세이들 가운데 74.4%에서 따뜻함이, 34.5%에서 상실감이, 22.2%에서 그 시절이 더 단순했다는 인식이 공통으로 확인됐다. 이후 두 차례의 통계 검증을 거쳐 문항을 28개에서 12개로, 다시 11개로 줄였고, 최종적으로 따뜻함·상실감·단순함이라는 세 요인으로 구성된 척도가 확정됐다. 개인적 시대와 집단적 시대를 평가할 때도 이 세 개의 요인 구조는 동일하게 나타나, 로쉬의 이론이 예측한 대로 시대의 형성 경로와 무관하게 같은 심리적 구조로 노스탤지어가 작동한다는 근거가 확보됐다.

이 척도가 실제 반응까지 예측하는지도 실험으로 확인됐다. 1990년대풍 광고와 현대적인 광고를 각각 본 참가자들 가운데, 1990년대 노스탤지어 점수가 높은 사람만 1990년대풍 광고에 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러 시대를 다룬 영화·다큐멘터리 예고편을 고르게 한 실험에서도 특정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 점수가 그 시대 콘텐츠를 선택할 확률을 유의하게 예측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나이가 이 결과를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10대 시절을 가장 그리운 시대로 꼽은 참가자는 어떤 연령대에서도 절반을 넘지 않았고, 오히려 4명 중 1명은 직접 겪은 2000년대를 가장 그립지 않은 시대로 꼽았다. 특정 연령대가 흔히 특정 시대를 그리워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어떤 시대가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지는 나이만으로 예측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대한 노스탤지어 점수가 높을수록 1990년대풍 광고에 더 호의적이었고, 1990년대 콘텐츠를 선택하는 경향도 뚜렷했다. 반면 노스탤지어 점수가 낮은 사람에게는 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Journal of Advertising
1990년대에 대한 노스탤지어 점수가 높을수록 1990년대풍 광고에 더 호의적이었고, 1990년대 콘텐츠를 선택하는 경향도 뚜렷했다. 반면 노스탤지어 점수가 낮은 사람에게는 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Journal of Advertising


알고리즘이 '집단 기억'을 해체할 수 있다?

연구팀은 논문 말미에서 이 척도가 앞으로 검증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갈수록 알고리즘이 개인화한 콘텐츠만 소비하게 된다면, "1990년대"처럼 한 세대가 공유하던 집단적 노스탤지어 자체가 앞으로는 형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알고리즘이 골라준 파편적 자극에만 향수를 느끼게 될 수 있다. 같은 1990년대를 겪었더라도 이후 개인화된 미디어 소비를 통해 서로 다른 '1990년대 스키마'를 갖게 된다면, 지금까지 집단적 노스탤지어를 가능케 했던 공유된 문화적 참조점 자체가 흐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특정 콘텐츠 취향을 넘어, 한 세대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회인지과학적 질문이다. 연구팀은 이 가설을 이번 논문에서 직접 검증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개발한 척도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6-08-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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